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묻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묻다
  • 전주일보
  • 승인 2019.12.3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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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뛰어놀다 넘어져 무릎에 작은 상처가 생기면 어머니는 상처가 덧나지 않을까 싶어 빨간약을 바르고 입으로 후후 불었다. 누구나 몸에 작은 생채기 하나쯤은 가지고 산다. 이 작은 생채기는 유년 시절 건강함이 남겨준 유산이며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의 뿌리가 새겨진 아련한 추억의 시간이다. 생각해 보라. 곧고 우람한 소나무일수록 수많은 상처가 새겨지는 법이다.
 
  돌아보면 1990년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된 후 30년 세월이 흐르면서 새겨진 수많은 상처는 굳건한 소방정신을 지탱해준 영광의 시간이다. 작은 상처 하나 없었더라면 신념과 믿음은 바람에 쉽게 흔들려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한 발짝 떼는 것도 힘겨웠을 것이다.
 
  소방은 어둠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비춰야 한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어둠을 어둠으로 이겨내고 소중한 생명에 손을 내밀어 붙잡아야 한다. 근육이 찢겨 나가는 고통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눈시울이 붉어지도록 감동이 가슴에 새겨져야 진정한 소방관으로 이름 석 자에 부끄럽지 않게 된다. 소방의 사명이며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소방정신이다. 돌이켜보면 가슴에 새겨진 상처가 소방정신의 뿌리가 아닐까 싶다.

  이제 한 발짝을 더 나아가면 소방공무원으로 걸어왔던 길에 마지막에 다다르게 된다. 아쉬움에 한 발을 내딛지 않고 우두커니 막다른 길을 바라본다면 위로를 받을까 기대를 해보다가, 시간의 흐름을 역으로 거슬리는 어리석은 생각임에 이 길에서 새로운 길을 묻기로 한다.

  지난 온 길과 앞으로 새로 시작되는 길에서 소방은 지금처럼 외부의 소용돌이에 휩싸이지 않고 오직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외길을 걸어야 한다. 무관용 원칙으로 사전 예방을 강화하여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급변하는 재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유기적인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소방조직은 시대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도록 튼튼한 뿌리가 필요하다. 소방사무는 그동안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재난이 발생하면 조직변동이 심했다. 소방역사를 살펴보면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의 고유정신은 그대로지만 조직의 형태는 수시로 바뀌었다. 2017년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라 소방청으로 창설되고 2020년에 신분이 국가직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안전은 백년대계이므로 국민의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업무 추진에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이 필요하며 소방공무원에게 소속감은 원동력이 된다. 소방공무원은 더 멀리 내다보고 큰 틀을 세워 소방발전에 추진력을 얻어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행복의 약속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희망의 빛을 움켜쥐었다고 우월감에 힘을 헛되이 사용해서는 안되며 국민의 안전 길잡이로 자리매김 한다면 자연스럽게 소방은 국민의 보듬 울타리에서 그 빛을 발휘할 것이다.

  다음은 감성적 안전이 필요하다. 감성적 안전이란 국민들이 감동할 수 있는 소방행정, 가슴속에 울림이 있는 공감적인 예방 및 교육, 피해복구가 가능하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신속하고 전문적인 화재·구조·구급 서비스, 특히 노유자 관련 요양병원·노인복지시설과 유아·장애인, 다문화 가족 등 재난 취약계층에 세심한 관심과 소방안전에 집중이 동반되는 환경조성이 지금보다 한 층 드높여야 한다. 재난 취약계층에 주택용소방시설 보급과 찾아가는 안전교육, 의용소방대와 함께 안전복지나눔, 소방차량 진입곤란을 사전에 파악하여 소방계획을 수립하는 등 재난취약계층에 감성적 접근으로 ‘모든 국민은 안전하게 살 권리’ 기틀 마련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소방공무원의 끊임없는 연구와 학습이 필요하다. 각종 재난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기보다 능동적이고 효율적인 대응방안 연구와 첨단 장비 개발, 그리고 변화된 재난 대응과 장비 학습을 습득하여 전문적인 면모를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열린사고가 뒷받침 되야한다. 엄연한 계급이 존재하는 조직이지만 의사소통에 있어서는 계급을 허물어야한다. 안하무인이라는 말이 있다. 구태의연한 현장대응력은 뱀에 꼬리일 뿐이다. 사회는 급속도록 변하고 있으며 자신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움을 받아들여 획기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학습이 이 시대의 요구이자 목소리임을 잊지 말고 정진해야 한다.

  소방공무원으로 이제 막다른 길에 한 발짝을 옮길 준비가 되었다. 30년간 몸에 난 상처는 평생 기억될 소방의 역사와 함께 할 것이다. 필자는 소방관의 길 끝에 서 있지만 앞으로 다가 올 새로운 길에게 묻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평범하게 흘려 보내지 말라. 이 순간에도 찾아보면 의미 있는     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소방관의 길에 편승하였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고창소방서장 박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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