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느티나무
  • 전주일보
  • 승인 2019.12.2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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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문 광 섭 /수필가
문 광 섭 /수필가

엊그제, 입추가 지났어도 아직은 무더위가 치성하던 한낮의 일이다.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에 있는 한국스카우트 전북연맹 사무실에 가느라 시내버스를 탔다.

바로 가는 버스노선이 아니어서 환승을 해야 했다. 전북대 앞에서 내려 종합경기장 야구장 앞 정류장까지 걷게 되었다. 불과 5분 남짓 걸었음에도 땀이 비 오듯 하고 숨이 차서 헉헉거렸다.

늘 승용차로 다니던 버릇 때문인지 겨우 200m쯤 되는 거리를 걸었는데 어찌나 힘이 들었던지 공연히 버스를 탔구나 하는 후회와 함께 심한 갈등을 겪었다.

더구나 간간이 협심증을 겪는 처지에 숨이 차오르니 겁도 났다. 그러다가 간신히 경기장 사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야구장 앞까지 길이 느티나무와 단풍나무로 어우러진 숲 터널을 이루었다.

땡볕을 벗어나 숲길을 걸으니 신선놀음이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둔덕을 잡은 듯 갑자기 미소가 입가에 번지며 가쁘던 숨결이 편안해졌다. 사람은 참으로 간사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쓰르름 쓰름아직도 짝을 찾느라 목청껏 울어대는 쓰르라미 선율에 발걸음이 절로 흥이 돋아 가볍다. 숨도 고르고 땀도 식히니 이젠 조금 전 겪던 갈등은 어디로 가고 신선놀음이라도 하는 양 여유가 일었다. 마치 소풍 나온 사람처럼 한가롭다.

그동안 느티나무는 크게 자라고 수령도 길어서 가로수로는 잘 심지 않았던 것으로 알았다. 그러다 20여 년 전부터 시내 간선 도로변에 느티나무를 심었는데, 여름이면 그늘도 좋고 매미까지 더불어 살면서 시원한 느낌을 더해 말할 나위 없이 친근함을 느낀다.

하지만, 나에겐 느티나무에 대한 가슴 아픈 기억이 아직도 살아 있다. 한국전쟁 때 일이니 70년 가까운 까마득한 이야기다. 남 덕유산 자락 초등학교 운동장 서편에 학생 다섯 명 정도가 팔을 이어야 할 만큼 큰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있었다.

우리의 놀이터였던 그 나무 아래서 전쟁 중에 선량한 사람이 총살당하는 현장을 목격하였기에 항상 두려움과 끔찍한 기억이 남아 있다. 더구나 느티나무는 동리 입구마다 서 있는 상징처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깃든 신성한 것으로 여겨왔다.

언덕바지에 서 있는 당산 목에는 새끼줄을 두르고 헝겊을 치렁치렁 매달아 놓고 마을에 무슨 일이 있을 때, 빌고 굿을 하는 곳으로 여겨 특별하게 생각해왔다. 신이 깃든 나무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느티나무 밑을 걷다가도 그 시절만 떠올리면 참으로 안타깝고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아름다운 추억도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여름밤이다. 담임 선생님 댁에서 중학교 입학시험 대비 과외공부를 하는 중에 내가 졸다가 선생님에게 발각되었다. 선생님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졸은 데 대한 벌로 교정에 있는 그 느티나무 껍질 한 조각을 뜯어오라는 불호령을 내렸다.

얼떨결에 일어나 교정으로 달려갔지만, 막상 어둠 속에서도 하늘을 찌르듯 서 있는 산 같은 나무를 보고선 잔뜩 겁먹은 채 엉금엉금 기어갔다. 지난날 사람이 처형당하던 기억이 있는 데다 밤이라 금세 귀신이 나올 듯 두려웠다.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긴장감 속에서 평소 보아두었던 자리의 껍질을 눈을 질끈 감고 더듬어 뜯어내서 선생님께 드리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대전에 살고있는 죽마고우는 만날 때마다 그날의 내 뱃심에 혀를 내두른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느티나무가 무성하게 잘 자라는 것은 병충해에 대한 자기 방어능력이 있으며, 토양이 척박해도 뿌리를 깊고 넓게 뻗어 기반을 크게 잡아 잘 자란다고 한다. 문득 1970년대 초반, 전북대학에서 교지를 관리하며 황량한 교정에 나무를 많이 심던 일이 떠오른다.

그때는 경제 수종으로 빨리 자라는 나무를 주로 심었다. 느티나무에 대해서 너무 몰랐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어서 못 심었다. 훗날 외지로 전출 갔다가 2년 뒤에 돌아오니, 교정에 소나무와 느티나무를 많이 옮겨 심어놔서 녹음이 우거지고 시원함은 물론 경치도 아름다워 감탄했었다.

느티나무 밑 버스정류장이 한가롭다. 버스 안내 표지판에 내가 타려는 버스가 15분 뒤 도착한다는 문자가 뜨고 있다. 마음이 한가하다. 이제는 반가운 사람과 마주 앉아서 커피잔을 앞에 두고 소싯적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은 아늑한 상념이 피어난다.

코끝에 진한 커피 향이 피어나는 듯 나른한 상상이 나래를 편다. 오래된 향수(鄕愁)를 불러내 몇 년 전의 한가로움으로 나를 이끌어 간다. 고향 근처 용강리 천변에서 하늘을 우산처럼 가린 느티나무 밑 평상에 누워서 오수(午睡)를 즐기다가 깨어 올려다본 하늘과 뭉게구름이 아늑하다.

한가로이 떠가는 구름이 하늘 바다에 그려내는 어머니의 환영과 형제들이 그리워 눈시울을 적시던 날의 추억도 피어났다. 느티나무는 몸집도 크지만 많은 잎사귀를 달고 사는 까닭에 생기는 그늘이 어머니 등처럼 시원하고 포근하다. 어지간한 바람에는 미동도 하지 않고, 뜨거운 염천도 아랑곳없이 믿음직하게 버티고 서서 그늘을 품 안고 있는 모습이 장할 뿐이다.

옛말에 인장덕(人長德) 목장패(木長敗)라는 말이 있다. 집안에 큰사람이 나오면 덕을 보지만, 집안에 큰 나무가 자라면 뿌리에 집이 상하고 그늘이 커서 볕이 들어오지 않아 습해서 해를 본다는 말이다.

하지만, 동구 밖의 느티나무는 동네를 지키는 나무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오늘 만난 도로변의 가로수야 더 말할 나위 없는 덕()의 나무이고 추억의 나무로 내 마른 가슴을 포근히 감싸준 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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