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호의 독후감 –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지음)
최영호의 독후감 –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지음)
  • 전주일보
  • 승인 2019.12.0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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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제, 세대별 가치관 차이·차별의 누적으로 발생
여성문제 해결없는 출산율 해소는 어렵다는 걸 알아야
최영호 변호사 /법무법인 모악
최영호 변호사 /법무법인 모악

모두가 알지만, 막상 주위에 직접 읽어본 사람을 찾아보면 많지 않았다. 책이 출간되었을 때, 그 책이 영화가 되었을 때, 모두 화제가 됐지만, 책과 영화의 내용보다는 이야기를 대하는 대중의 태도가 더 유명하다.

첫 문단은 이 책의 이야기를 명료하게 설명한다.

‘김지영 씨는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이다. 3년 전 결혼해 지난해에 딸을 낳았다. 세 살 많은 남편 정대현 씨, 딸 정지원 양과 서울 변두리의 한 대단지 아파트 24평형에 전세로 거주한다.

정대현 씨는 IT계열의 중견 기업에 다니고, 김지영 씨는 작은 홍보대행사에 다니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다. 정대현 씨는 밤 12시가 다 되어 퇴근하고, 주말에도 하루 정도는 출근한다.

시댁은 부산이고, 친정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하시기 때문이 김지영 씨가 딸의 육아를 전담한다. 정지원 양은 돌이 막 지난 여름부터 단지 내 1층 가정형 어린이집에 오전시간 동안 다닌다.’

 즉, 이 책은 서울에서 아파트 전세를 살며 딸을 키우고 있는 30대 경력단절녀인 김지영 씨가 가정에서 2녀 1남 중 차녀로 자라며 학교 다니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육아하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고 있다.

김지영 씨의 어머니는 두 딸을 낳고 시어머니에게 죄송하다고 해야만 했고,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딸을 임신하자 낙태를 하고 결국엔 아들을 낳았다. 라면을 끓이면 남동생이 면을 먼저 덜어 먹었고, 설거지는 두 딸의 몫이었다.

김지영 씨는 첫 생리를 부끄러워해야 했고, 남학생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할 뻔하였을 때는 아버지에게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며 혼이 나야 했다. 대학 동아리에서 남자를 사귀고 헤어졌을 때 ‘씹다 버린 껌’이 되었고, 남자들보다 어렵게 취업을 해야 했다.

취업 후에는 본인의 의지와 달리 남자만이 중요한 일을 했다. 결혼 후 임신을 하고 회사를 그만두었고, 임신한 아이가 딸이란 말에 친정어머니는 다음엔 아들을 낳으면 된다고 했고, 시어머니는 괜찮다고 했다. 명절엔 항상 시댁에 먼저 갔고, 연휴 끄트머리에 겨우 친정에 갈 수 있었다.

소설을 두고 그것이 그러한 사실이 있었느냐, 이야기가 과장되었느냐, 하는 것을 두고 논란을 벌이는 것은 불필요하다. 소설 외적인 비판과 논란을 뒤로하고 이 책은 동시대 30대 여성이 80년, 90년, 21세기를 지나며 겪거나 겪었을 법한 일들을 중심으로 생각해 볼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특히 쓸데없이 감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소설의 특징이다. 작가 특유의 담담하고, 유려한 문장은 두껍지 않은 책의 분량과 함께 읽기 시작하면 쉽게 끝까지 볼 수 있는 흡입력으로 무척 잘 쓴 소설이다.

독후감 필자의 경험을 말해본다. 필자는 남자다. 2남 중 차남으로 남중과 남고를 나왔다. 어릴 적에는 결혼 후 직장을 다니는 여자의 이야기가 드라마가 되었고, 가정주부가 된 남자의 이야기는 영화가 되던 시절이었다. 어른들은 주방에 가면 남자 성기가 잘린다고 했다.

어른들이 흔히 가는 오래된 막걸릿집에 가면 아저씨들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며 서빙하는 아주머니의 가슴과 엉덩이에 손이 올라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여학우로부터 유머 모음집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던 ‘바바리맨’이 모든 여학교 앞에 있다는 사실과 직장을 잡은 이후엔 사무실에 상고나 전문대를 나온 ‘여직원’이라는 직무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결혼하고 나서야 출산이 얼마나 고되고 위험한 일인지, 육아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집안일이 왜 끝도 없는지, 여자가 왜 남자보다 더 현명한지 알게 됐다. 부부 중 한 명이 가사를 돌본다면 이는 밖에서 돈을 버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것도 추가로 안 사실이다.

사실 이 책을 두고 논란이 되는 남녀 간의 갈등에 대해 모르지는 않으나, 왠지 정말 쓸데없단 생각이 들 뿐이다. 여성의 문제는 세대별로 나누어져 있고, 역사적으로 켜켜이 쌓여 있다. 한국 내 여성 문제는 세대별 가치관의 차이, 차별의 누적과 세습에서 시작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출산율 문제를 풀 수 없다.

여성 문제를 두고 열을 올리는 것은 이 소설을 두고 사실과 다르다거나 과장되었다고 비판하는 것만큼 쓸데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최영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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