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저만치 간다.
가을이 저만치 간다.
  • 김규원
  • 승인 2019.11.2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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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김 고 운/수필가
김 고 운/수필가

가을이 간다.

노란 잎과 붉고 고운 별을 남기고 떠난다. 가을이 남기는 단풍별과 노란 부채들이 누군가의 가슴에 기쁨을 주었다면 가을은 할 일을 다 한 것일까. 떠나는 것들은 스스로 흔적을 지운다. 떠난 자리에 남는다는 건 괴로움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바람에 쓸려 휘돌고 말라 부서지는 낙엽이 향하는 곳은 제가 왔던 나무 밑이다. 근본으로 돌아가는 귀토歸土 의식을 위해 물드는 노랗고 붉은 만장挽章을 보며 인간들은 슬픔을 느끼기 전에 고운 색에만 마음을 준다. 봄부터 가을까지 온 힘을 다해 나무를 살찌우고 겨울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스스로 나무를 붙잡았던 손을 놓으며 흙으로 돌아가는 그 아픔은 아랑곳조차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낙엽이 흩날리는 아픔 속에 울리는 조종弔鐘은 듣지 못하는 것이다.

내게 겨울의 본디 이름을 지으라고 한다면 회한이고 슬픔이다. 특히 몇 해 전 가을에 아내를 먼저 보내고 맞이하는 겨울은 그때마다 시리고 아프고 추웠다. 무더운 여름을 지내기보다는 차라리 추운 겨울이 좋지만, 그녀가 없는 겨울은 여러 해가 지나도 항상 쓸쓸하고 나 혼자 고도孤島에 버려진 듯 서글프기도 했다. 뭘 해도 집중이 안 되었고 어디에도 마음을 붙일 수 없는 외톨이의 나날이었다.

그녀가 아프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 곁을 떠나기까지 나는 다만 곁에서 지켜볼 뿐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무 감각도 없는 그녀의 배변을 해결해주고 외로워하는 눈치가 보이면 말을 걸어주는 게 고작이었다. 원인도 약도 모르는, 그저 죽는 시간을 기다리는 잔인한 병마에 대항할 아무 방법이 내겐 없었다. 잠에서 깨어 눈을 맞추어 깜박이는 횟수나 속도를 보고 그녀가 뭘 원하는지 알아낼 수 있던 돌보미생활 동안 나는 수없이 많은 말을 해야 했다.

의식이 또렷하고 말을 알아듣는 그녀의 뜻을 거니채려면 이것저것 물어보아 눈빛과 눈을 깜박이는 모양을 보고 판단해야 했다. 숱하게 물어보고 눈치를 살피다가 보니 내 말에 반응하는 눈빛만 보아도 무슨 뜻인지 쉽게 알 수 있는 능력도 생겼다. 지금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내가 남과 그런대로 말을 이을 수 있는 것도 아내와 훈련한 덕분일 듯하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내가 고령가야 지역으로 문학기행을 갔던 시간에 그녀는 나를 두고 가뭇없이 저세상으로 갔다. 눈빛 한 번 주고받지 못하고 보낸 아픔 때문에 해마다 가을이면 나도 모르게 떠난 그녀의 흔적을 기웃거린다. 아무것도 찾을 수 없고 이미 원소로 흩어져 버린 그녀의 흔적에서는 의미조차 찾을 수 없다.

찾을 수 없고 위로조차 건넬 수 없는 소멸의 뒤란에는 아픈 그리움만 싸늘한 바람에 휘돌고 있다. 계절이 만들어낸 스산함과 뼛속에 스미는 진한 외로움이 차라리 내게 현실을 바로 보도록 돕는 듯싶은 게 이 계절의 상념이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니듯, 내가 사는 이 시간도 내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 때에 이르면 나 역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10년 넘는 세월, 정상적인 생각을 지닌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내가 묻는 말에 눈으로 대답하던 것은 하고 싶던 말의 천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보고 들을 수만 있던 가슴에서 끓어올랐을 상념과 세상을 향해 말하고 싶었던 생각은 하나도 말이 되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흩어져 갔다. 그 말이 되지 못한 것들은 그녀의 육신이 승화원 불가마 속에서 사그라질 때 세상에 새어 나와 단풍에 스며들었지 않았을까? 그러기에 저리 붉고 아프게 나타났다가 스러지는 게 아닌가 싶다.

홀로 그리움을 곱씹고 있는 내 가슴은 다른 가슴과 섞이지 못해 항상 혼자이다. 가을 잎이 붉고 노랗게 물든 길을 걸으며 밟혀 짓이겨지고 부서진 잎새들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미어진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저 갈잎처럼 머지않아 나도 그녀를 따라 떠나야 하는 처지이고 형체도 없이 바스러져 흙으로 돌아갈 일이 두려운 것만은 아니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고 이미 세상에 나오면서 죽음의 길을 걷고 있었음을 익히 알고 있으니.

늙바탕에 철이 조금씩 드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를 구실로 세상에 남아 있을 명분을 찾는 짓인지 세상을 위해 뭔가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 비슷한 마음이 일고 있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지면서 어설피 알았던 지식도 거의 잊어 뭐 한 가지를 생각하고 쓰거나 실행하려면 제법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런 정신으로 뭘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없다.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뿐, 이런저런 일을 하고 돕기도 하면서 지내지만, ‘이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안타깝고 조바심이 난다.

가을이 저만치서 그리움의 옷자락을 펼치며 떠난 자리에 차가워진 바람을 몰고 겨울이 들어섰다. 이 겨울을 보내는 가운데 또 한 살 나이를 더하게 되고 조금 더 부실해진 몸이 되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곧 매서운 칼바람이 날 더욱 움츠리게 하고 운신의 폭도 줄일 터이고.

이런 날엔 어디 아직 낙엽이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한적한 오솔길을 찾아가야 한다. 몇 잎 남지 않은 나목으로 서서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견디는 신음을 들을 수 있는 곳에서 그들의 아픔을 내 위로로 삼아 이 겨울을 견디는 지혜를 배워보려는 것이다. 그 바람 소리와 휩쓸리는 낙엽이 구르는 소리에서 단 한 줄의 글머리라도 찾을 수 있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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