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점마을의 비극, 유기질 비료
장점마을의 비극, 유기질 비료
  • 김규원
  • 승인 2019.11.1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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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의 집단 암 발생 원인이 마을 인근 500m에 위치한 금강농산에서 비료 원료로 사용한 연초박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환경부는 14일 전북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 주민 건강 영향조사 최종발표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장점마을에서는 2001년 비료공장 설립 이후, 20171231일 기준으로 주민 99명 중 22명이 암에 걸려 그 가운데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금강농산에서 유해물질을 배출해 암이 발생했다며 20174월 건강 영향조사를 청원했다. 이와 관련 지난 6월 국립환경과학원은 장점마을 주민 건강 영향조사결과를 공개하면서 장점마을 주민의 암 집단 발병이 인근 비료공장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하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조사한 결과 금강농산 사업장 내부와 장점마을에서 1급 발암물질인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류(PAHs)와 담배특이나이트로사민(TSNAs)이 모두 검출됐다. 아울러 두 발암물질은 비료공장에서 퇴비로 사용해야 할 연초박(담뱃잎 찌꺼기)을 불법 사용하여 비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되었다고 밝혀졌다. ()금강농산은 KT&G 신탄진공장에서 반출된 연초박 2,242t을 비료 원료로 사용했고, 20174월 환경오염물질 기준치를 초과한 사실이 적발돼 폐쇄됐다.

이와 관련하여 익산시는 장점마을을 친환경 마을로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마을을 새롭게 꾸민다고 한다. 그러나 장점마을 주민들이 처음 공장이 들어와 가동을 시작했을 때 심한 악취와 구역질을 호소하며 시청을 찾아갔을 당시에 익산시청이 적극적으로 조사했더라면 14명의 희생자는 나오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애꿎게 희생된 이들의 가족, 고통 속에 유명을 달리한 당사자들의 억울함이 이제라도 밝혀져 다행이긴 하지만, 잃은 목숨을 되돌릴 수 없으니 어떤 조치를 한들 아픔 마음이 풀리겠는가?

공장이 들어서고 가동을 시작했을 당시의 사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사정을 짐작하기로는 당시 익산시는 그렇게나마 지역에 어설픈 공장이라도 들어서는 게 반가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장이 들어서면 세금이라도 좀 걷을 수 있고 지역발전을 위한 비용도 얻어낼 수 있으니 주민이 조금 불편해도 참으라는 식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개발독재 시대의 소외지역인 전북의 공통 인식이었다. ‘악취 내뿜는 공장이라도 많이만 와다오.’라는 부끄러운 현실이었다.

장점마을의 악취문제가 몇 차례 주민 항의에 따라 행정조사가 이루어졌지만, 그때마다 형식적인 조사에 그쳐 별문제 없다는 결론으로 어물어물 처리되고 말았다. 암이 집단으로 발생하여 희생자가 나오는 시점에서도 조사결과는 직접 원인이 공장에서 배출하는 발암물질이라는 결론을 내지 않았다. 주민이 죽어가는 데도 그저 행정편의에 치중하여 어물쩍 넘어가는 게 당시 정부의 관행이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해당 공장이 환경오염물질 기준치를 초과해 배출한 사실을 들어 공장을 폐쇄했다. 주민들도 20174월에야 건강 영향조사를 청원하여 비로소 국립환경과학원이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가 결론이 나왔다. 자치단체나 정부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국민이 환경으로부터 안전하거나,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입증한 셈이다.

이제 장점마을의 주민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일망정 더는 위험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발병하지 않은 주민들도 정부가 끊임없이 관리하여 더는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하고 전국에 비슷한 사례가 있을 것이므로 철저히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할 것이다. 더구나 장점마을의 경우처럼 공장이 이미 폐쇄되어 남은 자산이 없는 상태에서 피해자의 소송이 이루어져도 그 배상을 어찌할 것인지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전라북도에는 이와 비슷한 엉터리 비료공장이 여럿 있다. 해마다 봄이면 밭 가장자리에 무더기로 쌓이는 유기질 비료라는 비닐 포장을 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물질이 나온다. 이들 비료를 만드는 공장의 주원료가 하수처리장에서 배출하는 폐수 슬러지를 걸러 나온 찌꺼기라는 사실을 대부분 농민은 모른다. 다만 그 비료를 토양에 잘못 섞으면 잘 열려 크던 고추가 시들시들 말라 죽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안다. 그저 공짜로 주는 것이니 토양 위에 뿌려 도움이 되기를 기대할 뿐이다.

이제는 제발 그런 부실한 유기질비료를 자치단체에서 보조금을 주어 구입하여 결과적으로는 토양을 오염시키는 행정은 그만두기 바란다. 지역마다 생산하는 유기질 비료를 모두 수거해서 제대로 성분을 검사하여 문제 제품은 생산을 금지하는 행정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유기질 비료의 성분 가운데 유기질은 얼마 안 되고 대부분 부피를 채우기 위해 집어넣은 폐기물이 주종을 이룬다. 이런 것들이 토양과 주민 건강을 망친다.

이 일을 두고 지난 15일 전라북도가 감독 소홀을 이유로 부지사를 통해 장점마을 주민들에게 사과했다. 2008년에 마을 인근 비료업체의 관리권을 익산시로 이관했으나, 관리 감독에 소홀했음을 인정했다. 아울러 연초박 비료 생산이 추가된 사실을 알지 못했음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이미 전라북도의 공장설립 승인 관리로 주민이 피해를 당하고 있던 도중에 관리권한만 익산시에 넘겼으니 실제 책임도 전라북도가 감당해야 옳은 일이다. 슬그머니 발을 빼느라 관리권 이관을 들먹인 일은 어설픈 책임회피에 다름 아니다. 앞으로 보상 문제와 환자관리에 철저한 대응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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