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손가락이 쥐어든 ‘어음’
아픈 손가락이 쥐어든 ‘어음’
  • 전주일보
  • 승인 2019.11.1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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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칼럼
이 현 재 /논설위원
이 현 재 /논설위원

그동안 군산이 제일 아픈 손가락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식축사를 접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아픈 손가락은 통상 못난 자식을 지칭한다. 잘 난 자식들 틈에 낀 그 자식이 안타깝고 안쓰러워 하나라도 더 쥐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애틋한 마음이다.

그래서였을까. 문 대통령은 군산의 저력으로 군산형 일자리 대한민국 넘어 세계 전기차시대 주인공 될 것이라며 원대한 전망을 담아냈다.

하지만 궁금증이 남는다. 전기차가 과연 군산 경제에 숨통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현찰이 아니라 어음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사업 효과는 아직 미지수

문재인 정부 출범을 전후해 군산경제는 그야말로 퍼펙트 스톰에 휩싸였다. 20173월 현대중공업의 군산조선소 폐쇄에 이어 지난해 한국GM 공장이 철수되자 지역경제가 순식간에 붕괴됐다. 협력업체들이 도산하거나 떠나고 자영업이 붕괴되면서 인구 유출이 가파르게 진행됐다.

굵직한 국책사업이 잇달아 나온 것은 그나마 한 줄기 햇살이다. 새만금 국제공항, 새만금 신항만, 새만금호 태양광 건설 계획이 발표된 데 이어 지난달 24일 명신컨소시엄과 새만금컨소시엄의 전기차 생산 계획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사업 규모를 보면 현대조선소와 한국GM에 비해 족탈불급이다.

문 대통령은 군산 전기차 업체들이 2022년까지 4,120억 원을 투자해 1,900명의 고용을 창출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반면 한국GM 군산공장과 협력업체 고용규모는 그 8배에 가까운 14,000명에 달했었다. 현대조선소 5,000명까지 더하면 2년 사이에 무려 2만 명에 가까운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속가능성 문제도 남아 있다. 전기차 사업은 대표적인 스타트업이다. 우리보다 앞서 규모화를 추진한 중국의 경우 정부 지원에 힘입어 500여 개 사가 난립해 있지만 생산대수의 90% 이상이 빅3에 집중되고 나머지는 소량 주문 생산에 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엔 중국 정부의 보조금마저 크게 축소돼 사업을 접는 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다.

생산방식도 안정감이 떨어진다. 군산 전기차 컨소시엄은 중국의 전기차 업체인 퓨처모빌리티의 위탁생산에 나서게 된다. 퓨처모빌리티는 군산을 교두보로 한국 시장을 선점하고 미·중 무역 분쟁을 피해 미국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전기차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은 만만치 않다. 세계 굴지의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 개발에 명운을 걸고 있다. 중장기 투자계획만 해도 독일 폭스바겐그룹 520억 달러, 다임러 117억 달러, 포드 110억 달러에 이른다.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언제든지 제2GM 사태가 재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가뭄에 단비처럼 반갑지만 아직은 현찰이 손에 잡히지 않은 어음인 셈이다.

사업비 7조 규모의 새만금 태양광사업과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된 새만금국제공항도 마찬가지다. 재생에너지와 사회간접자본 확보 차원에 적지 않은 의미를 갖지만 직접적인 경제효과는 얼마나 될지 미지수다.

-가속도 붙은 전북도민 이탈 행렬

문 대통령은 군산을 꼭 집어 아픈 손가락이라고 했지만 전북사회에 아픈 곳은 군산만이 아니다. 전북 전체가 만성적인 낙후의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그 고통이 문 정부 들어서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문 정부 전반기에 나타난 주요 지표 추세를 보자. 무엇보다 삶의 질을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주민 이탈 행렬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것은 시사적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수록된 인구 순 이동을 보면 문 정부가 출범한 20175월부터 올 9월까지 25개월 동안 전북에서 빠져 나간 인구는 27,326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이명박 정부 5(2008~2012) 22,816, 박근혜 정부 4(2013~2016) 12,009명을 크게 웃도는 규모다. 이에 따라 전국 대비 전북의 인구비중도 같은 기간 3.59%에서 3.51%로 하락했다.

전북도민이 고향을 떠나는 이유는 자명하다. 소득 기반이 척박하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 기록인 2017년 전북의 지역내총생산(GRDP)을 보면 전국의 2.68%로 인구비중 3.59%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상대적인 가구소득도 문 정부 들어 악화됐다. 20174,777만원으로 전국평균 5,478만원의 87.2%였던 전북의 가구당 소득이 20184,860만원으로 전국평균 5,705만원의 85.19%로 떨어졌다.

소득이 적으니 재산 형성도 빈약할 수밖에 없다. 201726,189만원으로 전국평균 38,671만원의 67.72%였던 전북의 가구당 자산이 201827,041만원으로 전국평균 41,573만원의 65.04%로 더욱 벌어졌다. 순위로 따지면 17개 시도 중 꼴찌에 해당한다.

-실종 중인 국토균형발전

전북의 실정은 이처럼 악화일로지만 전북도민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지도를 보내고 있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키고, 못난 자식이 효도를 하는 인간사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된 1987년 이후 역대 정부 아래서 전북의 지역 발전과 투표성향이 엇박자를 이루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김영삼·이명박 정부 땐 해방 이후 예외적으로 전북의 GRDP 성장률이 전국 평균을 상회했다. 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아래서는 전북의 성장률이 가장 큰 격차로 전국 평균을 밑돌았다.

경제 지표 하나 들고 진보 정부를 폄훼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의 초심을 물을 수 있는 근거는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국정지표는 모두가 잘 사는 나라'다. 그 관건이 지역간 · 계층간 양극화의 해소임은 물론이다. 하지만 지방은 갈수록 황폐해지는데, 수도권에 대한 대대적인 개발 사업은 역대 정부를 능가한다.

말과 발이 따로 도는 국정을 보면서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부에게 국토균형발전 공약은 부도난 어음이냐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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