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호의 독후감 –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이명준 지음)
최영호의 독후감 –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이명준 지음)
  • 전주일보
  • 승인 2019.11.0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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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절한 운동권이 자율과 경쟁 조차 없이
전북 정치에 빌붙어 지역낙후를 부추겼나?"
최영호 변호사- 법무법인 모악
최영호 변호사- 법무법인 모악

뒤늦게 전북대 대학원을 다니게 된 2010년경. 전북대의 학내 게시판은 필자가 보았던 것과는 다른 이색적인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북한 인권’.

필자가 대학을 다닌 2000년. 각 대학은 탈 운동권 바람이 불었고, 비운동권이 학생회장에 당선됐다. IMF 이후 대학생은 졸업하면 취업은 할 수 있는 건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 반복해야 했다.

학교 곳곳에 반미, 자주, 통일, 노동 등의 구호를 내건 대자보가 붙어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취업’을 고민했다. 누군가는 대학생이 사회에 대한 ‘깊이’와 ‘고민’이 없다고 한탄했지만, 누군가에겐 사회에 대한 ‘깊이’와 ‘고민’이 사치로 여겨졌다.

대학생은 취업을 매개로 고시, 공무원 시험, 토론, 영어 회화, 면접 준비 등을 위해 모였다. IMF가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던 취업난은 더 심해졌다. 2000년대 초에는 반미 등의 구호를 볼 수 있었지만, 2000년대 후반에는 구호는 사라지고, 운동권은 고대 유물이 되었다.

그런데 전북대에는 등록금도 반미도 아닌 ‘북한 인권’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내 고향 전북은 진보 민주당 텃밭이라고 알았는데, 보수와 자유한국당 계열의 정당이 주장하는 북한 인권을 대학에서 얘기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한 형은, '전북대는 다 뉴라이트야'라고 했고, '전북의 민주당 정치인 중에 뉴라이트가 있다'고도 했다. 전북대에서 학부를 다녔던 한 친구는 푸른공동체라는 단어도 알려주었다. 도대체 전북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전북의 뉴라이트를 알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다.
전북대 뉴라이트라고 하면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행정관 20대 새누리당 여성 국회의원이 가장 유명했다. 그것만 가지고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란 책을 접하게 됐다.
90년대 중반 대학에서 운동권이 주류에서 밀려나기 시작할 즈음 입학한 저자가 NL 운동권에 입문하고 주체사상을 접하는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그리고 2012년 통진당 사태와 함께 왜 운동권이 시대를 벗어난 채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필자의 관심사는 ‘전북’의 운동권이었다. 이 책에서 ‘한총련’의 폐쇄성과 비민주성을 지적하는 부분에서 ‘전북총련의 전향’이라는 소제목이 있다. ‘90년대 후반 전북지역 주사파들이 일시에 전향을 했던 사건이 있다. 그 결과 한총련 바로 아래 단위인 전북총련이 순식간에 해체되었다. 뉴라이트로의 전향을 변절이라고 단정하고 비난만 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한총련의 하향식 의사결정 구조로 상층에서 전향을 결정하자 전북총련 전체가 전향한 점을 비판했다.

그리고 저자는 인터뷰에서 전향의 이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밝히고 있다. “슬픈 이야긴데. 이분들이 전북총련이니까 전라북도 쪽이잖아요. 전북대는 국립대니 그나마 그렇다 쳐요. 원광대 우석대 이 출신들의 30, 40대 운동가들은 먹고살 수가 없는 거죠. 서울대나 명문대 나오면 학원강사 하면 돼요. 이분들의 고민은 어느 길로 가느냐. 보수단체에서 만들어주는 북한 라디오 방송, 북한 민주화 네트워크 이런 곳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죠. 실제로도 그 사람들 받아 줄 수 있는 곳이 그런 곳밖에 없어요. 민주당이 받아주는 것도 아니고. 민주당은 전대협 전 의장이라던가,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처럼 상품 가치가 있어야 영입이 되지. 이 분들을 어디에 씁니까. 이 사람들이 결국 극우로 ‘변절’한 것처럼 보이는 거죠. 어렵게 사는 거에요. 불편한 진실인 거죠.”

정리하면 전북대의 서울로 간 뉴라이트는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보인다. 북한 인권 운동을 하거나 보수당으로 가 청와대 또는 국회로 갔다. 그런데 전북에 남은 그 많은 뉴라이트는 모두 뭘 하고 있을까?

뉴라이트를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김정은은 협상의 파트너이기도 하지만, 세습과 폐쇄로 북한 인민을 개돼지 정도로 여기는 김일성 삼대는 민족의 적이라는 모순은 분명히 존재한다. 둘 중의 어느 하나만 옳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전북은 진보도 보수도, 친북도 뉴라이트도 비빔밥같이 한 개의 정당에 어울려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지방행정, 지방정치도 시민단체도 혼돈의 8~90년대를 뒤로 한 채 어울렁더울렁 지내고 있다. 정치도, 정의도, 운동도 밥벌이가 되었고 가면을 쓴 채 속내를 숨겼다. 안 되는 건 있어도 되는 건 없고, 자율과 경쟁 없이 정치와 행정에 빌붙어 쇠퇴와 퇴보를 반복한 전북.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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