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을 줍는 마음
콩을 줍는 마음
  • 전주일보
  • 승인 2019.10.3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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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백 금 종 /수필가
백 금 종 /수필가

하늘이 맑고 푸르다. 누렇게 익은 벌판 위로 풍년가가 춤을 춘다. 땀 흘리며 일 년을 기다린 농부들은 수확의 기쁨에 팝콘처럼 들떠 있다. 우리 내외도 지난주 걷어 들린 콩을 마당에 쭉 깔고 타작을 시작했다.

주렁주렁 달린 콩꼬투리를 작은 막대로 두드렸다. 콩꼬투리가 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쩍 쩍 벌어졌다. 그 벌어진 속에서 콩알들이 투두둑 쏟아져 나왔다. 일 년간 열심히 농사지은 보람이다. 내가 노력한 만큼 땅은 튼실한 열매로 보답해 주었다. 대부분 녀석들은 내 앞에 얌전히 떨어졌다. ‘새 세상을 보고 싶었는데 참 잘 되었다.’는 듯이.밝은 태양 아래 은구슬처럼 동그랗고 튼실한 얼굴을 내밀었다. 참 뿌듯했다.

그런데 몇 녀석들은 그게 아니다. 무슨 불평이라도 있다는 듯 멍석을 벗어나 저 멀리 달아났다. 두들겨 맞은 것이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마치 아들이 어릴 적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장난만 칠 때 그러면 안 된다.’며 종아리를 때렸는데 그때 울며 뛰쳐나가던 모습과 같았다. 한참을 두들기고 나니 나를 배반하고 멀리 달아난 콩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웅성웅성내게 대드는 듯했다. ‘왜 때려요? 때리지 마요.’하고 주먹을 불끈 쥐는 듯했다.

나는 콩에 가만히 일렀다. 교단에 있을 때 어린 학생들을 타이르듯 했다.

너희들을 때린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길을 열어준 거다. 너의 인생에 대 변화를 일으켜 준거야. 머지않아 너희들은 영광의 길을 걸을 거야. 콩나물이 되고, 두부와 청국장도 되고, 더 참고 기다리면 된장도 되어 식탁을 풍성하게 하고 인간의 건강을 돕는 훌륭한 식품으로 변신할 거라고. 그래서 인간으로부터 귀한 대접도 받을 거라고.’

만물이 성장하는 데는 햇빛과 물, 그리고 공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폭풍우가 몰아치고 뇌성벽력이 칠 때 더욱 영글어진다. 그 넓은 바다도 크나큰 파도나 해일이 밀려와야 깨끗한 푸른 바다로 변신한다. 비록 고기나 해초에는 정신이 아찔할 순간을 안겨줄지 몰라도 바닷물이 뒤집히고 휘돌아 칠 때 그동안 쌓였던 폐기물을 밀쳐내고 깨끗한 바다로 자리를 잡는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자연현상이나 생물에서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필요하다. 사람도 시련을 겪어야 더욱 성숙해진다고 한다. 나도 누에처럼 구태의 옷을 벗고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 가려 한다. 고형물처럼 굳어 있는 생각이나 습관을 떨쳐 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하나…….

멍석 안에 떨어져 있는 콩들을 한데 모았다. 그리고 튕겨 나간 콩알들도 줍기 시작했다. 돌 밑에 떨어진 것도, 풀 속에 숨어 있는 것도.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는 콩알을 한 알 한 알 주웠다.

 ‘이렇게 주워 보았자 값으로 치면 얼마나 될까?’

 ‘이 시간 동안 다른 곳에서 알바라도 했다면 이보다는 더 벌 수 있을 텐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얻는 시대인데 왜 그렇게 경제관념도 없느냐고 콩들의 비웃는 소리가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는 일이다. 본래 농사란 한 톨 한 톨 거두어서 한 되가 되고, 또 한 되 한 되가 모여 한 말이 되고 나아가서 한 섬이 되는 것이지 한꺼번에 일확천금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농부는 본시 되는 대로 거두고, 주는 대로 받지 결코 욕심을 부리지 않는 존재이다. 올해 못하면 내년에 하고. 내년에도 못하면 그다음 해에 하고……. 이것이 바로 농심이다. 이는 농사뿐이겠는가? 세상일이 다 그러려니 싶다.

줍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 네 살 난 손자. 저도 줍겠다고 달려든다. 대견하다. 가만히 보고 있다고 누구 탓하지 않을 텐데 할아버지를 돕겠다는 태도가 귀엽다. 그것이 바로 자식을 기를 때의 기쁨이다. 커다란 일을 해서만이 예쁘고 대견한 것이 아니라 하찮은 일이지만 스스로 참여하는 인간성을 배워 가는 것이 기특한 것이다. 마치 내 앞에 고분고분 떨어진 잘 영근 콩알처럼.

곰곰 생각해 본다. 내가 줍고, 또 손자가 줍는 이 콩들의 염원은 무엇일까? 누가 무어라 해도 생명 연장이 아닐까 한다. 인간이 자녀를 낳고 또 손자를 낳으면서 대대로 이어 가듯, 추운 겨울을 지나 내년 새봄이 되면 새싹을 틔우고 자라서 또 열매를 또 맺고. 그래서 대대로 이어가는 것. 그것이 그들의 꿈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건강이라는 이유로, 생명보호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꿈을 깡그리 짓밟고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 아니 당연하다는 듯 파렴치한 태도까지 보인다. 이는 비록 콩들뿐만이 아니겠지만.

또르르 구르는 그 조그만 몸속에 무엇이 그리도 많이 숨어있기에 하늘 찌르는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지? 나도 사실은 웰빙을 위해서, 성인병을 뿌리 뽑기 위해서 콩부터 먹어야 한다며 지금도 콩 찾아 먹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니까 부지기수의 콩들이 나를 위해서 희생된 셈이다. 그런데 그간 콩에 대하여 미안하다거나 죄송한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콩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갑질일 수 없다. 그들의 소중한 생명을 아무 허락도 없이 마구잡이로 먹어댄 인간들이야말로 철천지원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콩들은 아무 불평이 없다. 밥에 넣으면 콩밥이 되고 발효시키면 된장, 고추장, 청국장이 되어 인간의 건강을 보필한다.

 

콩들아 미안하고도 고맙다. 앞으로 너희들의 거룩한 희생으로 우리 가족의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테니. 위로 시를 읊조리고 있을 때,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콩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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