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3년, ‘조국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촛불 3년, ‘조국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 전주일보
  • 승인 2019.10.3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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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칼럼
이 현 재/논설위원
이 현 재/논설위원

  역사는 과거의 시제로 오늘과 내일을 제시한다. 그 문법을 제대로 이해할 때 인류는 진보한다. 그렇건만 인간은 역사의 문맹이다. 헤겔은 그 어리석음에 대해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는 것이라고 독설을 날렸다. 이른바 맬서스의 트랩이다.

  이는 반독재 투쟁의 혁명과 반동의 역사로 점철된 우리 정치사에서 한층 도드라진다. 4 ·19의거와 서울의 봄, 6·10항쟁은 모두 우리 근대사에 있어 일대 모멘트였다. 계량하기 어려운 피를 머금고 싹 텄던 그 혁명의 씨앗을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키워냈다면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일찌감치 찬란한 금자탑으로 빛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소위 민주세력을 자임하던 진보진영이 분열했고, 그 틈을 타 군부와 수구가 물리력을 동원해 반동을 일으켰다.

  신동엽 그 역사의 퇴행을 반어법으로 성토한다. 그 비가(悲歌)를 듣노라면 퇴색된 혁명의 열정과 사라진 민주화의 꿈에 가슴이 시리다.

‘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에서>

 

촛불하늘에 드리운 먹구름

 

  그렇다면 촛불 혁명은 미래에 어떻게 기억될까. 화두 하나를 꺼내본다.

  “과거의 미래는 미래에 있고, 현재의 미래는 과거에 있고, 미래의 미래는 현재에 있다.” 세계미래학회 창립을 주도한 미래학자 존 매케일의 말이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들 두고 모든 미래는 미래와 과거, 현재에 분점 되고 인류사의 책임과 가능성은 그 모두에 서로 얽혀 상호의존의 인과를 이룬다는 뜻일 것이라고 해석한다.

  한국미래학회 창립의 주역인 최정호 전 연세대 교수는 미래학회 50, 대한민국 100기념사를 통해 두 세대 동안의 대한민국 역사를 미래가 기승을 떨던 1960~70년대’, ‘현재가 기승부린 1980~90년대’, ‘과거가 기승부린 2000년대로 회고하며 선문답을 보탰다.

  식견이 짧은 나는 화두풀이에 참여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다만 한 때는 미래였던 오늘에 서 보니 과거가 오히려 미덕이었으며, 그래도 역사의 진전을 추동하기 위해선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풀이해볼 따름이다.

  그 맥락에서 보면 3년 전 촛불은 미래의 희망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실정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촛불은 결단코 포기할 수 없는 미래의 희망이다.

  따져보면 촛불 정권 아래서 의미 있는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기조 아래 최저임금이 상당 수준 높아졌고, 많은 비정규직들이 직업의 안정을 찾았다. 묵었던 해고자 문제도 일부 해결됐고, 노동시간 단축도 점진적 실행 단계에 들어갔다. 선거법 개정과 검찰개혁 등 공정사회를 위한 해묵은 과제의 해결도 추진되고 있다. 남북의 긴장 완화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변화다.

  하지만 총체적인 평가를 놓고 볼 때 미래의 초석을 깔았는지는 의문이다. 지역간 · 계층간 양극화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국론은 진영과 진영으로 첨예하게 분열됐다. 경제는 대내외적으로 어려워지고, 대미 · 대일 외교는 순탄치 않다. 남북 관계도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런 판국에 조국 사태를 경과하면서 진보진영의 도덕성이 치명상을 입었다. 정부·여당의 내로남불이 새삼 입줄에 오르고 덩달아 대증요법이 판치는 정책 운영의 미숙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러다보니 촛불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한때 80%를 오르내리던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평가가 부정평가 밑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수구 세력들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대적인 반격의 전열을 가다듬었다. 26개월 앞으로 다가온 차기 대선에서 그들이 득세한다면 다시 구체제로 완전히 회귀할 판이다.

 

대명제는 정권 재창출

 

  이런 상황에서 촛불 정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권 재창출이 대명제로 떠오른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5·18폭동으로 규정하고, 그 학살의 주범 전두환을 구국의 영웅, 민주주의 아버지라고 미화하는 수구 세력에게 다시는 5.000만 대한민국 공동체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정치를 개혁가와 선동가가 경쟁하는 장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반성 하지 않는 구세력은 불의와 부패에 안주하는 거대한 탁류일 뿐이다.

  따라서 정권을 재창출하지 못할 때 비극이 시작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권의 비극은 역사적 경험이다. 이명박 · 박근혜 정부 9년의 암흑기도 그로부터 비롯됐다.

  개혁의 완수를 위해서도 정권 재창출은 선결 전제에 해당한다.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평등과, 공정, 정의를 강조한다.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은 흔들림 없는 국정지표다.

  하지만 개혁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국민의 투표로 확보된다. 나폴레옹은 신은 더 많은 병력을 보유한 군대의 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복의 시대 권력의 원천이었던 군대는 민주주의 시대인 오늘날 다수의 유권자로 환산된다.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정권을 재창출 할 수 있을까. 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내년 총선의 핵심 이슈로 떠오를 경제와 민생 정책의 주밀한 재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도덕성 회복도 시급한 과제다. 그 모든 것은 촛불정신의 회복으로 수렴된다.

 

 

3년 전 전신을 휘감았던 감동의 전율을 상기하며 베이컨을 떠올려 본다. “무엇보다 선한 마음을 추구하라. 그러면 그 밖의 다른 것들은 모두 부여되거나 아니면 상실된다 해도 그것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 선한 마음이 촛불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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