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래봉 일기
서래봉 일기
  • 전주일보
  • 승인 2019.10.2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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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 서래봉 오르는 길은 텅 비어있다
뒤로하는 발자국을 그나마
위로하는 것은
나뭇가지 끝에서 바람에 부대끼는 빛바랜 낙엽 몇 잎 뿐이다

옆구리에 절망이 비수처럼 꽂힌 초겨울
혼자라는 생각이 등골을 타고 내려 올 때 흔적 없이 길을 가는 것이
어디 바람뿐이랴
세상살이 힘들고 지칠 때면 서래봉 한 모퉁이에 핀
산설화山雪花를 만나야 한다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그 밤에 눈물로 심었던 꽃
꽃그림자 등에 지고 하산할 때
삶의 길이 막혀
눈앞이 캄캄해지면
어둠에 묻힌 솔바람 소리는 귀로만 들리지 않는다

별들이 내려 와 잠든 약수터에게 길을 물으니 발아래 길이 있다 한다
 
/서래봉西來峰 : 전북 정읍시 내장면 내장산 9개의 봉우리 중 하나 높이 624m.

내장산은 9개의 봉우리 (서래봉/624m, 불출봉/622m, 망해봉/679m, 연지봉/670m, 까치봉/717m, 신선봉/763m, 연자봉/675m, 장군봉/696m)로 이뤄졌다. 그중 암릉미의 극치는 단연 서래봉이다. 농기구 '써레'를 닮았다고 해서 서래봉이다. 밑에서 올려다보면 바위들이 길쭉길쭉하게 생겼으며 드문드문 간격이 벌어져 험해 보인다. 서래봉 능선 암릉지대에 올라서면 널찍한 마당바위가 있어 땀 빼며 올라온 수고로움을 한방에 날일 수 있다. 서래봉 정상에서 보면 북쪽의 정읍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절벽 아래 남쪽으로 펼쳐진 내장사계곡이 신비롭다. 서래봉 암봉들은 워낙 뾰족하게 솟아 있어 우회하도록 철계단 길이 나있다. 능선을 따라가면 약수를 만난다. 서래약수다. 갈수기에는 물의 양이 적고 수질이 안 좋다. '음용수로 부적합하니 음용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있다. 하지만 어쩌랴, 땀은 등줄기를 타고 내리고 목은 타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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