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은 없다’는 결기의 회복을
‘두 번은 없다’는 결기의 회복을
  • 전주일보
  • 승인 2019.09.2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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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칼럼
이 현 재 /논설위원
이 현 재 /논설위원

#1. 안도현 시인의 그날은

그날은 절대로 쉽게 오지 않는다. 그날은 깨지고 박살 나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다음에 온다. 그날은 참고 기다리면서 엉덩이가 짓물러진 다음에 온다. 그날은 그날을 고대하는 마음과 마음들이 뒤섞이고 걸러지고 나눠지고 침전되고 정리된 이후에 온다 /안도현

20151028일 밤 안도현의 시로 소회를 대신한 문재인 당시 새정치연합 대표의 트위터는 비장감이 흘렀다. 분당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실시된 이날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 기초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예비신당 후보들에게도 밀리는 참패를 당했다. 가뜩이나 폐족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던 터였다.

 

#2. 선물처럼 다가온 그날

대표적인 현실 참여 진보시인의 결기 가득한 시구에 담은 문 대표의 비장한 결의가 통했을까. 당시 정치 상황으로 볼 때 기약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그날은 예기치 않은 선물처럼 찾아왔다. 재보궐선거 6개월 뒤 실시된 20164월 총선에서 희대의 옥쇄파동까지 낳은 한나라당의 공천파동에 힘입어 제1당으로 부상했고, 다시 6개월 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촉발한 촛불혁명에 힘입어 정국을 완전히 장악했다. 그리고 또 다시 6개월 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탄핵 결정으로 실시된 대선에서 승리해 집권의 염원을 이뤘다.

 

#3. ‘과거가 기승부리는 현재

하지만 집권 24개월이 지난 지금 문 대통령의 그날이 국민들이 소망했던 그날인지는 의문이다. 경제는 불안하고 국론은 양분됐다. 대미·대일 외교는 마찰음을 빚고 남북 협력은 요원하다. 그 모든 것이 여론에 반영돼 취임 당시 80%를 웃돌던 지지율이 40%선을 위협하며 긍정평가보다 부정평가가 더 높은 데드크로스의 고착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미래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현재 행동(action)과 부작위(inaction)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1966년 창립된 세계미래학회(WFS, World Future Society) 웹사이트를 장식하고 있는 문구다. 그 미래학의 선구자 존 매케일은 과거의 미래는 미래에 있고/ 현재의 미래는 과거에 있고/ 미래의 미래는 현재에 있다는 화두(話頭)를 던졌다.

 

#4. ‘도쿄대식 화법내로남불 화법

지지율 추락의 모멘트는 무엇일까. 물론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이 결정적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유권자들이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하는 이유는 세 가지 중 하나다. 좋아해서, 필요해서, 상대가 싫어서. 그 중 가장 강력한 동인은 상대가 싫어서. 사람들은 무엇을 사랑하는가보다 증오하느냐에 따라 투표한다.

이를 최근의 국민 정서에 적용하면 미움과 증오의 대상이 한국당에서 민주당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해석마저 가능하다.

왜 그럴까? 야스토미 아유미 도쿄대 교수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의 안전성보다 자신의 직위 유지에 급급해하는 전문가들의 기만적인 화법을 도쿄대식 화법이라고 꼬집는다. 그리고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국민들을 질리게 하는 일본 엘리트들의 기만적 언행이 도쿄대식 화법이라면 문제인 정부의 그것은 바로 내로남불 화법인 셈이다.

 

#5. ‘인식의 사각지대

최근의 여론조사는 두 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해 긍정보다 부정 평가가 높은 가운데 그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연령과 지역별로는 30대와 호남을 제외한 모든 응답자가 강한 부정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북을 비롯한 호남과 이른바 문파로 일컬어지는 열성 지지자들이 국면을 보는 대통령의 눈에 착시를 일으키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잘잘못을 냉철하게 가려 보내는 비판적 지지가 아니라 찬성을 위한 찬성으로 나타나는 무조건 지지는 일종의 독배에 해당한다.

 

#6. ‘바지 입은 대처의 항변

영국 노동당 토니 블레어 당수는 앤서니 기든스 교수가 제시한 <3의 길>을 들고 1990년 총선에서 신자유주의 신봉자인 철의 여인마커릿 대처의 11년 보수당 집권을 종식시켰다.

집권 후엔 기존의 사민정책과 달리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강력히 추진하는 한편 사회보장제도에 개혁의 칼날을 들이대며 실용주의적 중도좌파 노선을 추구했다. 그 결과 일부 지역경제가 활력을 되찾고 실업률도 떨어졌다.

그러나 비판의 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유럽과 미국의 사회주의 정당들은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킨다는 블레어의 수정 노선이 평등 없는 자유로 귀결되고 있다며 바지 입은 대처라고 조롱했다. 이에 대해 블레어는 집권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응대했다.

문재인 정부도 다를 바 없다. 정권을 재창출 하지 못하면 다시 무력한 야당으로 전락할 뿐이다.

 

#7. ‘두 번은 없다’ - 쉼보르스카

199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 여류 시인 비슬라바 쉼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모차르트의 구조와 베토벤의 웅장함이라는 평을 받는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실습없이 죽는다// () //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하루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 ’

문재인 정부는 결코 실패해선 안 될 정권이다. 그것이 촛불이 부여한 역사적 소명이다. 하지만 최근 행보에선 이상 징후가 감지된다. ‘두 번은 없다는 각오로 초심의 회복이 필요하다. 조국도, 문재인 대통령 자신도, 그 누구도 촛불 민심보다 중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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