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 전주일보
  • 승인 2019.09.2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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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 /편집고문
김 규 원 /편집고문

태풍 타파가 지나면서 한반도 남동부에 강풍과 물 폭탄을 퍼부어 제주와 부산 등지에 큰 피해를 내고 대한해협을 지나 동해로 향하고 있다. 태풍의 오른쪽은 아니지만, 워낙 많은 비를 품은 태풍이어서 그 피해가 막심할 것으로 예상한다. 링링에 이은 타파의 피해까지 겹쳐 우울한 주말이 되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 토요일 서울에서 두 곳에서 촛불집회가 열렸다. 한쪽은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자유한국당 등 보수세력의 집회였고 다른 한쪽은 검찰청 앞에서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촛불집회였다. 벌써 3주째 우리 정가에는 조국 태풍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며 모든 것을 휩쓸고 먹어치우는 중이다.

국회 청문회에서 결정적인 한 방을 내지 못한 야당은 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을 임명하자 오래된 수법인 삭발 투쟁으로 전환했다. 이언주 무소속 의원이 시작한 이 삭발병은 황교안 한국당 대표에게 전염되고 막가파 극우 인사 김문수, 강효상, 이주영, 심재철, 차명진 등에 번졌다.

지난날 군사독재 시절에 김영삼이 몇 차례 삭발했을 때, 지금 자유한국당의 뿌리인 민주공화당 인사들은 빨갱이들이나 하는 수법이라고 했다. 그때는 강력한 독재세력의 힘에 어떤 저항 수단도 없던 민주인사들이 최후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삭발 투쟁이었다. 그 후에 노동조합 운동을 하는 이들이 걸핏하면 삭발하고 나서면서 보수 정권은 더욱 삭발 투쟁 방법을 비난하고 폄하했다. 그러던 그들이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를 팽개쳐 두고 머리를 깎아가며 조국 한 사람을 끌어내리는 일에 올인한다.

수사와 기소권을 모두 장악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검찰,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는 철옹성을 이루어 거대 권력을 형성한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계획하고 집행하는데 사시 출신이 아닌 조국 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판단으로 문 대통령은 다소의 잡음을 무릅쓰고 임명을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 언론과 보수 정치인에게 제공된 조국과 그 가족과 인척에 대한 모든 정보가 전달되고 까발려져 국민을 자극하고 정국을 흔들었지만, 국정 지지도 하락이나 정당 지지도 하락으로 인한 손해보다는 검찰개혁이라는 과제가 더 중대한 것이었기에 강행했다고 본다.

야당은 얼씨구나 하고 이 틈에 정부를 바짝 몰아붙여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하겠다고 벼르면서 삭발 퍼포먼스를 하지만 국민의 시각은 냉랭하다. 이미 국민은 어설프게 머리나 깎아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보다 훨씬 똑똑하다. 절대 그들에게 다시 힘을 주어 제멋대로 나라를 말아먹도록 두지 않을 실력을 지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광주 · 전라 지역은 아직도 문재인 정부에 69%의 지지율을 보내고 있고, 조국 장관의 임명도 57%가 검찰과 사법개혁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응답했다는 결과가 어제 발표되었다. 그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일부 언론은 호남이 문 대통령에 강력한 지지를 보냈으므로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지금도 지지를 보낸다는 해석을 내놨다.

하지만 그런 언론이야말로 그들 나름의 인식으로 한심한 해석을 한 짓에 불과하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若無湖南 是無國이라고 했던 것은 호남인들이 왜군을 막고 싸운 일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 나라 역사에서 호남인의 판단은 언제나 옳았다. 개인의 이익보다 나라를 선택했고 호남은 영원한 야당 지역이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여당을 선호하고 정부를 지지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은 그게 최선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회가 제대로 돌아간 날이 며칠이나 되던가? 보수 야당과 언론은 새 정부가 들어서자 바로 깎아 내리기에 매달려 국회를 여는 일 따위는 관심 없고 세비만 챙기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선하는 하는 일과 정권을 되잡을 생각에 몰두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난 정부에서 했던 일들을 까맣게 잊었다. 제 잘못은 전혀 반성하지 않고 갖은 방법으로 현 정권을 깎아내리고 폄훼하기에 몰두한다. 호남인들은 그들의 행동을 보고 겪었기에 다시 지지할 수 없고 오늘 같은 민주사회가 이루어진 적이 없음을 알기에 현 정부가 어설프고 부족하지만, 아직도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검찰을 감싸는 보수 세력은 보이지 않는 그들의 밑을 들추면 그야말로 오물이 쏟아질 사람들이다. 당연히 그들은 검찰을 옹호하고 거대 검찰 권력의 칼끝이 자신들을 향하지 않도록 하는 게 살아남는 방법이다. 검찰개혁이라는 말 자체가 황송한 금기사항일 것이다. 국민이야, 나라야 어찌되든 힘을 지닌 검찰을 두둔하고 모름지기 도와야 하는 건 숙명이다.

조국을 임명한 문 대통령의 마음속엔 고 노무현 대통령의 검찰개혁 여망이 함께 들어있다고 본다. 이번이 아니면 영원히 할 수 없는 기회라고 생각하여 모든 비난을 무릅쓰고 강행했으리라는 충정을 엿본다. 막강한 권력을 쥔 대통령도 어찌할 수 없는 거대 검찰의 권력이다. 더구나 지난 정권들처럼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간섭하여 검찰과 국회의원을 낱낱이 살피던 그 용이한 통제 수단도 포기했으므로.

그러나 이런 정치상황을 보는 국민의 마음은 답답하고 어디엔가 마음을 둘 데가 없다. 특히 호남인들의 마음은 더욱 그렇다. 아무래도 아마추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정부, 노조에 휘둘리고 재벌을 어찌할 수 없는 경제현실을 매끄럽게 풀어가지 못하고 야당에 휘둘리는 정부가 못마땅하다. 그렇다고 마구잡이 보수들에게 마음을 줄 수도 없다.

지금 국민의 마음은 최백호의 노래처럼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라는 상태인 듯하다. 이럴 때 탁! 쏘는 사이다 같은 그 무엇이 필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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