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오라기의 기다림
해오라기의 기다림
  • 전주일보
  • 승인 2019.09.19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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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백 금 종 /수필가
백 금 종 /수필가

삼천 천변 길을 따라 아침산책에 나섰다. 냇물에 씻긴 듯 불어오는 새벽 공기가 신선하다. 심호흡을 할 때마다 밤새 늘어졌던 심신에 활력이 돋는다. 천변 길섶에는 갖가지 풀들이 이슬을 머금은 채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초록 내음을 내 품어 상쾌하다. 풀벌레들의 불협화음도 정겹게 느껴진다.

냇물 쪽으로 눈을 돌린다. 징검다리 사이를 넘어가는 물들이 속살거린다. 조금 넓은 곳에서는 여유롭게 흐르고, 좁은 곳에서는 휘돌아 흐르는 그 소리가 마치 교향곡의 셈여림을 닮았다. 물소리도 리듬이 있고 화음을 이룬다. 그래서 귀가 호강을 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일도 리드미컬하고 아름다운 화음을 이룰 때 평온한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던가?

 

얼마쯤 걸었을 때, 징검다리 위에 서 있는 해오라기 두 마리가 보였다. 조용하고 차분한 아침에 어울리는 풍경이다. 두 다리를 곳곳 하게 세우고, 날개는 곱게 매무시한 옷섶처럼 단아했다. 가녀린 듯 굳센 듯 길게 내 뻗은 목에는 우아하면서 한편으로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한 녀석은 남쪽을 바라보고 또 다른 한 녀석은 북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림이라면 영락없이 대칭 구도를 이루는 한 폭의 정물화이다.

왜 그 녀석들은 한 방향을 바라보지 않고 서로 반대편을 바라보고 서 있을까? 다 같이 한 쪽을 바라보고 있으면 먹이가 나타났을 때 경쟁하게 될까봐 서로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경쟁하며 다투다 보면 둘 사이의 관계도 멀어진다. 그러다 감정의 골이 깊어져 금이 가게 됨은 우리 인간 사회에서 많이 보아오지 않았던가? 미물이지만 공생 공존하는 모습은 이기주의에 물들어 질시하고 반목하는 우리의 모습과 다른 듯 해 경이로웠다.

나는 그들의 행태가 기특해서 녀석들이 다음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오로지 한 곳만을 오도카니 바라보고 있는 녀석들은 그저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듯했다. 물이 졸졸 흐르는 냇물 징검다리에서 미동 없이 서 있는 해오라기. 동과 정의 자연 순리를 대변하는 듯하다.

해오라기의 자세는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먹이를 얻기 위해 집중하며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 또한 해오라기가 되었다. 기다림. 어쩌면 우리 인생도 기다림의 연속이 아닌가? 나도 생의 변곡점 마다 이어진 기다림 끝에 오늘에 이르렀다. 어려서는 멋진 성년이 되길 기다렸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하지 않은 타계로 기울어진 가세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친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가장이라는 짐을 물려받은 나는 한 푼 두 푼 모으면서 고단한 시절이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풋풋하고 꿈 많았던 청장년 시절을 기다림 속에 보냈다.

지방간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을 때도 있었다. 음식 섭생을 잘못한 탓이었다. 아내의 극진한 간호가 주야로 이어졌다. 처방해 준 약도 성실히 복용하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7년 동안 병마와 싸워 고통의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기다렸기에 이룬 결과가 아닌가 한다.

나를 기다림의 포로로 만든 분홍빛 추억도 떠오른다. 피 끓는 청춘 시절, 달 밝은 밤 그 여인은 나를 무던히도 애타게 했다. 약속 시간 보다 늦게 나타났던 그 여인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대며 미소로 얼버무리곤 했다. 그래도 나의 진심이 통하길 기다렸다. 연서라도 보낸 날은 어떠했던가? 언제쯤 핑크빛 답신이 오려나 기다리며 마음 졸였던 순간들은 지금도 아련함으로 가슴속에 남아 있다.

기다리는 세월은 노년인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 이제는 나 자신의 발전이나 영달을 염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욕먹지 않는 평범한 노인이 될까에 마음을 쓴다. 모나고 융통성 없는 늙은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소박한 바람도 있다. 부끄럼 없이 살다가 한 줌의 재로 돌아갈 그 날을 기다리는 마음은 나만의 소망은 아닐 터이다.

모든 생물은 기다림 끝에 자라고 꽃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봄에 돋아난 싹은 무더운 여름을 견디며 기다려야 풍요를 맞이할 수 있고, 꽃피는 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은 겨울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보내며 기다렸기 때문이다. 질흙이 1000도 넘는 불길을 견디며 기다릴 때 아름다운 도자기로 탄생 된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입맛을 돋우는 전통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 그리고 김치까지도 숙성이란 험난한 과정을 거치고 숨죽이며 기다릴 때 명품이 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기다릴 때만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기다림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 한다. 가슴 뛰는 설렘이라 한다. 기다림은 삶의 원천이요 원동력이기도 하다. 행복이라는 열매도 오랜 세월 동안 다듬으며 참고 기다릴 때 얻는 것 아닐까?

나의 해오라기를 향한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지고 점점 높아지는 햇살이 물결 위에 내려앉아 반짝였다. 그때, 미동도 하지 않던 해오라기의 머리가 약간 움직이는 듯싶던 그 순간 해오라기 한 마리가 잽싸게 수중으로 자맥질 했다. 붙박이 같던 하얀 몸이 섬광처럼 재빨리 움직였다. 솟구쳐 나온 그 해오라기 부리에는 물고기 한 마리가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드디어 목적을 이룬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소득이 아닌가! 해오라기 가족의 아침 끼니는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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