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우(福雨)를 내려야 용이다
복우(福雨)를 내려야 용이다
  • 전주일보
  • 승인 2019.09.18 15: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현 재/논설위원
이 현 재/논설위원

다시 총선의 계절이 다가왔다. 금배지를 꿈꾸는 입지자들의 얼굴과 이름을 담은 플래카드가 추석연휴 인사를 빌미 삼아 거리마다 어지럽게 날리고 출마를 알리려 명함을 건네는 손길 또한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하지만 유권자인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정치인을 대하는 시민의 냉소는 어제와 오늘, ()과 서(西)가 따로 없다. ‘두 악당이 4년마다 무대에 올라 누가 덜 악한가를 겨루는 정기행사라는 말은 일반화의 오류를 담은 지나친 악담이지만 우리 정치 현실의 일단을 반영한 뼈아픈 비판이기도 하다.

하지만 선거로 구성되는 대의 민주주의는 우리사회 운영을 위한 최선의 시스템이기도 하다. 우리 정치계가 아무리 혼탁하다 해도 전제나 독재, 왕조 체제로 다시 돌아갈 순 없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이 선물이다(present is the present)’라는 말은 조건부 진실에 해당한다.

민주주의는 최악의 시스템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모든 정치 체제를 제외하면 그렇다고 설파한 윈스턴 처칠의 말도 같은 맥락의 반어법이다.

다른 측면에서 정치인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이라는 아포리즘도 있다. 정치인을 비난하고 정치를 냉소하면서도 그들이 치는 장단에 휩쓸려 춤을 추는 모습이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총선의 계절, 유권자 스스로 정치인의 놀음에 홀리지나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원주(院主)와 단하(丹霞)의 교훈

 

당나라 때였다. 한 고승이 있었다. 어느 해 가을 그는 운수행각에 나섰다. 낙양 혜림사에 이르렀을 때 날씨가 몹시 추웠는데 땔감마저 없었다. 스님은 법당으로 가서 목불을 꺼내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깜짝 놀란 원주(院主) 스님이 큰 소리로 꾸짖었다. “어찌하여 부처님을 태우는가?”

그는 막대기로 재를 헤치며 대답했다. “사리를 얻으려 합니다.” 원주는 비웃으며 야단쳤다. “목불에서 무슨 사리요. 그건 나무토막이요.” 그는 대꾸했다. “그렇다면 왜 나를 꾸짖는가?” 그 스님은 단하(丹霞)였다.

우리는 원주처럼 사는가, 단하처럼 사는가? 모르면 모르되 거개가 원주처럼 미망 속에 허우적댄다.

그렇다고 장삼이사야 크게 탓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우리의 대표라는 사람들이다. 평범한 국민들이 어둠 속을 헤매지 않기 위해 뽑아놓은 그들이다. 허나 그들이 더 원주처럼 설쳐댄다. 주인인 국민은 대표를 뽑아놓고서 매번 그들에게 뒤통수를 맞는다.

어떤 화가가 임금에게 그림을 그려줬다. 임금이 물었다. “무슨 그림이 가장 그리기 어려운가?” 화가가 답했다. “개나 말 같은 게 어렵습니다.” 임금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엇이 가장 그리기 쉬운가?” 화가가 답했다. “귀신이나 도깨비 같은 게 가장 쉽습니다.”

개나 말은 누구든지 잘 알고 있는 데다 조석으로 보는 것이어서 대중의 평을 피하기 어렵지만 귀신이나 도깨비는 형체가 없는 것이어서 기묘하게만 그리면 남을 속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의 대표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일상과 소박한 행복을 핍진하게 일구는 사람이 참 정치인이지, 되도 않는 이상을 제시하며 국민을 속이는 사람은 진정한 대표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야 할 것임은 말할 것 없다. 불경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태어날 때 입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 어리석은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신을 찍고 만다.’ 말이 아닌 소음의 폐해는 옛날 일만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의 정국이 흡사 그 모양이다.

 

선거판에 득실대는 이매망량(魑魅魍魎)

 

정치판에는 산속의 요괴 이매(魑魅)와 물속의 괴물 망량(魍魎)이 득실댄다. 이매망량은 남을 해치는 악인을 비유하는 말이다. 돈도깨비, 권세도깨비, 거짓도깨비, 폭력도깨비이밖에도 헤아릴 수 없다. 이 헛것들에게 얼을 빼앗기지 않는 이가 드물다.

이들 이매망량에게 현혹되기 때문에 우리는 헛된 희망 속에 허우적댄다. 그러니 이 허깨비들에게 홀리지 않고 정신을 차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렇기에 더욱 마음을 다잡고 정신을 똑바로 추슬러야 한다.

龍雨 龍雨(용아! 비를 내려라, 용아! 비를 내려라)/ 龍不雨 龍不龍(용이 비를 안 내리면 용이 용인가)/ 龍雨 龍龍(용이 비를 내려야 용이 용이지)/ 龍雨 龍雨(용아! 비를 내려라, 용아! 비를 내려라)’

고운(孤雲) 최치원의 글이다. 당에 유학 가서 과거에 급제한 그 문장이다.

그때 당은 심한 가뭄으로 사회가 혼란했다. 고운이 이 글을 쓰자마자 하늘에서 큰비가 내렸다. 이내 가뭄이 해소되고 풍년이 들었다고 전해진다. (), (), (), 단 세 글자로 비를 내리게 했다니 과연 당대 최고의 문장가일시 분명하다.

고운의 문장을 떠올리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우리는 선량(選良)이 되겠다고 나서는 숱한 정치인을 만난다. 그들은 저마다 청사진을 내비치며 유토피아를 약속한다. 그러나 서민들의 고달픈 현실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게이트에서 터져 나온 이게 나라냐는 신음이 조국 사태정국에서 이건 나라냐는 말로 변환되고 있다. 적폐 청산을 외치면서 새로운 적폐를 쌓고 있다. ()이 업을 낳는 꼴이다.

이런 와중에 총선전국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선거법 개정의 윤곽이 드러나고 총선 일정이 확정되면 선거판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그와 함께 헛소리와 헛것이 가일층 기승을 부릴 것은 명약관화하다. 도대체 금배지가 무엇이기에 이처럼 아수라장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