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전북 네트워크’를 상상하다
‘범전북 네트워크’를 상상하다
  • 전주일보
  • 승인 2019.09.04 15: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현 재 /논설위원
이 현 재 /논설위원

시국이야 어찌 돌아가건 추석은 추석이다. 아직 상현(上弦)의 모습도 온전히 갖추지 못한 달이 한가위 보름달로 채워지려면 아흐레나 남았건만 거리의 상점에 쌓여가는 선물용 상품들이 괜스레 마음을 달뜨게 한다.

24절기와 명절 등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반복되어 고래로 전해오는 주기전승의례(週期傳承儀禮)의 하나로써 추석은 안식이었다.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기며 주린 배를 움켜잡고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쌀 한 톨을 위해 땀 세 말, 일미삼두(一米三斗)의 노고를 쏟아 부은 백성들은 추석에 이르러 결실을 거두고서 노동의 수고를 내려놓았다.

그 수확의 7~8할이야 그대로 지주인 양반들의 곳간으로 향했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풍요를 누렸으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고 비원(悲願)의 격양가(擊壤歌)를 불렀다.

그리고 갓 수확한 햇과일이며 햇곡식으로 차례를 지내며 조상의 음덕에 감사의 예를 올렸다. 대지(大地)의 작가 펄 벅 여사가 우리의 제사문화를 접하고 한국인은 죽어서도 영생한다사후에 대한 보험이라고 말했던 소중한 정신유산이다.

 

한국인의 유전자 고향

 

20세기 추석은 고향이었다.

산업화 이전까지 고향은 존재의 뿌리이며 귀소처였다. 수천 년 농경시대를 관통하는 동안 촌락 중심의 주거 양식을 이루며 태어나 죽을 때까지 한 곳에 붙박고 살았던 한민족에게 고향은 안주(安住)를 의미했고 고향이탈은 부초(浮草) 같은 삶으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랬으니 부모형제와 친지, 이웃들과 체온(體溫)을 나누며 형성된 정서는 우리민족의 염색체에

강한 유전자질로 녹아내렸다. 산업화로 정착성(定着性)이 무너지고 대량이주 시대가 열렸지만 그 유전자는 귀소본능으로 작동해 명절이면 민족 대이동의 신풍속도를 낳았다.

잿빛 앨범 속의 사진은 당시의 추석과 설 귀향이 연어의 모천회귀를 방불케 한 필사의 몸부림이었음을 보여준다.

도로와 차량 등 수송 수단이 변변치 않았던 시절, 향우들은 명절에 맞춰 1년 내내 그리던 고향을 겨우 한두 번 찾았으니 고향 길은 말 그대로 귀성전쟁이었다.

기차가 거의 유일했던 1960년대 명절이면 고향 행 열차표를 발매하는 서울역은 끝이 보이지 않는 장사진이 펼쳐졌고, 밤공기를 그런대로 견딜 수 있는 추석 때는 귀성표를 구입하기 위해 새우잠을 자는 노숙도 마다하지 않았다. 1970년 고속버스가 등장했지만 귀성표를 거머쥐기 위한 노숙과 판을 치는 암표는 여전했다.

실개천 소리도 그리웠던정지용 시인과 백골이라도 돌아가길 염원했던윤동주 시인의 고향은 바로 우리 민족 유전자의 정핵인 셈이다.

그러나 세태가 변하면 세시풍속도 따라 변하는 법이니 오늘날 추석도 예외가 아니다. 가족이 해체 수준을 넘어 붕괴로 치닫고 전래의 세시풍속 역시 자본주의 합리성에 자리를 내줬다.

무엇보다 퇴색한 것은 귀성 풍속도다. 교통수단과 도로가 촘촘하게 확충됐지만 고향을 찾는 향우들의 발걸음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500만 대전북의 허와 실

 

귀성 실종은 진한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김완주 전 지사는 2008529일 군산상공회의소가 주최하고 군산발전포럼이 주관한 조찬 포럼에서 ‘250만 전북도민을 언급했다. 김우중 전 대우회장을 만나 말했다는 전북의 인구 목표치다. 김 전 회장의 돌아온 말은 한술 더 떴다고 한다. 새만금에 유입될 인구를 300만 명으로 잡고 향후 전북인구를 500만 명으로 내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송하진 현 지사는 첫 도지사 선거에 나서면서 ‘500만 대전북 시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목하 전북도민이 보고 있는 것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 전북소멸이다.

정치인의 공약(空約)이 어디 송 지사에 그칠까. 연평균 7% 경제성장으로 임기 말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달성해 세계 7대 경제대국을 일구겠다던 이명박과 통일대박을 내걸었던 박근혜의 허언에 비교하면 이는 족탈불급이다.

실제로 ‘500만 대전북이 전혀 근거 없는 말도 아니다. 1949년 실시된 해방 후 첫 인구 총조사에 따르면 전북의 인구는 205485명으로 남한 인구 2,0188,641명의 10.16%를 점했다. 정점을 찍었던 1966년까지만 해도 비중은 8.65%로 감소했지만 절대인구는 2521,207명으로 증가했다.

인구 이동이 전무하다고 가정하고 당시의 비중을 올 8월 현재 전국 인구 5,1847,538명에 대입하면 전북의 인구는 5267,710~4484,812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중 1823,982명이 지금 전북에 남아 있으니 전국에 산재한 전북의 향우사회 규모는 1949년을 기준으로 하면 3443,728, 1966년을 기준으로 하면 266830명에 이르는 셈이다.

 

소중한 인적 자산 향우

 

역내 인구의 두 배에 가까운 전북 향우는 상상력으로 이어진다. 그들을 전북의 자산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을까.

국제사회에는 고국을 떠난 이민자 사회, 디아스포라가 있다. 그들의 애국심은 모국의 소중한 발전 동력이 되고 있다. 각국 또한 교민들을 끌어안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오래 전 세계화상대회를 개최하며 국경 안팎으로 호응하고 있다. 이를 모델로 해서 우리나라도 세계한상대회를 개최하며 한민족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향우사회는 그 디아스포라의 국내 판이다. 하지만 그 자산이 고스란히 방치되고 있다.

전북향우들의 애향심을 결집하면 전북 발전의 동력을 창출할 수 있지 않을까? 관광산업과 접목시킬 수도 있고, 고향산품 구매운동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국회가 고향세를 거론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지방재정 확충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향우들의 고향 이탈 의식을 반영하는 귀석 실종을 보면서 떠올려 보는 추석 단상이다. 돌돌(乭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