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원’과 ‘사불삼거’ 그리고 조 국
‘향원’과 ‘사불삼거’ 그리고 조 국
  • 전주일보
  • 승인 2019.08.2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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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 재/논설위원
이 현 재/논설위원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탄생한지 23개월, 대한민국은 미래를 향해 얼마나 달려왔을까?

230여 명의 국회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동의하고 헌법재판소가 전원 일치 판정으로 탄핵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으며, 문재인 정부 초기에 국민의 80% 이상이 대통령을 지지했으니 그 동력으로 지금쯤은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설계 작업을 마무리했어야 옳을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위기감의 확산이다. 어쩌다가 넘쳤던 희망이 사라져버렸을까?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과 일본의 경제 도발 등 제어할 수 없는 외부적 환경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위기의 진짜 본질은 인사 실패라는 비판 또한 만만치 않다. 비전과 능력도 없이 국정의 중요 직책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지적이다.

그들의 모습에서 향원(鄕愿)’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사불삼거(四不三拒)’의 준열한 자기 검열은 걷어치운 채 권력을 모두 거머쥐고자 하는 한국사회의 비틀어진 엘리트 상을 보게 된다.

▲덕으로 분식된 사이비 군자

내 문 앞을 지나면서 내 집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내가 유감스러워 하지 않을 자는 바로 향원이다. 향원은 덕의 적((德之賊也)’이다.”

전쟁과 수탈이 끊이지 않던 고대 중국 춘추전국시대 공자는 도()를 설파하며 말살된 인간성 회복에 진력했다. 도의 근간은 서(). 내 마음() 같이() 남을 헤아리라는 것이니 역지사지, 측은지심, 공감과 통한다. 이런 공자도 극도로 혐오한 예외적인 인물이 있으니 논어에 언급돼 있는 향원이다.

향원은 어떤 인물이며, 공자는 왜 그토록 향원을 혐오했을까. 향원은 유가에서 군자의 대척점에 자리한다. 군자는 공자가 그린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부단한 수양으로 어진 성품과 높은 학덕을 갖춘 그는 덕치의 적임자다. 그렇다고 출세와 명예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시의가 맞으면 박시제중(博施濟衆), 세상으로 나가 널리 덕을 베풂으로써 뭇 백성을 구제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물러나 조용히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살아도 그만이다.

군자와 대비되는 인간상으로 소인배(小人輩)가 있다. 도량이 좁고 간사한 사람이다. 보통의 소인배라면 평범한 사람들도 한눈에 분별할 수 있다. 탐관오리나 아첨꾼이 그 전형이다.

하지만 향원은 일별할 수 있는 그저 그런 소인배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놓고 보면 흠 잡을 데가 없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겉모습에 혹한 고을 주민들은 모두 향원을 칭송한다.

성현들이 묘사한 그 위선된 모습을 보면 고을 주민들이 왜 하나같이 향원을 칭송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맹자는 비난하려 들어도 비난할 것이 없고 풍자하려 해도 풍자할 것이 없다. ()함에는 충신(忠信)한 것 같으며, 행함에는 청렴결백한 것처럼 보여 여러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고 그 분식된 인품을 말한다.

주희는 한 지역 내의 원인(愿人) , 근후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으며 도덕적 삶의 모범으로 칭송 받는다라고 그 위장된 모습을 그렸다.

가장 속물적인 인간이 최고의 덕을 가장했으니 그 악폐는 구태여 말할 필요 없다. 음험하게 세상에 아부해 얻은 세평을 내세워 항상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며, 속된 무리와 한 패가 되어 이상적인 개혁을 실현하려는 행도지사(行道之士)의 앞길을 저지하고 방해한다.

그 결과 국가와 사회에 심대한 해악을 끼치고 뭇사람을 도탄에 빠뜨리기 십상이다.

▲청렴도의 기준 사불삼거

조선의 관료들은 사불삼거를 불문율로 삼았다. 재임 중에 절대로 하지 말아야 네 가지(사불)부업을 하지 않고 땅을 사지 않고 집을 늘리지 않고 재임지의 명산물을 먹지 않는 것이다.

조선 영조 때 호조 서리를 지낸 김수평은 전설의 아전이다. 청렴하고 강직해 숱한 일화를 남겼다. 김수평의 동생 역시 아전이었다. 어느 날 김수평이 아우의 집에 들렀는데 마당 여기저기에 염료통이 놓여 있었다. “아내가 염색업을 부업으로 한다는 동생의 말에 김수평은 염료통을 모두 엎어버렸다. 그리고 우리가 나라의 녹을 받고 있는데 부업을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무엇으로 먹고 살라는 것이냐?”고 꾸짖었다.

풍기 군수 윤석보는 아내가 시집 올 때 가져온 비단옷을 팔아 채소밭 한 뙈기를 산 것을 알고는 사표를 냈다. 대제학 김유는 지붕 처마 몇 치도 못 늘리게 했다.

꼭 거절해야 할 세 가지(삼거)윗사람의 부당한 요구 청을 들어준 것에 대한 답례 경조사의 부조다.

사육신 중의 한 사람인 박팽년(朴彭年)은 한 친구의 능력을 높이 사관직에 추천했다. 얼마 후 임용된 친구가 고맙다며 땅문서를 보내오자 박팽년은 땅문서를 찾아가던지, 관직을 내놓던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전갈을 보냈다.

청송 부사 정붕은 영의정이 꿀과 잣을 보내달라고 부탁하자 잣나무는 높은 산 위에 있고 꿀은 민가의 벌통 속에 있다고 답을 보냈다.

우의정 김수항은 그의 아들이 죽었을 때 무명 한 필을 부조한 지방관을 벌주었다.

▲문 정부 도덕성의 잣대

문재인 정부의 인사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2기 내각의 핵심인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 후보자는 자신의 의혹에 대해 청문회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겠다며 정면 돌파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정치적 도의가 법적 진실에 선행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듯한 그의 태도이다. 문 대통령의 페르소나로 일컬어지는 조 후보자의 비리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문 정부의 도덕성도 치명타를 입게 된다.

그의 진퇴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돼 있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이현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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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2019-08-22 06:49:41
옳은 지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