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처분
살처분
  • 전주일보
  • 승인 2019.08.1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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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목숨을 땅 속에 묻는 것은
하늘에게 두려운 일이고
짐승들을 생매장 시키는 것은 인간으로서
죄를 짓는 일이다

산 것이 산 것을 죽여 없애는 것을 살처분이라고 하는데
날벼락이다
차라리 안락사라도 시키지
구덩이를 파고 무지막지하게 묻어버리는 것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소야 돼지야 구제역을 아느냐
오리야 닭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라는 말
들어나 봤냐

죽음을 눈앞에 둔 소와 돼지들은 눈물을 흘리고
오리와 닭들은
자신의 운명을 알기라도 하는 듯
끊임없이 울어댄다

포클레인이 팔을 몇 번 뻗자 세상이 잠잠하다

방역 상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푯말과 통제테이프가 망연자실 하늘만 쳐다본다

 

/석매 양계장 : 전북 익산시 함열읍 석매리 소재

살처분殺處分은 병에 걸린 가축이나 동물을 없애는 행위다. 구제역에 걸린 소나 돼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걸린 닭·오리 등을 죽여 매장하는 식이다. 전염병이 퍼질 우려가 있는 지역에서 실시하는 도살이다. 가축이나 동물처럼 생사람을 살처분한 적이 있다. 1781년 11월 29일 대서양에서 영국 노예선 종(Zong)호의 선장 콜링우드가 흑인 54명을 쇠사슬에 묶어 바다에 던졌다. 이유는 전염병과 돈 때문이었다. 항해 도중 기착한 섬에서 노예를 더 잡아들여 적정 수용 인원을 초과한 배에 식수 부족으로 전염병이 도졌다. 이때 선원 7명과 흑인 60여 명이 죽자 선장은 극단적 조치를 취했다. 선원들에게 '노예들이 병사하면 우리 책임이지만 익사하면 보험사가 피해를 보상한다'며 다그쳤다. 다음날 30일에는 비교적 건강한 노예 79명을 더 죽였다. 133명이 살처분되었다. 1812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 39명이 희생되었다. 흑인은 물건이었을 뿐이다. 이 사건들은 노예 해방 논쟁을 낳았다. 결국 노예 제도는 1833년에서야 법적으로 없어졌다. 살처분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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