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낙서
  • 전주일보
  • 승인 2019.08.0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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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백 금 종 /수필가
백 금 종 /수필가

파리에서 몽마르뜨언덕을 천천히 걸었다. 온갖 색깔의 피부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모여있는 듯한 언덕길, 오밀조밀 파스텔톤의 건물에 연이은 카페에 앉아 끝 모를 대화를 이어가는 넉넉한 언덕. 몽마르뜨언덕의 매력은 낯선 곳인데도 낯설지 않고 북적이는 사람들이 저마다 지닌 자기만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자유를 실감할 수 있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 몽마르뜨는 커피와 파리의 빵 냄새, 온갖 인종들의 체취가 비좁은 카페거리를 가득 메운, 언덕을 오르면서도 언젠가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거리였다.

나이든 내게는 조금 가파르고 계단이 많아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오밀조밀한 골목길 그림같이 아름다운 집과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정상이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사크레쾨르 성당, 악기들이 흘려내는 음악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고, 멋진 초상화를 앞세운 화가들이 발길을 더디게 했다. 꽃을 파는 가게, 화가들의 크고 작은 그림, 멋진 예술품을 판매하고 사는 사람들이 왁자하게 어울린 언덕의 풍경은 왜 사람들이 이 언덕을 잊지 못하는지 알 수 있게 하였다.

거기에 내 눈을 사로잡은 커다란 낙서판이 자리하고 있었다. 건물의 한쪽 면에 세계 각국의 언어로 온통 사랑한다는 문구만 적혀 있다는 거대한 벽, 한국인들이 사랑해 벽이라고 이름 지었다는 낙서판 아닌 낙서판이다. 호기심에 낙서판을 읽어보았다. 영어, 일어, 중국어, 라틴어 등 각 나라의 글자로 뭐라고 적어 놓았다. 어찌 보면 타일에 글씨를 적어 이어붙인 듯도 싶은 거대한 벽면이다.

유심히 살펴보니 우리나라의 글자도 보였다. 낙서판의 맨 위쪽에 적혀 있는데 내용은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었다. 그 글 가운데 나는이라는 글씨가 거꾸로 붙어있다. 일부러인지 한글이 생소한 작업자가 위아래를 몰라 뒤집어 붙인 것인지 모르지만, 그 또한 멋이지 싶다. 사랑이란 원래 모양을 따르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저 한없이 주는 마음, 나를 바치는 마음이 사랑이라면 내가라는 글자는 거꾸로이든 옆으로 서든 문제가 아닐 터이다.

낙서. 낙서를 생각하자 아련한 옛일이 생각났다. 내가 전주교육대학에 재학하던 시절이었다. 아마 2학년 때쯤으로 기억하는데, 어느 날 대학의 화장실에 들어갔었다. 화장실 벽에 온통 낙서로 도배가 되어 빈 곳이 없었다. 나는 볼일을 보면서 느긋한 마음으로 그 내용을 찬찬히 읽었다. 시저(Caesar)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가 적혀 있었는가 하면, 니체(Nietzsche)신은 죽었다.’와 같이 철학적인 명언도 보였다. 그리고 몽마르뜨언덕의 낙서판에 쓴 내용과 같이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도 부지기수였다. 한 편에는 남을 비방하거나 욕설을 하는 등 조금은 저급하고 불량한 내용도 있었다.

읽은 내용을 자세히 기억해 두었다가 그 내용을 분석하고 요약하여 교육대학 신문에 기고하였다. 기고한 내용은 상아탑에 있는 지성인으로서, 아니 미래의 교육을 담당할 교사로서 저급한 낙서는 하지 말아야 않겠느냐는 논조로 썼다. 그리고 그 낙서들을 하루속히 지우고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을 가꾸어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나름의 주장을 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학생들 사이에서 화장실이 깨끗하게 사용하자는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낙서가 없고 깨끗한 화장실이 되었다. 그 끝에 학보사에서 원고료 1,000원을 주겠다고 돈을 받아가라는 내용이 게시판에 나붙었다. 그러자 돈 찾으면 한 잔 내라.’는 친구들의 성화가 빗발쳤다. 물론 그 돈을 찾는 즉시 남부시장 막걸리집에 몇 친구들과 몰려가 막걸리 몇 잔에 푸른 꿈을 실어 들이켰다.

이처럼 은밀한 장소에 하는 낙서란 남모르게 자기 내면세계의 생각이나 자랑, 아픔 따위를 적어놓는 노출 행위가 아닌가 한다. 발산하거나 드러내지 못한 욕구에 대한 표출이다. 또는 특정한 상대에게 자기의 생각, 소망 따위를 인식시키거나 드러내기 위한 작위적인 행위일 것이라는 짐작을 한다.

몇 년 전 이탈리아에 수학여행을 간 일본 여대생 6명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대성당벽과 기둥에 학교와 자기들 이름을 큼지막하게 써 놓아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다. 내가 그곳을 둘러보았을 때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낙서가 심심찮게 눈에 보였는데 큰 문제로 비화하지 않은 걸 천만다행이라고 할까?

낙서가 예술로 발전한 것도 있다. ‘그라피티라고 하는데 1960년대 후반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미국의 흑인 젊은이들이 뉴욕의 브롱크스를 중심으로 건물 벽이나 지하철 등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구호와 그림을 그리면서 시작되었다 한다. 이후 그라피티는 힙합(hip-hop) 문화와 결합하면서 확대, 발전되어 뒷골목 범죄자들의 낙서로 폄하되던 지위를 벗고 유럽과 미국 도시에서 친숙한 거리 미술로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어쩌면 조금은 자신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 특정한 사람만 알아보도록, 또는 모두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픈, 가슴에 들끓는 무엇을 알리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리스 아테네 남동쪽 포세이돈 신전 기둥에는 시인 바이런의 낙서가 남아 있다고 한다. '나는 결코 비겁하게 살지 않는다. 백조처럼 살다 죽겠다.'라고.

그래도 세상 어딘가에 나 백 아무개를 사랑한다는 낙서가 한 줄쯤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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