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이나 온전한가?
개천이나 온전한가?
  • 전주일보
  • 승인 2019.07.3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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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칼럼
이 현 재 /논설위원
이 현 재 /논설위원

개천에서 용 난다? 한국 사회에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다. 죽은 속담을 모아 엮은 사어집(死語集)이 있다면 맨 첫 장()에 수록될 법한 말이다.

통계청 설문 조사는 그 실상에 대한 국민적 공감도를 웅변하고 있다. 자식 세대의 계층 상승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매우 낮다낮다고 답한 비중이 200629.0%에서 201550.5%로 급증했다. 반면 매우 높다또는 높다고 답한 비중은 40.0%에서 31.0%로 떨어졌다.

그래도 31%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다니 적지 않은 위안이 아닐까? 한국 사회 전체로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북 사회에선 어림없는 일이다. 두 개의 보고서가 그 실상을 웅변한다.

@전북 공교육 붕괴의 고발장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의 지방대학 문제의 분석과 시사점은 실로 충격적이다. 대학 졸업 후 현저하게 나타나는 임금 격차를 무려 26,644명의 방대한 표본을 통해 분석하면서 그 원인이 출생지에 따라 벌어지는 초중고 학력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규명하고 있다.

보고서의 골자는 지방에서 태어난 대졸자는 서울 출신 대졸자에 비해 16.4%의 낮은 임금을 받으며, 소규모 업체나 전공과 맞지 않은 직장에 다닐 확률이 높다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 원인의 3분의 2는 출생지에 따른 수능 성적 차이 때문이라는 분석으로 귀결된다.

정작 충격적인 내용은 전북 관련 부분이다. 성장단계별 구분을 막론하고 전북에서 태어난 학생들의 수능점수가 전국에서 압도적인 최하위로 조사됐다.

수능시험이 처음 도입된 1994년과 2003년 수능 백분위 점수의 지역별 · 성장단계별 격차에서 전북에서 태어난 학생들은 서울 출신보다 11.29점이나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충북·제주·광주·전남 등 같은 하위권 지역과 비교해도 그 차이는 현격하다. 고교 소재지를 기준으로 할 때 이들 지역 학생들의 수능점수는 서울 출신에 비해 6점정도 낮은 데 그쳤지만 전북 출생 학생들은 그 격차가 11~13점에 달했다.

전북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전국 최악의 저임금을 받으며 사회에 진출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김 연구위원은 대학 이전 단계의 교육 격차 때문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보고서는 붕괴된 전북의 교육현장에 대한 고발장인 셈이다.

동국대 김주환 · 남기성 교수의 학벌주의 지표개발 및 추이 분석 연구의 내용도 별반 다름없다. 회사원의 꽃이라는 임원 수에서 전북 출신은 인구 비중을 훨씬 밑돌고 있다. 2005년 기업체 전체 임원의 지역 점유지수에 있어 전북 출신은 302명으로 전체 7,094명의 4.26%를 차지하는 데 그치고 있다.

분석 시점 당시 임원 승진 평균 나이가 50대 중반에 이르고, 그들의 출생 연도인 1950년대 전북의 인구 비중이 10%였던 점을 감안하면 전북 출신 기업체 임원은 인구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역 현실 외면하는 거대담론

10년도 넘은 해묵은 보고서니 지금은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을까?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김승환 교육감 취임 이후 전북 수험생들의 수능 평균표준점수를 보면 전국 평균의 근사치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구부러진 통계에 불과할 뿐이다.

선호하는 대학과 학과 선택의 폭이 큰 1등급과 2등급 비율을 보면 전국 평균과 일정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70% 안팎이 1등급과 2등급인 상산고 재학생 및 재수생 응시자를 제외하면 통계 수치의 의미는 더욱 퇴색될 것임은 물론이다.

실제로 일반고 학생들의 표준점수 및 1·2등급 비율은 무너진 전북 공교육을 반증한다. 일반고만 따로 떼 내어 분석한 전국 100위권의 일반고 수능 상위 등급 학생 비율과 서울대 입학생 수에서 전북의 고교 명단은 해마다 찾아볼 수 없다.

전북의 일반고 학력 수준이 왜 이처럼 전국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사회 · 경제적 요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전국 최하위의 소득 수준이 그대로 사교육비 격차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김 교육감의 전북 교육행정이 책임을 면할 순 없을 것이다.

상산고 사태는 그 상징적인 사건으로 다가온다. 김 교육감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과 함께 대표적인 자사고 폐지론자다. 그 명분에는 상당한 공감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교육 격차의 토양인 양극화의 그늘을 벗겨내지 못한 채 추진하는 교육 평등은 말 그대로 공허한 구호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더구나 전북 사회는 지역간 · 계층간 양극화가 교차하는 지점에 한국사회의 최대 낙후지대로 존재하고 있다. 그 척박한 토양은 김 교육감으로 하여금 국가적 거대담론인 교육 평준화의 환상을 꿈꾸기보다 말라비틀어지고 시궁창으로 변해 더는 용을 배출하지 못하는 개천이나마 제대로 복원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미리 읽어보는 김 교육감 송사(送辭)

김 교육감은 상산고 자사고 철회에 대해 교육부가 부동의 결정을 내리자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법적 제소를 일찍부터 예고된 바이고 정부와 교육부를 향해 이 시점부터 더 이상 전북교육청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의 협력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격앙된 발언을 쏟아냈다.

하지만 전북도민을 볼모로 한 그 발언은 폭언이나 다름없다. 소신을 가장한 독선과 교육행정을 사유화하는 모습에서 중국의 한 혁명원로의 비장한 송사(送辭)마저 들린다.

중국 대륙을 공산화한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과 인민공사 등의 잇단 경제계획 실패로 4,500만 명의 중국 인민을 굶주림으로 죽게 했다. 또 그로 인해 권력 기반이 위태로워지자 홍위군을 앞세워 문화대혁명의 공포정치를 실시했다.

천윈(陣雲)은 그런 마오쩌둥을 두고 마오 주석이 1956년에 죽었더라면 업적은 불멸로 남았을 것이다. 1966년에만 죽었어도 과오도 많지만, 공이 더 크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1976년까지 살았으니...”라고 탄식했다.

김 교육감도 초선, 재선, 3선의 임기로 나눠 비슷한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필자만의 예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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