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전북의 ‘춘화추실(春花秋實)’
자치전북의 ‘춘화추실(春花秋實)’
  • 전주일보
  • 승인 2019.07.1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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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칼럼
이 형 재 /논설위원
이 현 재 /논설위원

송하진 지사가 민선 71주년 기자회견에서 춘화추실(春花秋實)’을 언급했다. 전북도정을 진전시켜 전북의 대도약에 방점을 찍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계절의 춘화추실에는 질서가 있다. 가을의 결실을 위해서는 먼저 봄에 꽃을 피워내야 한다. 재선의 송 지사도 초선 때인 민선 64년 동안 전북도정이 나갈 방향을 차근차근 재정립하면서 전북의 지속 가능한 발전 방안을 다지는 데 역량을 축적해왔다고 강조했다.

꽃은 이미 피워냈으니 이제 결실을 거두는 일만 남았다고 말한 셈이다. 송 지사의 춘화추실은 재선 출마선언의 화법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지난해 초 출마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재선에 나서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고 답했다. 초선 4년간의 성과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묻어 나왔던 대목이다.

=낙후에 갇힌 자치전북 4반세기

과연 전북도정은 결실의 계절을 앞두고 있을까. 낙관하는 송 지사와 달리 많은 도민은 자치전북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송 지사와 도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의 괴리는 어떻게 설명될까. 현실의 거울인 통계를 통해 그 간극을 따져보자.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는 송 지사 재임 기간 중에 조금도 완화되지 않은 전북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18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송 지사가 재선에 나서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던 2017년 전북도민의 가구당 자산은 27,041만원으로 전국 평균 41,573만원의 65.04%에 그쳤다. 지역별 순위는 17개 시·도 중 최하위다.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으로 따져도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재산과 동의어인 전북도민의 가구당 순자산은 22,755만원으로 전국 평균 34,042만원의 66.84%를 기록하며 맨 밑바닥에 자리했다.

가구당 소득도 마찬가지다. 전국 5,705만원의 84.24%4,086만원으로 14위를 기록했지만 전북의 아래에 위치한 전남, 강원, 충북과 소득 차가 무의미할 정도로 비슷하다.

송 지사 초선 4년간을 통틀어 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도지사에 취임한 201468.65%였던 전국 평균 대비 순자산 비중이 201566,83%, 201669.90%로 조사됐다. 4년 내내 전국 평균의 65%대 후반에서 박스권을 형성하면서 불과 0.01%포인트 개선됐음을 보여준다.

전북의 빈곤이 온통 송 지사 도정 탓은 아닐 것이다. 지역내총생산(GRDP) 추세는 지방자치 4반세기를 관통하는 전북의 낙후 상태를 가감 없이 웅변한다.

단체장 직선 원년인 1995년 전북의 GRDP는 국내총생산(GDP)3.38%였다. 그러다 송 지사 직전 김완주 도정의 민선5기가 끝난 20152.92%0.46%포인트나 뒷걸음 쳤다. 같은 기간 전북의 인구 비중은 전국 총인구의 4.26%에서 3.56%0.70%포인트 감소했다.

인구감소율과 GRDP 감소율을 백분율로 환산하면 25년 내내 전북의 1인당 GRDP 비중이 거의 제자리걸음을 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정통성도전받는 자치전북 대표들

통계의 함정을 지적하는 아포리즘은 한층 이지러진 자치전북의 속살을 들춰낸다. 거짓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통계의 허구성을 꼬집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정치가 벤자민 디즈레일리의 경구다.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한 걸음 더 나간다. ‘팩트는 흔들 수 없지만, 통계는 구부릴 수 있다.’ 두 경구를 따라 평균의 함정에서 빠져나와 전북도민의 가구당 자산 규모를 다시 따져보자.

북도민의 빈곤이 가일층 심각한 양상으로 다가온다. 27,041만원으로 전국 평균의 65.0%였던 수치가 전국 1위인 서울의 6220만원에 대입하면 44.90%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일련의 수치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지방자치 아래서 전북도민의 삶은 왜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고 있을까.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한국사회의 모순이 우선적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그것이 자치전북 대표들의 면죄부가 될 순 없다. 지방자치는 흔히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일컬어진다. 또 민주주의 대표의 정통성은 절차적 정당성과 효율성을 겸비할 때 완성된다.

절차적 정당성은 새삼 거론할 필요 없을 것이다. 단체장과 지방의원 모두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에 따라 다수결로 선출됐다.

하지만 그들이 효율성까지 담보해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전북의 현실이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그렇다면 지난 4반세기 동안 전북의 자치는 정통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대표들에게 위임돼 왔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대표들에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유권자 책임론이 있다

지방자치는 한국 현대사에 있어 전인미답의 혁신이었다. 혁신의 두드러진 특질은 정해진 길이 없다는 것이다. 혁신의 또 다른 특질은 모든 구성원이 함께 펼치는 예술이라는 점이다. 말 그대로 전사회적 뒷받침이 필수다.

따라서 자치의 수준은 주민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한다. 방향타를 잡을 대표들을 제대로 선출하는 책임도 유권자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보다 행동으로 증명해야

춘화추설’, 문학적 감수성이 물씬 풍기는 송 지사의 낙관론은 자치전북 반세기의 현실인 통계수치를 곱씹게 만든다. 각종 수치는 전북의 지역사회가 퍼펙트 스톰에 휩싸여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퍼펙트 스톰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풀 한 포기 남아돌지 않는다. 낙관보다 위기의식이 절실한 게 전북의 현실이다.

말 보다 그 사람의 행위를 보라고 했다. 낙후의 거센 파고에 표류하고 있는 전북호의 키를 잡은 송 지사의 미려한 수사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을 보고 싶은 이유다./이현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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