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통이 한류를 만나서
요통이 한류를 만나서
  • 전주일보
  • 승인 2019.07.0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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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금 종 /수필가
백 금 종 /수필가

광저우에서 오후 730분 발 로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정된 좌석에 앉자 열기가 확 올라왔다. 나는 잠시 눈을 창밖으로 돌려 광저우 공항을 내려다보았다. 여행길에 공항에서 활주로를 바라볼 때마다 내 마음은 들뜨고 두근거렸다. 내가 아는 곳이든 낯선 곳이든 거대한 비행기가 하늘에 떠올라 그 먼 곳까지 간다는 자체가 날 들뜨게 하는 것이다. 은빛 날개의 비행기들이 쉼 없이 오르고 내리는 활주로는 하늘길의 시작이면서 끝이다. 비행기에 오를 때마다 이번 여행도 편안하고 즐거운 일이 가득하기를 비는 마음이 된다.

승객들이 들어와서 착착 자리를 메워 나갔다. 탑승구가 닫히고 안전벨트 싸인이 켜지자 비행기는 붉은 노을의 서녘 하늘을 향해 사뿐히 날아올랐다. 광저우 공항을 한 바퀴 돈 비행기가 정상고도를 유지하고 칠흑같이 어두운 중국의 서북 하늘을 날고 있을 무렵이었다. 비좁은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몸이 불편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특히 허리가 불편하여 가벼운 통증이 간헐적으로 밀려왔다.

광저우에서 2010년 아시안 게임이 열렸던 올림픽 공원을 관광할 때도 허리가 불편했었다. 그런데도 이런 기회가 또 있을 것인가 생각해서 한곳이라도 더 보겠다고 욕심을 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치솟은 타워의 웅장함을 눈에 새기고 주장(珠江)의 물길 따라 펼쳐진 아기자기한 풍광에 빠져들었다. 빌딩이 숲을 이루는 시내를 걸어보면서 광저우의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에 젖어보려 했었다.

광저우는 북경에 이어 두 번째로 아시안 게임이 치를 만큼 발전된 도시이며 서울 강남의 어느 번화한 거리만큼이나 화려하고 낭만이 숨 쉬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중국 남부의 관광지여서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바쁘고 젊은이들의 발랄한 모습에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베트남이 가까운 위도여서 날씨는 우리나라의 한여름보다 훨씬 뜨겁고 습한 기온이다. 가마솥 같은 더위에 줄줄 흐르는 땀을 훔쳐내면서도 나이든 내가 언제 또 오겠나싶어 욕심을 내어 걸었던 것이 무리였다

의자에서 불편한 몸을 풀기 위해 목을 흔들어보고 머리도 두드리면서 스트레칭을 해 보았으나 어림도 없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허리를 잡아볼까 했으나 그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흔들면서 스트레칭을 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다가 통로를 지나 뒤편으로 가 보았다. 그곳의 조금 넓은 공간에서 몸을 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맨 끝에 좌석 세 자리가 연속 비어 있었다. 이곳에 누워서 허리를 다스리면 조금은 나을 듯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자리가 아닌 곳에 누울 수가 없어서 의자에 앉아서 스튜어디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마침 스튜어디스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때다 싶어 짧은 토막 영어로 “I have back pain.” 말하면서 눕는 시늉을 했다. 그 스튜어디스는 나를 찬찬히 바라보다가 우리말로 한국분이세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기가 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아니 한국말로 말하란다. 매우 반가웠다. 그리고 허리가 몹시 아픈데 이곳에서 좀 누워서 가면 안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스튜어디스는 흔쾌히 가능하다라면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친절을 베푼다. 나는 모포와 방석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즉시 갖다 주었다. 나는 그 빈자리에서 편안하게 누워 허리를 펴고 바로잡을 수가 있었다. 우한(武漢)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을 듣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스튜어디스 배려로 허리를 펴고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우한을 지나서도 그 자리가 비어 있다면 계속 누워서 가야지.’ 하고 생각했으나 많은 승객이 탑승하는 바람에 더는 누릴 수 없었다.

내 자리로 돌아온 이후에도 그 스튜어디스는 내 곁을 지날 때면 미소로 인사하거나 때로는 불편한 곳은 없느냐고 물으면서 상냥하게 대했다. 나는 그 스튜어디스에게 한국말은 어떻게 배웠느냐고 물었다. 송혜교가 출연한 태양의 후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등 한국 드라마에서 배웠다는 것이다. 그 간 한류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쓴다는 소리를 미디어를 통해 들었지만, 실제 사례를 현장에서 생생하게 목도한 것이다.

나는 그 스튜어디스가 고마워서 노인복지관에서 배운 짧은 중국말로 <니 더 밍즈?> 하고 물었다. 그녀는 메모지를 꺼내 간자로 쓰고 한국어로는 <장월여>라고 말하면서 오늘 이 비행기의 기장(중국 남방 항공사)도 한국인이라며 우리나라에 호의를 느끼는 눈치였다. 가름한 얼굴에 이지적인 그녀의 눈빛이 새별처럼 반짝이고 더욱 예뻐 보였다.

스튜어디스란 본디 승객의 안전과 편안한 여행을 위해 최대한 서비스하는 전문 직업인이다. 그녀가 내게 보여준 호의가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까다로운 항공기내 규정을 들이대며 승객의 불편을 아랑곳하지 않는 융통성 없는 승무원을 수없이 보았기에 나는 퍽 고맙고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로마에 도착하니 벌써 날이 환하게 밝아 오고 있었다. 나는 출입문을 나서면서 < 런시 니, 워 헌 가오싱.> 하고 인사했다. 그녀도 <즐거운 여행 되세요.> 하며 환하게 웃었다. 아마 이번 로마 여행은 퍽 상쾌하고 신나는 일이 많을 것 같다.

(2019.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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