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 김승환, ‘교육감’ 김승환
‘학자’ 김승환, ‘교육감’ 김승환
  • 전주일보
  • 승인 2019.06.2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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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칼럼
이 현 재 /논설위원
이 현 재 /논설위원

물음 하나. 김승환 교육감은 학자인가 정치인인가? 전북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 교육감에 출마해 3선을 기록했으니 법학자이자 정치인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감이 광역자치단체 단위의 선출직이라는 점, 여기에 사회적 무게와 영향력을 고려할 때 정치인에 방점을 찍게 된다.

이는 김 교육감이 사적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개인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하나의 명제가 떠오른다. ‘권한과 책임의 문제다.

-동전의 양면, ‘권한책임'-

학자와 정치인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전문가 집단이다. 그러나 두 집단은 책임을 경계로 구분된다. 학문의 영역은 기본적으로 이론과 논리의 세계다. 학자들은 때때로 상상의 날개를 달고 허공을 부유해 간섭주의자(interventionist)’라는 소리를 듣지만, 책임으로부터는 자유롭다.

신념과 이상이야말로 지식인으로서 학자들의 고유한 몫이며, 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최종적인 권한은 그들의 손에서 떠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학자는 사적 개인에 해당된다. 우리가 사회의 작동원리로 권한 있는 곳에 책임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학자들에겐 면죄부가 되는 셈이다.

반면 정치인의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정치인은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를 수립한다. 효율성을 따지고 상황을 돌아보면서 선제적으로 추진할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권한이 모두 그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 따라서 결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문제는 학자들이 학문과 이론의 세계를 뛰쳐나와 현실 정치에 몸담을 때다. 종종 소신에 매몰돼 위기를 초래하지만, 책임을 묻는 건 애매한 경우를 보게 된다. 미래에 나타나는 정책의 효과를 당장 평가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임을 면한다고 사회적 위기가 잉태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과잉소신의 그 위험을 막스 베버는 정치학의 고전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날카롭게 지적한다.

신념을 중시하는 정치인은 결과들을 도외시한 채 신념의 실현, 그 자체에 집착한다. 문제의중심에는 독선으로 변질된 신념이 존재한다.” “자신이 지향하는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심스럽거나 위태로운 수단의 선택을 주저하지 않는다.”

막스 베버는 정의로운 행동책임 있는 행동사이에 존재하는 심연 같은 그 차이에 대해 신념에 집착하는 정치인은 선이 악을 낳을 수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정치적 유아에 불과하다고 냉정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았다.

-소송 건수로 계량되는 신념의 무게-

김승환 교육감의 소신은 새삼 거론할 필요 없을 것이다. 전북도교육청의 교육행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송 건수로 계량되는 그 소신은 교육감이라기보다 학자 김승환을 떠올리게 한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취임 후 5년간 법정 공방을 벌인 송사가 120여 건에 달했다. 한 달에 2건 꼴이다. 김 교육감이 12건의 소송을 제기했고, 나머지는 교육부장관 등이 소송을 제기했다.

물론 잦은 법정 다툼이 김 교육감의 소신을 폄하하는 근거가 될 순 없다. 중앙부처를 상대로 법정 다툼을 마다하지 않은 그 소신 행정으로 인해 오히려 전북의 교육현장이 선진화되고 학생들의 복지가 신장한 측면이 적지 않다.

상산고에 대한 자사고 지정철회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의 대원칙으로 기회균등을 말할 때, 그 핵심이 교육기회의 균등이라는 사실은 새삼 거론할 것 없다. 그러나 오늘날 교육기회의 불평등이 부의 상속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양극화 사회인 대한민국의 신분 세습의 도구로 변질해 있다. 김 교육감의 상산고 지정 취소는 그 문제의식의 연장선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김 교육감의 상산고 자사고 지정철회는 정당한 결정일까? 논란의 소지가 적지 않다.

먼저 가설검증의 미비다. 자사고 폐지가 기득권층의 학벌 독점을 해소하거나 완화할지 의문이 제기된다. 명문고 폐지를 위한 정부의 대표적인 조치는 1970년대 고교평준화 정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이후에도 사교육 열풍은 수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더욱 기승을 부렸다. 자사고 폐지 또한 대증요법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평가 과정에서 엿보이는 절차적 무리수도 눈에 띈다. 김 교육감은 타 지역 보다 10점이나 높은 평가 기준, 사회적 약자 배려 및 교육비 항목 평점이 교육감의 고유 권한이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의도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형평성과 절차의 정당성에 논란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삶으로 연결되는 전북의 학력-

김 교육감의 역사감각지리감각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전북사회가 한국사회의 최대 낙후지대로 고착되면서 다방면에서 병리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학력저하는 가장 심각한 현상이다. 대입 수능 평균점수는 그렇다고 해도 학생수 비중에 대비한 1·2등급 비중은 전국 평균의 절반을 겨우 웃돌고 있다.

그 결과는 전북에서 초중고를 나와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의 연봉이 전국 평균의 60%를 겨우 넘는다는 KDI 조사에 반영돼 있다. 전문직과 관리직 등 고소득 직종에 종사하는 전북 출신 취업자가 인구 비중에 비춰 전국 평균의 절반가량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이 모든 수치는 전북의 상황에서 전북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시사한다. 불평등 문제에 천착하는 종속이론 학자들은 식민지 경제학자들은 식민지 이론에 천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경제를 교육으로 바꾸면 그대로 전북의 교육정책으로 환원된다. 전북도민의 삶과 직결되는 학력은 그 우선순위다.

김 교육감의 자사고 폐지 정책이 블랙스완의 거대한 날갯짓을 불러올지, 교육평등권의 퍼스트무빙이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권한을 행사한 김 교육감은 책임으로 부터는 물러나 앉게 되리라는 점은 확실하다. 다시금 학자의 소신과 정치인의 현실감각을 떠올려 본다.

/이현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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