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의 딜레마
고령화 사회의 딜레마
  • 전주일보
  • 승인 2019.06.2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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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 편집고문
김 규 원/ 편집고문

본격 더위가 시작되었다. 하지를 지나면서 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데 미세먼지까지 가세하여 집 밖으로 나서기가 두렵다. 이런 시기가 되면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노인이다. 에어컨을 켜고 집에 있으려니 전기료를 걱정해야 하고 뿌연 하늘에 매캐한 먼지 냄새 때문에 밖에 시원한 그늘을 찾아갈 수도 없다. 그저 노인복지관이 유일한 탈출구이지만, 갈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휑한 눈자위를 보는 게 싫다. 더구나 6월 하순부터 8월 하순까지 강좌도 쉬어서 우두커니 앉아 있어야 하니 마뜩잖다.

가장 어렵던 시기에 태어나 개발독재 시대를 거쳐 나라가 조금 살 만한 오늘에 이르도록 앞뒤 돌볼 사이도 없이 죽도록 일했던 세대, 한국전쟁과 이승만 · 박정희 · 전두환의 독재 시대를 견디고 민주화 시대를 맞았지만, 아직도 박정희의 혁명공약과 국민교육헌장이 입에서 술술 나오는 그들이다.

그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른을 공경하고 조상을 섬기면 사람의 도리를 다한다고 배운 그들이다. 그들은 자녀들과 사이에 30년 정도의 세대 차이가 1세기 이상의 문화적 차이로 벌어져 있음을 알지 못하고, 손자세대와는 대화조차 통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교육이 잘못되었고 세상이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만 한다.

평생 벌어 자녀들에게 다 쏟아붓고 가진 것 다 나누어주고 빈 몸과 텅 빈 머리로 고도화 사회를 살기가 버거워 헐헐거리는 노인들이다. 경제적인 면을 보면 그래도 연금이라도 적립했던 공직자 출신이나 기업 출신들은 매달 나오는 연금으로 쪼들리지는 않지만, 그 외 노인들은 나라가 주는 노령연금과 자식들이 보태주는 돈이라도 있어야 풀칠을 하고 산다. 자식마저 없거나 관심 없는 자식을 둔 노인들은 속된 말로 못 죽어서 사는그런 사람들이다.

기업에서는 50대에, 공무원은 60대 초반에 직장을 나선 그들은 몸도 마음도 아직 청춘이었지만, 세상 어디서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나름 새로운 사업을 하겠다고 퇴직금을 긁어 시작한 사업은 세상 파도에 난파선이 되어 겨우 몸만 빠져나오기 일쑤였다. 외길을 걸어온 이들에게 세상은 너무나 높은 파도가 넘실대는 망망대해였다.

의료보험이라는 건강지킴이 덕분에 몸은 멀쩡하지만, 정신은 아직도 20세기 후반에서 헤매는 그들이 이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함께 가지 못하면 이 나라의 내일은 더욱 어둡다. 그들은 투표를 통해 국민 주권을 행사하기보다는 오랜 관습대로 감정에 따라, 누군가의 말에 동조하여 표를 준다. 내가 왜 이 사람이나 정당에 투표해야 하는지, 그 후에 어떤 정치적 효과로 돌아올지 따져보거나 생각해보지 않는다. 그러면서 어느 세대보다 투표율은 높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변화를 거부하는 세대가 나라 인구의 1/3을 차지하게 된 오늘,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가임 세대를 아무리 설득하고 사정해도 출산율은 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아이를 낳아서 가르치고 기르느라 진이 빠져버린 노인세대를 보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노인들처럼 늙기 전에 즐겁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아이는 짐 덩어리이고 족쇄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노인이 행복한 세상이 되어야 젊은 세대가 안심하고 아이를 낳게 된다는 말이다. 노인이 행복한 세상이 되려면 지금 머리가 굳은 노인들이 다 세상에서 없어질 즈음이 되어야 할 것이라면 그건 오산이다. 지금 당장 노인들이 모두 바뀌지는 않더라도 현실을 바로 인식할 수 있는 노인들에게 오늘의 세상을 사는 지혜와 인문학을 넣어주면 오래지 않아 확산하여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

최근에 정부가 퇴직자 재취업과 정년연장을 넘어서 정년 폐지까지 염두에 둔 정책을 구상하여 발표할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가 된 일본을 거울삼아 노동력 부족과 숙련 인구의 활용을 시도한다는 내용이다. 외국인 노동력을 자꾸 늘리기보다는 백번 잘한 구상이다. 나이든 인력이 손은 빠르지 않아도 한눈을 팔지 않고 잡념이 적어 어느 면에서는 능률이 더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통계청의 장래인구 특별추계에 따르면 1564세 생산가능인구는 20202029년 연평균 33만명, 20302039년 연평균 52만명 감소할 전망이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내년부터 65세에 도달해 고용시장을 떠나면서 생산 가능 인구가 현저하게 줄어들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정부의 이러한 대책을 퍽 다행스럽게 생각하지만, 덧붙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앞에 적은 내용처럼 노인세대가 이 시대의 변화를 이해하고 적응하여 함께 사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국가 유공자에게 국가를 위해 희생한 예우를 하듯,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온 지난 시대의 전사(戰士)에게 합당한 예우가 필요하다.

그 예우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고 이해시키는 국가의 노력이다. 또 세월이 흐르면 절로 나이를 먹는 시대의 순환을 이해하여 모든 세대가 어우러지는 대동(大同)의 마당을 이루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한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공동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가정의 행복을 알게 되고 인생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 뒤에 비로소 가임 세대가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사회가 안정되면 저절로 인구는 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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