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아지는 세상에 뒷걸음치는 사람들
맑아지는 세상에 뒷걸음치는 사람들
  • 김규원
  • 승인 2019.06.09 15: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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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 편집고문
김 규 원/ 편집고문

어제 새벽에 U-20 월드컵 8강전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이 세네갈 대표를 물리치고 천신만고 끝에 4강에 올랐다. 36년 만에 4강에 올랐다느니 하는 감동에 곁들여 그 경기에서 여러 차례 비디오 판정이 있었고 어쩌면 그 덕분에 한국팀이 승리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임중에 세네갈의 페널티킥을 우리 이광연 골키퍼가 막아냈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킥하는 순간에 골라인에서 두 발 모두 떨어진 사실이 확인되어 다시 차게 됐고 골로 연결되어 세네갈에 끌려가는 상황이 되었다.

그 뒤에 2 : 2 상황에서 세네갈이 다시 한 골을 넣었지만, 공격하던 세네갈 선수의 팔에 공이 맞은 사실이 판명되어 노골이 선언되던 때도 VAR 판정이 없었다면 꼼짝없는 골이었다. 그리고 연장전까지 33의 균형이 깨지지 않아 페널티킥으로 승부를 가르는 승부차기에서 반대의 현상이 나와 우리 선수의 골을 막아낸 것처럼 보이던 골키퍼에게 경고가 주어지고 다시 찬 결과 골이 되어 마침내 한국이 4강에 진출했다.

그날 경기에서 심판은 여러 차례 VAR 판독을 시행했다. 주부심의 판정만으로 세세한 경기 순간을 볼 수 없어서 만들어진 VAR 판정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심판은 자기가 보지 않은 것을 알 수 없으므로 주부심이 발견하지 못한 반칙은 대부분 그냥 넘어가기 일쑤였다. 사람의 한계를 넘어 심판할 수 없는 점을 이용하는 선수가 유명해지는 일도 있었다. 선수들은 갈수록 교활해져 심판의 눈을 속이는데 이골이 나서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는 헤더 하는 척하고 손으로 골을 넣어 신의 손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심판이 볼 수 없는 부분 때문에 승부의 향방이 갈리는 경우가 많아지자 현장을 촬영한 비디오 필름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결국 축구의 경우에는 FIFA가 주관하는 중요 대회에는 VAR room을 설치하여 경기를 감시하게 하였다. 그리고 야구 · 테니스 등 다른 종목에서도 기계가 경기를 확실히 들여다보게 하여 오심을 없앴다.

한 때,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던 스포츠계에서도 눈속임이나 비겁한 방법으로 승부를 가르는 일이 없도록 했다. 경기를 진행하는 심판의 역할을 기계가 대신하는 범위가 점점 더 넓어지는 오늘이다. 테니스 경기에서 심판은 진행자이지 판정자가 아니다. 기계가 보여주는 대로 숫자만 보여주는 역할이다.

모든 스포츠에서 기계의 개입이 점점 느는 추세이고 오래지 않아 야구의 주심이 보는 볼과 스트라이크 판정도 기계가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스포츠의 멋은 정당한 대결에서 개인이나 팀의 능력을 최고조로 발휘하여 아름다운 결과를 보여주는 데에 있다. 그런데 처음의 취지와는 달리 영악한 인간들이 심판을 속이고서라도 경기에서 이기면 된다는 승리 지상주의가 팽배하였다. 그 결과 인간의 교활한 욕심이 끝내 경기장에 기계를 불러들이게 된 것이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세상에 감출 수 있었던 진실들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숱하게 일어나는 범죄도 곳곳에 설치된 CCTV와 그것을 판독하고 추적하는 기술이 발달하여 웬만한 사건은 확실한 증거들이 쉽게 수집된다. 과거에 어떤 세력이나 권력의 힘으로 억누르면 묻혀버렸던 사건들도 지금은 명확한 증거가 남아서 감출 수 없다.

축구에서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며 기득권 세력이 누리던 불공정이 사라지고 세밀한 모든 내용이 기록되어 점검되는 시대이다. 그런 인식 속에서 사람들은 감추고 눌러서 일을 해결하거나, 어떤 이슈로 몰아서 시대의 흐름을 돌리거나 감추던 지난 시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있다.

그런데 아직도 어떤 일이든 적당하게 어물어물 처리하고 기득권 세력들이 더 많은 것을 차지해야 하는 반칙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거부한다. 원칙과 양심을 따르는 사람들을 우습게 보고 그들 위에서 적당히 편법을 이용하거나 힘으로 눌러서 군림하며 살겠다는 1%의 사람과 그들을 지지하는 부류가 변화를 거부한다.

지난날 권력을 가진 양반들이 백성을 수탈하면서 누리던 특권층,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붙어서 동족을 팔고 수탈에 동참하여 뱃속을 채우던 친일세력, 군사독재 시절에 독재의 옷자락에 매달려 힘없는 국민을 속이고 능멸하며 살던 그들은 원칙을 지키는 사회가 싫다.

그들은 개미 기어가듯 모든 자취가 드러나는 사회에선 물이 맑아 고기가 살지 못한다.’라는 괴상한 이론을 펴가며 서민들을 속였다. 사람이 너무 맑으면 돈도 안 붙고 사람도 따르지 않는다는 이론이 그럴듯하던 시대, 그때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맑은 세상을 추구하는 새 시대와 부딪혀 갈등한다.

국회의원도 기득권층끼리 나누어 차지하고 나라를 주물럭거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지지에 따라 여러 정당이 고르게 나누어 다양한 정당이 참여하도록 하는 정치개혁을 거부한다. 국회에 민생법안이 썩어 폐기되어도 아랑곳없고 산불에 집과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죽건 살건 자당의 이익을 위해 국회를 가로막고 버틴다.

이제 새롭게 국회해산 청원이 등장하고 정치권에서도 국회해산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추세라고 한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지금 국회를 해산하고 다시 총선을 하는 것이 공연히 막대한 세비를 들여 개점휴업을 방조하는 것보단 100배나 나은 방법이 아닌가 싶다. 국회의원 숫자도 150명쯤으로 줄이고 세비나 보좌관도 절반으로 줄였으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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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2019-06-10 13:39:31
국회해산 여론이 갈수록 비등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