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오리가 부럽네
수오리가 부럽네
  • 전주일보
  • 승인 2019.05.30 15: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수필
백 금 종 /수필가
백 금 종 /수필가

어쩜 그렇게 위풍당당할까? 물 위에 몸을 꼿꼿이 세우고 날개로 홰를 치면서 포효하듯 꽥꽥거리는 모습은 마치 절대자의 자세였다. 한낱 오리이지만 그 행동은 당당한 수컷의 자신감으로 느껴져 놀라움을 더하였다. 흔한 오리에게서 실제 그러한 장면을 목격하고는 그들의 세계가 참으로 궁금하면서도 신기했다.

동물의 수컷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암컷들을 유혹한다. 밀림의 왕자인 사자나 호랑이는 힘으로 경쟁자를 제압한 후 많은 암컷을 거느리고, 학은 꼬리털로 아름다운 부챗살을 만들어 학춤을 추어 암컷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칠면조는 볏을 일곱 가지 색상으로 바꾸면서 암컷의 환심을 끈다. 사향노루는 그의 생식기에서 분비되는 사향으로 암컷 노루를 유혹한다. 그런데 오늘 그 오리는 어떤 비법이 있기에 몸짓 한 번으로 그 암오리를 사랑의 포로로 만들었을까?

 

혁신도시에는 시민을 위한 휴식 공간이 여러 곳에 있다. 사시사철 꽃이 피고 지는 아름다운 공원이 넓게 만들어져 있어서 운동하거나, 새소리 바람 소리와 함께 출렁이는 저수지 주변을 산책하며 몸과 마음을 쉬게 한다. 거기에다 입주해있는 공기업들도 나름대로 주민을 위해 안락한 휴식처를 마련하고 있어 쉴만한 공간이 많다.

우리 부부는 지난 초봄, 조금 날씨가 풀리자 휴식 겸 운동을 하기 위해서 한국토지공사 정원으로 갔다. 그곳에는 조그마한 호수가 있는데, 그 주변에 놓여 있는 벤치들은 사람들이 자주 찾아와 휴식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호수에 사는 물고기와 수초 등 수생 식물을 관찰하는 즐거움도 있다.

고기와 수생 식물만 아니라, 텃새가 된 오리들이 한가롭게 헤엄치고 먹이를 찾는 모습도 우리네의 삶과 같아 정겹게 느껴진다. 그 작은 공간에서 여러 가지 동물과 식물들이 어떤 공생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지 유심히 관찰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이다.

우리 부부가 벤치에 앉아 망연히 호수를 보던 때였다. 유유히 떠다니며 먹이를 찾거나 자맥질하던 오리 가운데서 수오리 한 마리가 갑자기 몸을 곧추세우고 홰를 치면서 꺅꺅꺅꺅하며 큰소리를 질러댔다. 그러자 다리 밑에 숨어 있던 오리 한 마리가 쏜살같이 그 수오리를 향해 달려갔다. 수오리는 의기양양하게 암오리 등위로 잽싸게 올라가 사랑놀이를 했다. 행위가 끝나자마자 암 오리는 제가 왔던 다리 밑으로 부끄러운 새색시처럼 줄행랑치듯 숨어 들어갔다. 문제의 숫 오리는 다시 꺅꺅꺅꺅홰를 치면서 허공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 모습은 마치 축구경기에 골을 넣은 뒤에 골 세레모니를 하며 포효하는 호날두 같은 모습이었고, 야구로 말하면 만루 홈런을 치고 팔을 뻗어 올리며 홈인하는 왕년의 스타 이만수 선수 같았다. 주위에는 몇 마리의 오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던 자맥질을 계속했다.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태연한 것도 흥미로웠다.

기고만장한 행동으로 암오리의 사랑을 얻어낸 수오리의 모습을 지켜본 아내가 빙긋 웃으며 한마디를 던졌다.

당신은 요즈음 아내의 사랑을 얻기 위해 하는 짓이 무엇이냐?”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어느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여 자신 있게 말했다. 젊은 시절에는 열정으로 마음을 녹였고, 중년에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당신의 환심을 샀다. 그러나 이제는 그 열정도 식었고 사랑의 농도도 엷어졌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늘그막인지라 타다 만 짚불처럼 온기는 부족하나 측은지심으로 당신을 염려하고 아름다운 동행을 하느라 애쓴다. 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아내는 그런 정도로는 턱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하면서 반성문을 쓰라 한다. 말을 들으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아내에게 무심했고, 아내도 덩달아 무심한 것 같다. 집에 있으면 나가라 하고, 외출 후 늦게 들어와도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는다. 창밖에 부는 바람처럼 아내를 느끼기도 어렵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욱 틈새가 벌어져 더 소원해질까 은연중에 걱정이다.

어떻게 해야 아내의 마음을 끌 수 있을까? 내 나름으로 생각했다.

비 오는 날 여심은 약해진다니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 속에 아내를 차에 태우고 한적한 교외로 나간다. 분위기 좋은 코스로 드라이브하고 기분전환을 위해 조용한 찻집으로 인도한다. 부부만의 테이블 앞으로 따뜻한 모카커피 두 잔을 주문한다. 연애 시절 들었던 감미로운 음악을 신청한다. 그리고 장미꽃 한 송이를 아내의 가슴에 바친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진한 스킨십도 해본다. 아내의 몸과 마음속엔 사랑의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도파민이 솟아날 것이다. 드디어 두 사람의 마음도 연리지처럼 이어질 것이 아닌가?’

한참 동안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데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어서 운동이나 갑시다.”

아내의 지청구가 이른 봄 꽃샘추위보다 매섭다.

하기야 사랑을 어찌 생물학적 감정으로만 해결할 수 있을까? 아내를 내 몸처럼 소중히 보살피고, 그녀의 의견을 존중하며, 집안일에 기꺼이 동참하고, 메마른 감정에 포근하도록 살갑게 대하면 그녀의 마음 밭에도 사랑의 싹이 돋고 꽃이 활짝 피어나지 싶다.

에효, 빌어먹을 수오리 녀석 같으니라구.”

(2019. 3. 30.)

백금종/수필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