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군 지도자 녹두관 안장에 부쳐
동학농민군 지도자 녹두관 안장에 부쳐
  • 김규원
  • 승인 2019.05.28 16: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6년에 일본에서 송환된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유해가 23년 만에 전주 동학농민혁명 녹두관에 안장된다는 소식이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에 활동하다가 전남 나주에서 일본군에 잡혀 처형된 농민군 지도자의 유해가 125년 만에 비로소 혁명의 전승지에 모셔지는 것이다.

이 유해는 일본군이 인종학 연구대상으로 1906년에 머리뼈를 일본으로 반출한 것으로 1995년 일본 홋카이도대학 표본창구에서 발견되어 19965월에 한국으로 모셔왔으나, 마땅히 모실 곳을 찾지 못해 여태 전주박물관 수장고에 보관해왔다고 한다.

마땅히 모실 곳이 없었다는 건 위정자를 비롯한 전북지역 단체장들이 동학농민혁명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당시 김영삼 정권이 동학농민혁명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아 전북도나 전주시가 어떤 조치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지만, 그 뒤 23년을 박물관 수장고에 방치되어 있었다는 건 퍽 부끄럽고 죄송한 일이다.

역사 인식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으나, 19세기 말에 기층민인 농민들이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고, 물밀 듯 몰려오는 외세로부터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들고일어나 서울로 향한 사실은 세계 어느 역사에도 없는 일이다. 농민들은 어떤 세력의 부추김이나 양반 세력의 도움 없이 스스로 군대를 편성하여 관군과 싸워 승리했다.

그리고 전주성을 함락하여 폐정을 개혁하고 각 고을 관아를 접수하여 집강소를 차려 직접 고을의 일을 처리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체험했다. 짧은 기간이나마 그렇게 체험한 민주주의는 19193.1 독립만세를 부르게 했고 임시정부를 세우는 이념이 되었다. 그리고 4.19 학생혁명으로, 5.18 민주항쟁으로, 그리고 마침내 2016년 촛불혁명으로 이어져 이 나라가 기울어가는 위기마다 나라와 국민을 일으켜 세우는 근본이 되었다.

임진왜란에 이 나라를 지킨 이순신은 若無湖南 是無國家라며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가 있었겠는가라는 말을 했다. 호남의 곡창에서 식량을 조달했기에 전쟁을 버틸 수 있었다고 해석하는 이들이 있지만, 호남인들이 나라의 위기에 도망치지 않고 버티고 싸워 마침내 나라를 지킬 수 있었음을 말한다.

호남인의 판단은 항상 정의였고 힘에 굴하지 않는 기개를 지녔다. 올해부터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정하고 서울에서 기념식을 거행했지만, 어쩐지 우리 사투리로 말하면 섬닷하다고 표현할 그런 수준이었다. 이어서 정읍에서 따로 행사를 치른 수준도 그렇다.

적어도 우리 전북인들은 동학농민혁명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후손들에게 전승해야 한다. 우리는 이 나라의 위기를 지킨 위대한 조상의 후손이고 오늘도 나라에 어려움이 닥치면 언제든 일어설 자랑스러운 사람들이라고.

61일 유해 안장식을 계기로 전주시와 전라북도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에 더 많은 시간과 예산을 투자하여 우리의 긍지를 세우고 널리 알려야 한다. 정신이 살아야 마침내 웃을 수 있게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