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지리의 봄날
덕지리의 봄날
  • 전주일보
  • 승인 2019.04.2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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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지리의 봄날은 짧아 어느새 해가 지고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이름 모를 새들도 어디론가 둥지를 찾아 날아간다

운동장가 벚나무에는 눈꽃 같은 벚꽃들이
달빛에 만발하였다
쓸쓸해진 벚꽃들이 하얗게 웃고 있었다

나도 이제 관사로 돌아가야겠다

앞 산 기슭에 외로워진 달빛이 내 어깨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덕지리 봄날은 늘 혼자였다

/덕지리 : 전북 무주군 무풍면 소재
 

불과 한달 전만해도 청둥오리, 쇠오리, 고방오리들이 자맥질을 하던 삼천천에 봄이 왔다. 한결 맑아진 봄물 위로 홀로 남은 왜가리 한마리가 홰를 치더니 나지막이 날아간다. 며칠 전에는 한 무리의 새떼들이 편대를 이루어 북북서로 갔다. 새떼들은 겨울 내내 찬물에 머리를 박고 건져 올린 사연들을 씨줄 날줄로 엮어 고향으로 떠메고 가는 것이었다. 새들이 떠나버린 강 언덕 풀밭에 봄꽃들이 지천으로 피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줄기 하나 힘주어 당겨보았다. 뿌리가 완강히 저항한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면서 떠나고 돌아오는 것들의 유혹을 참아내는 여리고도 강인한 목숨들.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저 봄꽃들은 누구를 위하여 피고 지는지? 북쪽으로 날아간 새떼들이 유목민이라면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내는 봄꽃들은 토착민이다. 아득한 거리를 날아 먹이를 얻고 새끼를 건사하는 새떼들과 제자리에 꿈을 피우는 봄꽃 사이에서 어정거리며 사는 인간들이 불쌍하다는 듯이 돌아와 물에 발을 담그고 있던 왜가리 한 마리가 갸우뚱한 물음표로 삼천천 한 가운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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