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살구꽃
  • 전주일보
  • 승인 2019.04.14 15: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집 살구나무에 살구꽃 피거든
올해도 너를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아라
사립문 닫혔다고
오던 길 돌아 간 사람아
꽃을 밀어 낸 힘으로 살구는 열릴 것이니
입안에 고인 침일랑
누구에게도 주지 마라
살구나무에 어둠이 내리면
그 때 삼켜도 말하지 않으리라
가슴에 별이 진다고 절망하는 사람에게
귀띔해 주어라
살구꽃 지기 전에 용서할 일 남았다고
살구꽃을 본 사람이
가장 투명한 사람이다
만나자는 약속을 해오는 사람 있거든
살구나무에게 길을 물어라
가지마다 살구꽃 환하게 피워 낼 것이니


/살구꽃 : 익산시 함열읍 다송리 와야마을 살구나무

늙은 살구나무가 담장을 기대고 서 있다. 지난 봄 한 친구가 살구나무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고목도 꽃이 피느냐고 물었다. 핀다고 대답하자 그럼 살구도 여느냐고 했다. 물론이라는 말에 친구는 감탄하는 것이었다. 살구꽃은 처음 꽃이 필 무렵엔 분홍빛이었다가 피어날수록 점점 하얀색으로 변해간다. 성장하면서 소녀티를 벗어가는 여자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럴 때에는 새콤한 개살구도 입에 침이 고이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모든 꽃들은 열매를 위해 존재하고 여자는 사랑을 위해 피는 것은 아닌지?
삼라만상이 모두 잠든 밤 피고 또 피면서 춥다고 엄살 한번 부려볼 새가 없이 부지런히 꽃을 피워내고 있는 살구나무에게 숙연해지기도 한다. 탐스런 살구가 열리면 어디론가 떠나갔던 사람들 모두 늙은 살구나무 아래로 돌아오면 좋겠다. 머지않은 날 담장도 주저앉을 것이다. 그러나 늙은 살구나무는 여전히 몸 여기저기에 꽃망울이 돋아나 마당이 환하겠지? 화사한 살구꽃을 바라보다가 세월이 소진되어 설령 살구를 보지 못할지라도 나는 늙은 살구나무에 오래도록 기대고 싶다. 내년에 다시 오마던 그 친구를 기다리면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