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마중
봄 마중
  • 전주일보
  • 승인 2019.04.1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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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김 영 숙 /수필가
김 영 숙 /수필가

봄인데 뭐하니? 여기는 꽃천지다라며 남녘의 꽃소식을 보낸 친구의 문자메시지가 부럽더니, 이곳 임실에도 봄이 왔다. 꽁꽁 언 땅을 헤집어, 딱딱한 콘크리트 틈을 비집고 새싹이 돋고, 꽃이 피어 뿌연 황사 속에서도 봄바람이 살랑인다. 겨우내 시끌벅적 오가던 자동차 소리에도 꿈쩍하지 않던 개나리도 봄바람의 유혹은 도저히 뿌리칠 수 없었나 보다. 여기저기서 노란 기척이 수런수런 들리기 시작한다. 이제 개나리가 줄줄이 피면 황금종 소리가 온 세상에 가득하겠지.

햇살도 눈이 부시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싹을 틔우고 꽃망울을 여는 은혜로운 햇살이요, 겨울잠에 빠졌던 골짜기와 능선과 들판을 다 깨워 덩실덩실 춤추는 햇살이다. 이렇듯 볕이 좋은 날 어찌 마음 들썩이지 않을 수 있을까. 바구니 하나 들고 봄 마중을 나섰다. 건물이 베어가고, 묘지에 빼앗기고, 도로에 조각난 마을 끝 밭뙈기에도 오밀조밀 푸른빛이 가득하다.

햇살을 등에 업고 앉아 나물을 캤다. , 머위, 꽃다지, 벼룩나물, 씀바귀, 민들레, 돌나물, 풍년초, 냉이까지 어린 나물이 가득하다. 봄에 난 풀은 웬만한 것은 다 먹을 수 있다. 겨울을 견디고 나온 봄나물은 보약이나 진배없다.

냉이는 햇살 샤워에 성장판이 열렸는지 납작하게 앉아 있다가 기린 모가지를 하고 하얀 꽃을 피웠다. 봄이 와서 피는 꽃이 아니다. 겨울을 이기고 봄을 선포하는 깃발이다. 그런 냉이 중에서 미처 꽃대를 내지 못한 냉이를 캤다. 하얀 뿌리가 따라 나오며 길게 기지개를 켠다. 겨우내 흙 속을 뒤척이다가 올라온 질긴 생명의 뿌리다. 묻은 흙을 털어내자 상큼한 향이 발등에 뚝뚝 떨어진다. 금방 뜸 들인 밥에 냉이 무침 한 줌 얹어 쓱싹쓱싹 비벼 먹을 생각하니 입안에 가득 침이 고인다. 냉이는 봄철 나물 중에 그 효능이나 맛에 있어서 단연 으뜸이다. 다양한 효능 중에 봄이면 찾아오는 불청객인 춘곤증 개선에 탁월하다.

쑥도 뜯는다. 파릇파릇 손가락만큼 자란 쑥에 칼을 대면 방금 세상의 온기를 얻어 쑥 내민 쑥이 아무런 저항 없이 온몸을 다 내어주는 헌신을 한다. 이맘때쯤 뜯어다가 냉동실에 넣어두면 언제든 먹을 수 있어 좋다. 이른 봄에 채취한 것은 독성이 없고 부드럽고 향이 좋아서 쑥국이나 쑥떡을 해 먹기에 알맞다. ‘7년 된 병을 3년 묵은 쑥을 먹고 고쳤다는 말이 있듯이, 피를 맑게 해주고 혈액순환이 잘되게 하는 등 그 효능도 다양하다.

정신없이 쑥을 뜯다가 허리를 펴고 보니 비탈진 밭에서 일하시는 노부부의 모습이 액자 속 풍경처럼 정겹다. 농사를 시작하는 시기이니만큼 들녘에는 일하는 사람은 넘쳐나지만, 하나같이 어르신들이다. 노인만 남은 농촌이다. 쑥을 뜯는 바로 옆에서도 이웃 어르신이 비닐을 씌워 고추 심을 준비를 하고 계셨다. 농사를 많이 짓는 분들이야 기계를 이용해 비닐을 씌우지만, 고추 농사만 비닐 한 통 씌울 만큼 짓는다는 어르신이 비닐을 끌고 덮는 일이 힘겨워 보였다. 쑥만 캐기가 영 죄스러워서 잠시 일을 도와드렸다. 그래 봤자 고작 두렁을 돋워 놓고 비닐을 씌우는 작업 중에서 비닐을 잡아드리는 일인데, 그 또한 처음 해보는 일이라 그런지 쉽지 않았다. 어르신 부부야 수년을 함께 맞춰온 호흡이니, 눈감고도 척척 맞는 찰떡궁합이다. 한쪽 고랑 끝에서 비닐을 잡고 살살 돌려가며 맞은편 고랑 끝으로 밀고 가는 작업을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배워 결국 몇 고랑 비닐을 덮는 데 일조했다.

가짜 농사꾼이 방해한 것은 아닌지 죄스러운데, 그것도 도와드린 일이랍시고 어르신은 새참을 먹으라신다. 돌나물과 고추장 비빔밥의 비주얼에 침이 자꾸 고여서 거절 한번 못해보고 숟가락을 들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돌나물의 상큼하고 아삭한 맛이 봄 정취와 앙상블을 이룬 비빔밥의 맛을 설명해 무엇하랴. 새참을 얻어먹고 들풀 방석에 앉아 쉬고 있노라니 빗물 먹은 대지처럼 포만감이 밀려온다. 한 뼘의 땅, 한 줌의 햇살로도 해맑게 웃는 들판의 양지꽃처럼 편안해지고 눈에 들어온 들녘이 다 내 정원인 양 넉넉해졌다.
나물도 조급하게 뜯으면 재미없었을 텐데 이렇듯 주위 풍경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참견도 하며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뜯으니 제맛이다. 고된 일을 하다가 나물 한 가지 반찬으로 기분 좋게 점심을 드시는 촌로 부부의 미소마저 맛깔스럽다. 햇살이 내 등을 살며시 어루만지는 가운데 바구니에는 어느새 나물이 수북하다.

이런 날은반칠환 시인<>이라는 시가 딱 어울린다. 같은 계절을 보고서 나는 왜 시인처럼 표현이 안 될까? 자괴감도 들지만, 어차피 시는 시인이 세상에 발표하고 나면, 그 시는 독자의 시가 되는 것이라니 애써 내 마음도 그러하다고 우기며 읊조려 본다.

저 요리사의 솜씨 좀 보게 /누가 저걸 냉동 재료인 줄 알겠나 /푸릇푸릇한 저 싹도 울긋불긋한 저 꽃도 /꽝꽝 언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라네 /아른아른 김조차 나지 않는가

자연이 냉동고에서 아낌없이 꺼내주는 싱싱한 보약인 나물을 바구니에 넉넉히 담았으니, 봄 마중은 알차게 한 것 같다. 굳이 어떻게 왔는가?’ ‘어디서 오는가?’ 묻지 않아도 그렇게 봄이 왔다. 아니, 봄은 늘 그곳에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봄이 그려내는 풍경화는 고향처럼 편안하고, 봄이 내주는 것들은 늘 푸진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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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지 2019-04-17 17:07:32
봄마중 제대로 하셨군요. 덕분에 저도 따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