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일까 꽃눈일까
꽃비일까 꽃눈일까
  • 김규원
  • 승인 2019.04.04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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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양 연 길 /수필가
양 연 길 /수필가

 어느 날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자기네 모임에 들어오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어이없어하며 눈짓으로 묻자, 자기네 회원이 다섯 명으로 줄어들더니 이제 세 명이 남았다고 했다. 한 명은 세상을 떠났고 다른 한 명은 아들이 사는 외국으로 나갔단다. 내가 여자들 모임에 들어가 함께 놀자는 것이다. 선뜻 대답을 안 하자, 아내는 이미 잘 아는 사이이고 당신과 동갑내기들인데 뭐 망설일 것 있느냐고 은근히 채근해왔다. 내가 모임에 동참하면 그들은 빈자리 하나 채워지고, 자동차가 생겨 기동력까지 얻게 될 것이다. 나 역시 노년에 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느는 셈이니 서로가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늙은이를 끼워준다면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내가 아닌가.

그렇게 아내의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한 게 벌써 삼 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조금 서먹하고 어색했지만, 만나는 횟수가 잦아지고 봄가을 꽃구경, 단풍 구경 여행을 하다 보니 친숙해지고 친밀감도 깊어졌다. 문제는 호칭이었다. 자기네는 너냐 나냐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하다가 스스럼없이 부를 호를 지어 사용하기로 했다. 나는 물가에 있는 나무 목정(木汀), 아내는 고향의 정자 이름 송정(松亭), 친구들은 이름과 출생지에서 따온 은교(恩敎)와 이화(李花)로 했다. 새 호칭을 사용하니 부르기가 쉬워서 쉽게 부르고 대화가 많아지면서 관계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올봄에도 꽃 나들이를 나갔다. 지난해 다녀온 섬진강변 벚꽃 터널과 쌍계사 가는 아름다운 꽃길을 머릿속에 그리며 천천히 차를 몰았다. 물론 송정, 은교, 이화가 동승했다. 남원을 지나 산동에 접어들었다. 절정의 생기가 사라진 산수유 꽃은 시들한 모습이고 관광객 발길도 뜸해 을씨년스럽다. 팔십이 코 앞인 우리들의 모습이지 싶어 애잔함과 연민이 겹쳤다.

구례가 가까워지자 온 누리는 벚꽃 잔치로 한창이다. 도화, 이화, 홍매, 개나리까지 한껏 치장한 봄꽃이 천지에 널려 있으니, 그야말로 만화방창(萬化方暢)이다. 차는 벚꽃 터널에 저절로 빨려들어 가는 것 같았다. 세미한 바람에도 꽃잎은 현란한 몸짓으로 흩날렸다. 뒷좌석에서 이런 꽃구경은 난생처음이라며 어느새 세월을 뛰어넘어 16세 소녀가 된 여자들이 저마다 감탄을 자아내는 소리가 들렸다.

꽃비 오는 것 같네.”

문학적 감성이 넉넉한 은교의 말이다.

아니야, 꽃눈 내리는 것 같다, .”

이것은 감상적이면서도 사실적인 이화의 말이다.

꽃비라고 해야 정취가 있지.”

길가에 쌓인 꽃잎들이 꼭 눈 쌓인 것 같지 않아?”

서로 질세라 자기주장을 내세운다. 송정이 한마디 거들고 나온다.

꽃비 같기도 하고 꽃눈 같기도 하지만, 살 만치 산 꽃잎이 미련 없이 그냥 떨어지는 것이네.”

온통 꽃으로 가득한 길에서 비처럼 내리는 꽃잎을 보며 주고받는 말을 가만히 새겨보았다. 그저 벚꽃 지는 하나의 현상에 저렇게 생각, 느낌, 시각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긴 저마다 같은 생각 같은 짓을 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단순하고 건조하겠는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에 감동하며 어우러져 사는 세상이 되어야 더욱 살 맛이 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잠시 내 생각을 더듬어 본다. 비인 듯, 눈인 듯, 꽃인 듯, 안개인 듯 잠시 피었다가, 슬픔으로 지는 꽃잎을 보는데, 어찌 내 마음은 둥둥 하늘로 나는 듯 아이처럼 즐겁기만 하니, 아직도 나는 철이 나려면 멀었지 싶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가는 길은 오가는 사람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차량으로 이동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사람이나 차나 가다 서다를 반복했고 아예 차에서 내려 쉬기도 했다. 그래도 시민의식이 한결 높아져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안내요원들의 친절함과 이를 잘 따르는 질서정연한 모습이 보기에 흐뭇했다. 기다리고, 배려하고, 서로 양보하면 편안하고 얼마든지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구례 곡성으로 이어지는 벚꽃 길도 화려하고 아름다웠지만, 내 마음 한편은 무거웠다. 화개장터를 떠나면서 몸이 불편한 이들의 봄 구경을 나와 힘들어하던 모습이 눈에 밟혀서다. 그들은 도우미의 부축 없이는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평생을 루게릭병이라는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던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 같은 모습의 젊은이도 있었다.

저들을 보는 사람들의 눈, 생각, 마음, 느낌은 어떠할까, 꽃비일까, 꽃눈일까. 아니면. 가슴이 먹먹해 왔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수도 있다. 저런 몸을 가진 사람들을 왜 데리고 나왔는지 걱정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봄을 느끼고 아름다움을 보는 눈은 정상인보다 더 곱고 절실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들에게 꽃구경시키기 위해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웠다.

오늘 하루, 나이든 소녀 3명과 동행하여 즐거웠고 우리 모두 건강한 봄을 맞을 채비를 끝낼 수 있었다. 봄은 건강한 사람이나 불편한 사람이나 모두에게 오는 축복이고 희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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