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이 봄을 잘 넘겨야
흔들리는 이 봄을 잘 넘겨야
  • 김규원
  • 승인 2019.03.3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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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 /편집고문
김 규 원 /편집고문

봄이 이르게 찾아와 전주 천변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서울에서는 눈이 내리거나 진눈깨비가 내렸다는 소식이다. 봄은 으레 어수선하고 덥다가 춥다가를 몇 번씩 거듭해야 계절이 안정을 찾는다. 계절 탓인지 나라 안팎도 어수선하다.

하노이 북미 회담이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으름장과 달래기가 교차하며 한반도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이달 11일 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와 회담을 가질 모양이다. 이미 5월에 트럼프가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고, 6월에 G20 회의가 일본 오사카에서 열려 한미회담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앞질러 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듯하다.

그런데 사실은 북미회담이 결렬된 직후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할 때 트럼프가 문 대통령에게 역할을 주문하면서 미국방문을 요청하여 트럼프의 초청형식으로 방문한다는 것이다. 마침 아베가 4월 말에 미국을 방문하여 트럼프와 어떤 꿍꿍이를 궁리하기 전에 만나는 것이어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어떤 목적이든 미국 백악관이 문 대통령을 초청하는 문구에서 미국이 한국과 중요한 동맹 관계라는 뜻으로 린치핀(linchpin : 수레바퀴와 축의 연결을 고정하는 핀)이라는 용어를 쓴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어딘지 소원한 느낌을 주던 한미관계를 확실하게 정의한 것은 지금 시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 재판과 연이어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문 대통령과 3.1 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한국의 반일 기류에 경제적 보복까지 주장하는 상황이어서 대통령의 방미는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아베가 미국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한국에 경제보복을 하거나 외교 단절을 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는 문 대통령의 방미 전에 북한의 김정은 쪽에서 문 대통령에 어떤 메시지를 건넬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전문가 집단이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 완벽한 비핵화를 주장하여 엇박자를 내면서 다시 틈이 벌어진 가운데 문 대통령이 과연 어떤 방안과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제시할지는 아직 누구도 모른다.

어떤 방법이든, 북미가 서로 다시 으르렁거리지 않고 적절한 접점을 찾아 대화에 나서고, 끝내는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이루어 우리가 살길을 열기 바란다. 11일 회담이 어느 때 회담보다 중요한 이유다. 아직도 반공을 뇌까리며 대립 관계를 유지하면서 걸핏하면 전쟁 분위기를 만들어 국민을 겁박하려는 무리의 획책이 없어지려면 어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형편은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우리 경제의 주력인 수출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벽에 잠식당하다가 끝내 막히는 시점에 이르렀고, 실질 인구가 바로 내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수출산업에서 돈을 버는 건 재벌기업을 중심으로 한 대형 제조업들 뿐이다. 서민들은 내수 경제가 살아나야 하는데, 내수는 갈수록 막혀 건물마다 빈 점포만 는다. 일부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경기침체를 가져왔다는 분석을 하지만, 이미 이러한 침체는 예견된 것이었다.

유통시장이 온라인으로 급격하게 쏠리면서 판매업종이 된서리를 맞았다. 싸고 편하게 집에서 받아보는 온라인 판매가 주 소비층인 40~60대까지 장악하여 규모를 줄여도 유지하기 힘든 판매업종에 최저임금 인상은 타는 불에 휘발유를 끼얹는 격이 되었다. 경제 사정은 도미노 현상처럼 차례로 어려움을 가져와 군소 제조업이나 자영업에 치명타를 가했다.

그뿐만 아니라, 소비구조도 이상하게 변했다. 청년층과 중장년층의 국내 소비가 현저히 줄었다. 일찍 집에 들어간 직장인들은 집에서 가족들과 지내면서 지출을 줄이고 아껴서 돈이 모이면 해외여행에 돈을 쓴다. TV는 공영방송이나 종편을 막론하고 방송사마다 여행을 부추기는 프로를 일주일에 몇 편씩 방영한다.

이에 마음을 뺏긴 사람들은 여행의 즐거움과 저절로 빠져드는 멋진 경치를 보며 기회를 만들어 여행을 떠난다. 비용이 없으면 대출을 받아서 여행을 갔다가 돌아와서 그 대출을 갚느라 먹을 것, 입을 것도 아껴야 한다고 말하는 젊은이도 있다. 그렇게 어렵게 여행 빚을 갚으면 다 갚기도 전에 또 어딘가로 떠날 궁리를 하게 되는 여행중독에 빠진 사람도 있다.

우리 사회는 최근의 여러 여건이 하나도 좋은 쪽으로 풀리지 않고 있다. 여러 조건이 대단히 불리한 가운데서 뱁새들에게 황새걸음을 가르치는 미디어를 보면서 누군가 이 나라를 나락으로 끌고 가려는 무리가 있는 듯한 생각을 한다. 서로 힘을 모으고 도우며 살길을 찾아도 어려워 보이는 현실인데 갈등과 분열, 나라야 어찌 되든 나만 벌겠다고 잇속을 차리려는 집단도 있다.

국민소득 3만 달러는 잘 버는 사람들의 배부른 수치일 뿐이다. 독재 시절에 불법으로 모은 재산가와 재벌과 연관된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국민은 빈껍데기만 쥐고 앉아서 3만 달러 시대로 착각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분하게 사태를 보는 눈과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여 대응하는 방법뿐이다.

한때 일본이 세계 관광지를 휩쓸다가 오랜 침체를 겪었다. 우리는 그때의 일본만큼 가진 것도 없으면서 아직도 주말이면 인천공항이 북적거린다. 여러 경제지표가 마이너스 쪽으로 기울어 있는데, 버는 것도 없으면서 어떻게 되겠지, 하고 쓰고 보자는 눈치다. 모두 이 어수선한 봄을 잘 넘겨야 할 터인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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