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말을 걸어올 때
몸이 말을 걸어올 때
  • 전주일보
  • 승인 2019.03.2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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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강 순 필 /수필가
강 순 필 /수필가

배를 움켜쥐고 방바닥을 뒹굴었다.

저녁부터 배가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불편한 낌새를 애써 무시하고 참으며 잠을 청했다. 새벽 2시쯤 되면서 죽을 것 같은 통증에 견디기 힘들었다.

늦게야 잠이든 남편이 깰까 조심스러웠다. 따끈한 침대에 엎드려 배앓이를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통증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천정이 빙빙 돌고 정신줄을 놓기 일보 직전이다. 이러다가 무슨 사단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지옥이란 말이 이런 때에 적절한 말인가 싶었다.

통증을 덜어보려고 찜질팩을 아픈 부위에 얹으니 시원한 듯했지만, 그것도 잠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단잠에 빠졌던 남편이 벌떡 일어나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게 웬일이야. 배가 아파? 진즉 깨우지 그랬어.” 하며 경황 중에도 주섬주섬 몇 가지를 챙겨 Y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에는 응급처치가 필요해 다급한 환자들이 침대에 즐비하게 누워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신음과 고통을 호소하는 외침이 응급실의 다급한 풍경을 알려주었다. 이들도 나처럼 병이 호전되기만을 밤새 기다리다 온 환자들이기도 하고, 단 몇 초를 다투는 응급 상황이기도 했을 터, 의사와 간호사와 보호자의 발걸음이 부산하다.

통증부터 가라앉히기 위해 진통제와 수액을 팔에 꽂았다. 혈관을 타고 온몸에 퍼지는 약물로 극심한 통증은 조금 진정되었지만, 아픔은 계속되었다. 진통제와 수액을 매달고 혈액검사부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평소 건강함을 믿고 몸을 함부로 했던 일이 몸에 미안하기도 하고 후회스런 생각도 들었다.

검사를 마치고 의사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아무런 증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분명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이곳에 왔는데 이상이 없다니 더욱 이상하지 않은가. 아니면 더 심각한 병이 아닌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다시 컴퓨터 단층촬영에 들어갔다. ‘죽을병이면 죽으리라라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겉으로는 담담한 척했지만, 한편으로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것은 살고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인간 본능이었으리라. 한참 뒤, 대장에 세균이 감염되어 염증이 생긴 것으로 판명되었다.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삶의 유예기간을 연장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고개를 숙였다.

밤새 설친 잠과 고통에서 해방된 안도감으로 피로가 덮쳐오기 시작했다. 고통스런 10시간 동안이 얼마나 초조하고 힘든 여정이었던가. 순간 눈꺼풀이 내려앉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석양의 붉은 노을이 저물어가는 응급실에 희망의 불빛으로 다가왔다. 곁에서 줄곧 지켜보던 남편이 이 사람아, 웬 잠을 그리 많이 자나. 숙박료를 두 배로 내야겠어.” 하며 빙그레 웃는다.

그 사이 배의 통증은 시나브로 진정이 되었다. 이젠 옆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의 모습도 보이고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기게 되었다.

곁에 있는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와 비슷한 증세였다. 이 병으로 병원에 온 지 6개월도 못 되어 다시 입원했다고 한다. 병명도 장염의 일종인 게실염이라는 대장 벽 쪽에 블랙홀처럼 움푹 파인 곳에 이물질이 끼어 염증을 일으키는 증세라 했다.

며칠 전 친구들과 저녁 식사로 회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배가 고파 맛있게 먹다 보니 발병의 원인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평소 익숙하지 못한 음식을 먹을 때는 조심스럽게 조금씩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이런 심한 복통을 겪고 나니, 시골 학교 초임지에서 근무할 때 한 남학생의 일이 갑자기 떠올랐다. 6학년인데도 신장과 체구는 작지만 당차고 똑똑한 아이였다. 수업 중 배가 아파 읍내의 병원에 입원했었다. 아이가 입원한 걸로 보아 간단한 충수염쯤으로 생각했는데, 입원 3일 후 다시 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났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개복開腹을 하고 보니 장기가 이미 손상이 되어 더는 손을 쓸 수 없었다고 했다.

나는 현대의학의 혜택으로 장염이란 병명이 밝혀졌지만, 변변한 치료도 못 해보고 어린 나이에 떠난 그 아이가 애처롭기만 하다. 요즘처럼 의료시설이 발달한 세상이었다면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 아닌가.

복통은 복부의 질환뿐 아니라, 복부 이외의 질환에서도 느껴진다고 한다. 감기가 만병의 근원이듯, 복통 또한 가볍게 지나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몸의 통증이 보내는 경고를 경솔하게 무시하고 지나쳐서는 안 될 일이다.

삶의 모든 순간마다 통증은 의식의 바닥을 휘젓고 휴식과 치료를 요구한다. 아픔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만 진정한 행복은 건강한 몸에서 나온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건강한 삶이야말로 행복을 이끄는 중요한 바탕임을 알게 되었다. 또 바쁜 일상에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무시하고 참고 지냈던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응급실로 실려갔던 나는 통증을 벗어나 편안함을 누리고 있음에도, 끔찍하게 아프던 기억은 지금도 악몽 같기만 하다. 그동안 몸의 주인이 나였음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 그날 하루는 삶의 소중한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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