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열어 가는 노란색
봄을 열어 가는 노란색
  • 김규원
  • 승인 2019.03.14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수필
정 정 애/ 화가, 수필가
정 정 애/ 화가, 수필가

 

아직 겨울을 벗어나지 못한 2월인데, TV에선 노란 복수초 꽃이 쌓인 눈을 헤집고 화사한 웃음을 터뜨렸다. 어느 사진작가가 늦겨울의 추위를 무릅쓰고 산골을 헤매다 행운처럼 얻은 복수초 꽃 사진 한 컷이 TV 화면에 등장하게 되었을 것이다.

봄을 여는 꽃 중에는 노란색 꽃이 많다. 무채색의 겨울 위에 피는 봄꽃들은 노란 꽃이 대부분이다. 밝고 높은 채도의 노란색이어야 벌들이 쉽게 찾아와 수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복수초 꽃에 이어서 양지바른 언덕바지에선 키 작은 민들레꽃이 앙증맞게 피어나고, 곧이어 제주도에서부터 올라오는 유채꽃의 행렬이 구름처럼 번지게 될 것이다.

도시의 봄도 노랗게 피어 시작된다. 군데군데 개나리가 꽃담을 이루어 골목 안이 온통 노랗게 밝아 올 것이고 꽃가게 진열대 위에서는 프리지어 노란 꽃이 선을 보일 것이다. 새봄을 기다리던 화단에선 수선화가 올해도 노랗게 피어 부지런을 떨 것이다.

복수꽃이 피고 매화가 피어 향기를 자랑하는 때가 되면 빼놓을 수 없는 꽃이 산수유다. 잔가지에 도돌도돌 좁쌀처럼 돋아난 작은 망울들이 금세 자라면서 톡톡 터져 벌어지면 우주선 안테나처럼 솟아오른 꽃대가 하나하나 꽃으로 변신하는 산수유. 구례 산동의 산수유마을에는 노란 안개처럼 핀 산수유가 한바탕 장관을 이룰 것이다.

산수유보다 더 높은 채도를 자랑하는 노란 나무 꽃으로는 생강나무 꽃이 있다. 가지를 분질러 보면 생강 냄새가 나기에 생강나무라고 이름이 지어진 이 나무의 꽃은 산수유와는 다르게 꽃잎이 촘촘하게 붙어 핀다. 생강나무 꽃은 꽃차로도 쓸 수 있고 잎이 피면 나물로 먹기도 한다.

은안 마을 우리 산에는 생강나무 두어 그루가 있어서 봄이면 노랗고 예쁜 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생강나무가 사십 년을 키워 벌목하게 된 낙엽송에 휩싸여 덩달아 베어지고 말았다. 생강나무는 베지 말고 남겨두라고 미리 부탁해야 했는데 챙기지 못하고 보낸 것이 참 아쉽다.

우리 부모님 산소 앞에는 그리운 아버지가 심어놓으신 개나리꽃이 길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해마다 봄이면 핀다. 봄 내내 예쁜 꽃을 피워 주위를 환하게 밝혀주는 개나리꽃은 산소를 찾을 때마다 자식들에게도 위로를 주곤 한다. 잠깐 들여다보고 떠나버리는 자손들보다 봄 내내 예쁜 꽃을 피워주는 개나리가 부모님께는 자식보다 더한 기쁨을 드리고 있는 셈이다.

학명으로는 Forsythia Koreana Nakai라는 개나리는 한국 개나리라고 따로 이름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 모양 허리 위로 네 개의 꽃잎을 살포시 벌리고 있는 개나리꽃을 서양 사람들은 '황금종 나무(Golden Bell Tree)'라고 부르며 사랑한다고 한다. 앙증맞은 황금종이 줄줄이 달린 개나리의 위세가 꺾일 즈음 옆집 울타리에선 꿀을 듬뿍 품은 골담초 꽃이 피어나곤 했다.

사람들은 노란색이 주는 느낌 때문에 봄이면 기쁨과 생기를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색갈 중에 노란색은 명도가 10도인 흰색 다음으로 명도가 높고, 채도 또한 14도로 빨강과 더불어 가장 높은 채도를 자랑한다. 최고의 명도와 채도를 모두 가진 색은 노란색밖에 없다. 노란색은 검정과 곁들여지면 명시도가 높아져서 거리의 교통 표지판이나 건널목의 차단기, 과속 방지턱의 배색으로 이용되곤 한다.

노랑은 밝은 3원색의 하나로 낙관적이고 유쾌한 색이다. 태양을 상징하는 색으로 즐겁고 흥겨운 색으로 분류된다. 밝고 부드럽고 따뜻하며 화려한 색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으뜸신 제우스의 상징이기도 하다. 노랑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 혁신적이고 독창성이 있다고 분류하기도 한다. 변화와 미래지향적 성격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주장도 있다.

인상파 화가 고흐는 노란색을 사랑한 화가이다. 그의 그림 밤의 카페는 어두운 밤을 표현하는 검정색과 휘황찬란하게 카페 내부를 밝히는 노란 전기불빛이 대비를 이루는 걸작 중의 걸작이다. 그 외에도 씨 뿌리는 사람이나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노란 집’, ‘해바라기등의 그림에서도 고흐는 노란색을 주조색으로 쓰고 있다.

우리 집 안방에는 어느 이른 봄에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린 노란 프리지어 꽃이 잔뜩 꽂힌 정물화가 걸려서 방을 드나들 때마다 내게 희망과 생기를 느끼게 한다. 새봄에 잎새 떨군 나무들이 즐비한 우중충한 저채도의 겨울을 밀치고 노란색으로 피어나는 봄꽃들로 하여 우리가 기쁨과 생기를 되찾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겨우내 얼어붙은 땅속에서도 부지런히 생명을 준비하여 봄을 여는 노란 꽃들, 그것들은 연약한 것이 단단함을 이기고 겨울을 밀쳐내는 거룩한 힘을 상징한다. 이제 새봄이 열려 노란 꽃들이 한바탕 봄을 알리고 가면 곧이어 벚꽃이 피고 태양은 더욱 따뜻하게 대지를 덥혀줄 것이다.

노란색이 열어준 이 봄에는 옷가게에 들러서 생강나무 꽃 닮은 노란색 계통의 옷을 하나 사서 입고 노란색이 펼쳐주는 봄의 향연에 동참하련다. “나 혼자 밝아서 뭐하냐고 묻지 말아라. 내가 밝고 네가 밝으면 온 세상이 밝아지는 것 아니겠냐?”라고 시인의 흉내도 내보며 늙바탕이지만, 밝고 멋진 봄을 맞이하고 싶다.

남들이 그 나이에 무슨 뚱딴지람~~”하고 비웃을지 몰라도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