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국
곰국
  • 전주일보
  • 승인 2019.03.1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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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국을 먹는다 진하고 구수한 
곰국
언제 한 번 나도 
이렇듯 진하고 구수한 때가 있었던가
곰국에게 물었다
별 볼일 없는 나도
별 볼일 있는 날이 있을지

고통의 시간들이 익은 뒤
비로소 한 그릇의 곰국이 되었듯이
생을 끓여내야 한다고
많은 날들을 
장작불에 시달려야 한다고

그리하여  
밤하늘에서 길을 잡아주는 곰자리별 같은
나머지 생을 살아야 한다 
뜨끈뜨끈한 곰국의 말씀이었다


코뚜레를 꿰는 순간 송아지는 소가 된다. 별을 보고 나가 하루 종일 쎄빠지게 일을 하고 별을 한 짐 지고 외양간에 돌아오는 소는 손자의 대학 입학금울 위해서 팔려 간다. 불평 한 마디 못한 채 도살이 되어 살은 살대로 뼈는 뼈대로 분해된다.

그 뼈를 가마솥에 넣고 장작불로 지져 댄 것이 곰국이다. 곰국(湯汁)은 사태, 쇠고리, 허파, 양, 곱창을 삶아 반숙(半熟)되었을 때 무를 넣고 간을 맞춰 다시 삶는다. 푹 익으면 고기와 무를 꺼내어 잘게 썰어 숙즙(熟汁)에 호초(胡椒)와 파를 넣는다.

이렇게 만든 곰국을 입맛 잃은 부모님에게 드리고, 공부 잘하라고 수험생 아들에게 먹이고, 얼른 자리를 떨고 일어나라고 환자에 주기도 한다. 소에게는 교만과 허위와 가식. 나태와 경거망동. 부정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두 눈을 끔벅이며 뚜벅뚜벅 걷는 정진의 모습을 인간은 모름지기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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