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쪽박 깨질라'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쪽박 깨질라'
  • 전주일보
  • 승인 2019.03.0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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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신영배
발행인/신영배

1894년 정월, 고부 농민들이 가렴주구를 일삼는 조병갑 군수의 관아로 쳐들어가 조병갑을 몰아내면서 촉발된 동학농민혁명은 썩은 정치를 도려내고 평등과 민주를 염원하는 백성들의 함성이었다.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한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해 전라감사와 화약(和約)을 맺고 집강소를 설치하는 등 잠시나마 백성들이 직접 고을의 일을 처리한 일은 우리 민족의 민주 역량을 확인한 위대한 사건이었다.

비록 일본군 개입으로 실패로 끝난 혁명이었지만, 민족의 저력을 드러낸 농민저항운동으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한 사건이었다. 국민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 저항심은 100년 전인 1919년에 다시 일제의 침략에 맞서 3.1 독립만세운동으로 뜨겁게 타올랐다.

그래서 동학농민혁명은 전북인의 자랑이고 기층민중의 저력을 보여준 역사적 경험이기도 하다. 정부는 최근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 행사일자를 농민군이 황토현에서 관군과 싸워 대승을 거둔 5월11일을 동학혁명기념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오는 5월11일은 동학농민혁명 이후 처음으로 국가 기념일로 지정돼 기념식을 치루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농민혁명이 도내 4개 시.군에 걸쳐 진행됐던 사실 때문에 관련 지자체가 저마다 기념사업을 진행하려는 의욕으로 충돌(?)하는 등 사업이 일관성 있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다.

정읍시는 농민군이 고부 관아에 쳐들어간 사건의 발상지이고 5월11일 농민군이 전라감영군에 대승을 거둔 황토현이 소재한 고장으로 당연히 동학운동의 중심고장으로 인정되고 있다. 또 고창군은 고창 무장에서 농민군이 정식으로 기포한 지역이므로 기념사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부안군은 백산에 8,000여명의 농민군이 집결해 황토현 전투를 치르기 위한 준비를 했던 지역이라며 기념사업을 따로 구상하고 있다. 전주시 또한 5월11일 동학군이 전라감영을 점령해 화약을 맺고 집강소를 총 지휘한 중심이었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또 다른 기념사업을 마련하고 있다.

최근에 고창군수는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에게 동학혁명기념행사 때, ‘동학인포고문’을 동학농민혁명유족회장, 고창군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장이 직접 낭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건의했다. 아울러 전봉준 생가의 국가 사적 지정 등 관련 사업과 예산 지원도 요청했다.

또 부안군은 백산에서 농민군이 군대조직을 완성하여 황토현 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역이므로 현재 정읍 황토현전적지에 조성 중인 기념공원과 연계해 동학랜드를 조성해 줄 것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건의했다고 한다.

이렇게 4개 시군이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두고 ‘중구난방’으로 해당 시군에 유리한 방향으로 사업을 구상하고 저마다 다른 주장을 펴고 있으니, 해당 문화체육관광부는 퍽 난처할 것이다. 이러다 누구의 손을 들어주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 때문에 앞으로 국가지정 기념사업에 대한 전체를 아우르는 계획이 마련되어야 할 터이지만, 우선 이런 난맥상을 정리해 정부와 한 창구를 마련해야 관련 지자체 뿐 아니라 전라북도에 유리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전라북도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진행 상황만 보고 있는 건은 아닌지 궁금하다. 필자는 여러 차례 전라북도의 역할에 대해 지적하고 중재와 조정을 주문했던 것처럼 동학농민기념사업처럼 시.군간의 이해가 맞물리게 되면 전라북도가 재빨리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때는 작은 지역 문제로 풀어가지 말고 각 시장 군수와 도지사가 머리를 맞대고 도민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여 가장 합리적이고 유익한 방향을 도출하는 것이 광역단체장의 역할이다.

더구나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정해지고 앞으로 국가가 개입하여 사업을 진행하게 되면 자칫 시.군간 알력이 생길 수도 있고, 그런 것이 빌미가 돼 사업이 축소될 수도 있으므로 재빠른 중재와 의견의 수렴이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앞서 말한 대로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은 그동안 여러 시.군에 걸쳐 진행되었고 전북인의 기상을 잘 드러낸 역사적 사실이다. 이 사업을 잘 준비하고 관련 지역간 유기적인 협조를 이루어 낸다면 동학농민혁명과 3.1 독립만세, 4.19 학생혁명, 5.18 광주 민주혁명으로 이어지는 항쟁역사의 뿌리로 의미화할 수 있다.

좀 더 큰 시야로 넓고 길게 보고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밀고 나갈 것인지 생각하고 중지를 모아서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이다. 그래서 송하진 전라북도 수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동학처럼 훌륭한 유산을 두고 작은 단위의 시군끼리 서로 아옹다옹 다투는 부끄러운 사태를 만든다면, ‘동학난’이라고 폄훼한 친일파 역사학자들이 춤을 출 것이고, 일제의 총칼에 스러진 농민군과 3.1 독립만세 때에 희생된 선열, 4.19와 5.18의 영령들이 통곡할 것이다.

따라서 정읍, 부안, 고창, 전주시 등의 단체장도 우선 코앞의 작은 이익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넓은 마음으로 크게 멀리 보아주기를 바란다. 가까이서는 보이지 않던 것도 뒤로 멀찍이 물러나면 환하게 보이는 법이다.

비단 동학혁명기념사업뿐 아니라 모든 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당장 임기 내에 뭔가를 드러내려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지금 시민들은 훤히 알고 있다. 다시 부탁하지만, 전북도는 좀 더 능동적으로 광역단체의 역할에 충실하고, 각 기초단체장은 당장 치적에 연연하지 말고 크고 멀리 보며 전북의 내일을 생각해주기 바란다.

지금은 우리가 힘을 모으고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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