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수 6백'의 또 다른 시각
'광수 6백'의 또 다른 시각
  • 전주일보
  • 승인 2019.02.1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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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화투판은 '고스톱'이 대세다. 고스톱이 남녀노소가 즐기는 전 국민의 오락이 된 데는 한국 IT 산업 발전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더욱 널리 국민 오락으로 자리잡게 되어서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휴대폰에 저장된 고스톱 창만 열면 누구나 즐길수 있어 화투판을 싹쓸이 하고 있다.

인터넷 고스톱 전에는 지역마다 특색있는 화투놀이가 존재했다. 1980년대 광주에서는 '6백'이 유행이었다. '6백' 화투판에서 패의 제왕은 비 광(光)이었다. 비 광을 쥐면 바닥에 깔린 패 중 아무 패나 하나 더 가져 갈수 있었다. 그러니 비 광은 깡패 두목이나 다름 없는 공포였다.

비 광의 위력은 광주 5·18을 거치면서 더 광폭하게 변한다. 민주주의 유린 현실을 반영해 '전두환 6백'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6백이 출현했다. 비 광은 전두환 장군으로 변해 무소불위의 힘을 보여 주었다. 당시 화투판에서 전두환 비광은 바닥에 깔린 패가 아니라 아예 상대방이 따놓은 패를 마음대로 뺏을 수 있을 정도로 무지막지했다. 상대편이 따놓은 패를 뺏는 모습이 영락없이 전두환의 정권 찬탈과 닮았다.

5·18 말만 나와도 잡혀가던 엄혹한 시절에 민초들이 화투판에서 전두환을 비꼰 것이다. 그렇게 라도 해서 전두환의 정권 탈취를 고발하려는 애절한 몸짓이었다.

한 때 전두환 장군 이미지를 흐린다고 해서 "전두환 6백 금지령이 내려졌다"는 웃지 못할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나중에 6백은 사라지고 '삼봉'화투가 잠시 유행하다 지금의 '고스톱'판으로 넘어 갔다.

최근 지만원과 자유한국당 이종명·김순례 의원의 5·18 망언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역사적 판단이 끝난줄 알았던 5·18의 가치를 송두리째 뒤집어(?) 버렸다. 그 중에서도 지만원의 광주 북한 특수군 6백명설(광수 6백)은 가관이다. 지만원은 "80년 5·18 당시 광주에 6백명의 북한군 특수군(광수 6백)이 내려왔다"고 또 다시 주장했다. 그렇다면 그는 있지도, 있을 수도, 있은 적도 없는 광수 6백명을 어디서 끌어 왔을까.

필자의 상상으로는 5·18 이후 광주 화투판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지씨가 5·18 당시 광주에 내려와 화투판을 전전하면서 떠올린 숫자가 6백이 아닐까 한다. 그런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도저히 '광수 6백'이라는 숫자가 나올 수 없다. 광주 화투판 사람들을 보고 '광수 6백'을 떠올렸음이 분명하다. 광수 6백이라고 지목당한 사람들 상당수가 당시 6백을 쳤을 테니 꼭 낭설로만 볼 수도 없다. "역사는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는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말처럼 화투판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6백을 여러 갈래로 해석하다보니 이런 결론을 내렸다는 것을 밝힌다. 세상 참 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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