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을 읽고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을 읽고
  • 전주일보
  • 승인 2019.02.1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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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에 대한 소송은 일반 국민의 소송과 달리
부조리가 아닌 관심과 평가가 반영된 것이다.

▲ 최영호 변호사

필자는 로스쿨에 갈 때까지 법정에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 자신의 분쟁으로 법정에 가 본 적도 없다. 더욱이 범죄로 수사를 받아 본 적도 없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업상 분쟁으로 송사에 휘말리지 않았거나, 이혼, 임대차 등의 민사소송을 겪거나, 음주, 무면허 등 자동차 관련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소송을 겪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주위의 장삼이사는 소송이란, 그것이 민사이든, 형사이든 뉴스에서나 보는 것으로 자신의 현실과는 무관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직업 체험의 일환으로 변호사로서 중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한 적이 있다. 어떤 학생이 ‘소송’이 무엇이냐 물었고, 필자는 ‘욕망과 욕망이 부딪칠 때 발생하는 것’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아주 불충분한 대답이지만, 이는 민사 소송의 양 당사자의 대립하는 성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만약 이 질문을 다시 받는다면, 평생 한두 번 겪어볼까 말까한 소송을 직접 겪어본 사람들의 입장에서 소송의 본질은 돈과 시간이라고 답할 것 같다.

평범한 사람이 소송을 겪게 된다면, 그분들은 비현실적인 법정 용어와 지식의 비대칭성 가운데 불친절한 사법 시스템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판사와 검사 그리고 변호사를 마주하며, 한없이 들어가는 돈과 시간을 두고 자신이 한 편의 부조리극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고등학교 시절 카프카의 ‘변신’이란 소설을 읽고, 갑자기 벌레가 된 주인공으로부터 삶이란 자다 일어나서 벌레가 될 수 있다는 사실과 그러한 소설을 두고 부조리하다고 평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변호사가 되어 다시 카프카의 ‘소송’을 접하게 되었다. ‘소송’은 지극히 부조리한 삶을 소송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은행의 간부로 평탄하고 성공의 삶을 살던 주인공이 어느 날 체포되어 소송을 겪게 된다. 1년간 소송을 겪으며, 법원에 그 부당함을 직접 따지기도 하였고, 법원에 인연이 있는 아주 유능한 변호사를 만나기도 하였으며, 법원과 관련 있는 화가를 만나 도움을 받으려고 노력도 하였지만, 결국 주인공은 처형되고 만다.

처형이 될 때까지 주인공이 왜 처벌을 받게 되는지 그 사유는 밝혀지지 않으며, 주인공도 결국 그 이유조차 모른 채 소송을 겪고, 처형을 당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소송 과정에서 주인공은 소송에 관련한 다음과 같은 조언을 받는다.
“그런 소송을 하는 것은 애당초 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격언”, “더 이상 그렇게 고집을 세우지 마세요. 아무도 이 법원에 맞서 싸울 수는 없고, 결국 자백할 수밖에 없어요. 다음번에는 꼭 자백을 하도록 하세요. 그래야 빠져나갈 구멍이 생겨요. 그것이 유일한 기회예요.”, “그런데 그와 같이 비공식적인 직책이 공인된 직책보다 더 영향력이 있을 때가 많지요.”,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이성으로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수많은 얘기들이 오간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모든 조언은 주인공이 어떠한 범죄로 소송을 받게 되는지 그 실체와 관련이 없다. 모호한 상징으로 가득 찬 소설은 현학적인 대사로 지루하다고 생각이 될 때쯤, 20세기 오스트리아인지 21세기 대한민국인지 알 수 없는 조언을 하게 된다.

법원의 비공식적인 직책을 가진 화가는 법원의 의뢰로 두 눈을 가리고 발꿈치 날개 달린 여신을 그리고 있다. 이에 대해 주인공은 “정의의 여신은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울이 흔들리고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가 없지요.”라며 그 모순을 설명하지만, 화가는 그저 주문자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답한다.

누군가는 전직 도지사와 현직 도지사란 권력자들에 대한 판결에 대해 소송의 부당함을 평가하며 정의의 잣대를 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소송은 권력자에 대한 것으로 전 국민이 관심과 평가 속에 이루어진 것으로 ‘소송’이란 소설 속 부조리의 본질과는 관련이 없다. 국민이 겪는 소송이란 복잡한 절차와 어려운 용어, 독과점으로 인한 돈과 시간이라는 비용이 뒤엉켜 나약한 개인이 국가 권력에 대해 가지는 무기력감이다.

 ‘소송’이란 소설을 통해 사법 시스템 속 개인의 존재는 무척이나 나약하고, 무기력하다는 것이 전 세계의 보편적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데에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든다. 그렇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시스템의 언저리에서 무기력한 개인 중 하나로 남을 수밖에 없는 현실과 여전히 필자는 부조리극 속 일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복잡한 심경만이 남을 뿐이다. /최영호 법무법인 모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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