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괜찮다. 걱정 마라."
"난 괜찮다. 걱정 마라."
  • 전주일보
  • 승인 2019.01.3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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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장지나/수필가

“괜찮아유 오지 마유!” “응, 너냐? 별것 아닌 게, 오지 말어!”

휴대폰을 끈 할머니는 끄응~ 앓는 소리를 하며 돌아눕는다. 어젯밤 화장실을 몇 번씩 다니느라 한 숨도 못 잔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자녀들이 온다는데도, 애가 타는 목소리로 거짓말을 하며 한사코 오지 말란다.

W 한방병원 입원실, 4명의 환자 중 3명이 교통사고 환자다. 나도 교통사고로 15일째 입원 치료중이다. 무주에서 왔다는 이 할머니는 심혈관 질환으로 입원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 곁에서 돌보다가 집에 있는 가축들을 걱정하니까, 할머니가 ‘나는 병원에 있응께 괜찮다’며 등을 떠밀어 보냈다.

괜찮다던 할머니가 배탈이 났는지, 밤새 잠을 못 잤다. 옆에 있는 나도 이 할머니를 데리고 화장실 다니느라 꼬박 밤을 샜다. ㄱ자로 꼬부라진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어도 혼자서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괜찮다고 가족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생면부지인 나한테는 도움을 받으며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차라리 그편이 마음이 편한 모양이다.

지금 창밖에는 첫눈이 내리고 있다. 겨울의 초입에선 나무들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모든 걸 벗어버렸고, 앙상한 가지들이 사나운 눈보라에 파르르 떨고 있다. 그러나 한 줌의 햇빛이라도 모으기 위해, 차갑게 멀어져간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 있다. 지켜내야 할 것들이 품 안에 있기 때문이리라.

마치 태아의 형상을 하고 누워있는 할머니가 안쓰럽기 짝이 없다. 너무 아파서 무릎이 코에 닿을 정도로 둥글게 말아 옆으로 누워 신음하다가, 화장실에 다녀온 지 10분도 안 되었는데, 다시 화장실에 가고 싶은지 눈치를 살핀다. 나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괜찮으니까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다. 할머니를 부축해서 변기에 앉혀 주고 나왔다.

구십이 다 된 할머니, 볼품없고 깡마른 늙은이, 냄새나고 귀찮은 존재, 이것이 우리 늙은이들에게 붙어있는 수식어가 아니던가. 그러나 그 초라한 늙음 속에는, 꽃 같은 젊음도, 소녀 같은 수줍음도, 상록수처럼 변함없는 아가페 사랑과 희생도 있다. 사랑받고 사랑하던 시절도 있을 것이고, 눈물 속에서 살던 날도 있을 것이다. 많은 대가를 치르고 살아낸 삶, 오늘도 자신 앞에 닥친 시련을 혼자서 견뎌 보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이, 가슴 시리게 아프고 위대해 보이기까지 한다. 갈퀴처럼 휘어지고 억센 손이 내 손을 꼭 잡고 미안하다며 다독거린다.

세상의 엄마들은,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불어 닥친 폭풍 앞에서도 고요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엄마들이 아니던가. 아들이 가끔, 나에게 전화해서 물어본다.

“어머니! 어디 아픈 데는 없으세요?”

“응 없어, 요즘은 아주 건강하단다.” 나도 거짓말을 한다. 딸이 물어본다.

“엄마, 뭐 필요한 것 있어요?”

“다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마!” 거짓말이다. 며느리가 말한다.

“어머니! 식사는 잘하세요?” “주무시는 건 편 하세요?”

“응 잘 먹고 잘 자고 있다.” 거짓말 같지 않은 거짓말을 나도 늘 하며 산다. 그러기에 늙은 부모의 대답은 반대로 알아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어린 아기의 울음과 노인의 신음 소리는 무심히 넘기지 말고 잘 살펴보라고 했다.

나는 아플 때, 참말만 해야 하는 병원 의사에게 찾아간다. 여기저기 아프고, 밥맛도 없고, 잠도 안 온다고, 투정하듯 말을 하면, 의사는 자기 어머니하고 똑같이 아프다고 하며 웃는다.

“내가 다 낫게 해 줄 테니까 약도 잘 먹고,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라며 다정스럽게 웃어준다. 아들 같고, 딸 같고, 며느리 같은 요상한 의사한테, 속 시원하게 참말을 했더니, 약도 먹기 전에 병이 다 나은 것 같다.

영국의 노인 심리학자 ‘브론디’ 는 인생의 4분의 1은 성장 하면서 보내고, 나머지 4분의 3은 늙어가며 보낸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4대 고통이 따른다고 한다. 질병과 고독감, 경제적 빈곤, 그리고 역할 상실이라고 한다. 분명, 이 4가지 항목 중 누구나 자유롭지 못한 것이 한 가지라도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휠체어를 밀어 물리치료실로 가는 다른 할머니는 내일 퇴원한다고 한다. 이유는 서울에 사는 자식들이 바쁘고 피곤할 텐데 올까 염려되고, 90이 가까운 영감님이 먼 곳을 운전하며 오는 것도 걱정이 되어서라고 나한테는 참말을 한다. 온 삶을 바쳐 지켜온 소중한 것이기에, 평생 써서 다 낡아빠진 삶의 보자기에 싸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애처롭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조금 덜 아픈 환자인 내가, 조금 더 아프고 더 늙은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어 물리 치료실로 가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런 것이 아니던가! 할 수 있는 도움을 주면 되는 것, 이렇게 작은 사회를 만들어 가며 서로 행복을 맛본다. 행복 역시 거창한 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휠체어를 잡은 두 손에 힘을 준다. 할머니 머리에서 살아있는 냄새가 난다.

쌀눈처럼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인정 한 조각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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