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하다 반 토막 난 체면
반말하다 반 토막 난 체면
  • 전주일보
  • 승인 2019.01.2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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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백 금 종/수필가

서울에 온 지도 삼 일이 지났다. 그간 쌓여있던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나니 우리 부부에게도 노루 꼬리만큼 여유시간이 생겼다. 무엇으로 소일을 할까 망설이다 롯데타워를 관광하기로 했다.

롯데타워는 서울이 자랑하는 랜드마크로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명소가 아닌가? 그 내부의 휘황찬란한 모습에 빠져보는 것도 흥미가 있지만 450여 미터가 넘는 122층 전망대에서 느끼는 짜릿함과 눈 앞에 펼쳐진 서울의 전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함에 젖는다 한다.

지하철 신분당선 잠실역에 도착한 후 이정표에 따라 롯데타워를 찾아갔다. 사람들이 붐비고 미로처럼 이어졌지만 어렵지 않게 찾을 수가 있었다. 이렇게 깊은 지하에서 이곳저곳으로 환승도 하고 출구로 연결해서 편리하게 찾아갈 수 있게 하는지 우리나라의 우수한 토목공사 기술 덕분이거니 생각했다.

롯데타워 1층으로 들어섰다. 건물 안에 하나의 도시가 만들어져 상가가 즐비하고 사람들은 붐비고 있어 어디에서 타워에 오르는지 그 입구를 찾기가 좀 어려웠다. 두리번거리며 한참을 걷고 있는데 제복을 입은 손자뻘쯤 되는 한 청년이 앞에 서 있었다.

난 그 청년에게 “어이, 롯데타워 입구가 어디인가?” 하고 물었다. 그 청년은 아무 말 없이 손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바라보니 매표소라는 안내판과 함께 그 앞에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옳지, 저기로구나.’ 생각하고 그곳으로 향하려는데 안내해 주었던 그 청년이 나를 바라보며 약간 언짢은 표정으로 “경어를 쓰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차 내가 실수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 사람이라 평소 하던 대로 젊은이에게 반말이 불쑥 나온 것이다. 덕분에 체면이 반 토막 났다.

롯데타워의 각 코너에는 젊은이들이 안내를 맡고 있었다. 모두 꽃 진 자리에 피어나는 초록처럼 풋풋한 젊은 남녀들이었다. 나는 되도록 말을 삼가면서도 필요할 때는 꼭 경어를 사용해서 말을 걸었다. 평소에 젊은이를 상대로 경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 습관이 있는지라 조금은 부자연스럽고 어색했다.

그러나 나의 경어를 듣는 젊은이들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흘렀고 상냥하게 대해 주었다. 나 역시 밝은 마음으로 서울 시가지를 바라보니 우리네의 분주한 일상과는 달리 평화로운 산수화가 창을 넘어 안으로 비춰졌다.

노인들의 금기 사항으로 ‘나이 먹은 것을 내세우지 마라, 지난날에 했던 일을 자랑마라, 큰소리나 반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노인이라는 이름으로 젊은이를 가르치려 들지 마라’ 등 이 시대의 노인이 알아야 할 요소 정도는 안다. 그러나 상황이나 경우에 따라 약간의 정도는 있는 것이 아닐까? 때에 따라서는 반말도 할 수 있어야 정도 나누고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반말을 들으면 기분 좋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일상에서 말 한마디에 따라 다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심지어 국회의원들도 장관이나 고위 공직자를 상대로 반말이나 욕설에 가까운 말을 사용하면 국민의 지탄을 받기도 하고, 때론 그의 자질론까지 거론되는 경우를 종종 보아 왔다.

어느 지방의 시의원이 반말로 질문하는 것을 보고 그 기관 공무원들이 “반말을 하지마라.”는 피켓까지 들고 시위한다고 하니 반말이란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물론 자존심까지도 건드리는 독약이 되는 경우도 있다.

반말과 관련한 옛 우화가 한 토막 생각난다. 옛날 나이 지긋한 양반 두 사람이 푸줏간에 갔다. 한 사람이 "이봐 백정, 쇠고기 한 근 주게." 하자 다른 사람은 "이보게 김 씨, 나도 한 근 주시게." 했다. 푸줏간 주인은 먼저 양반에게는 말없이 한 근을 달아 주었다.

그런데 나중 양반에게는 "어르신 여기 있습니다." 하며 육질이 좋은 고기를 골라 공손히 건네주었다. 먼저 고기를 청한 양반이 왜 다르냐며 화를 냈다. 그러자 주인이 말했다. "그쪽 것은 백정이 자른 것이고, 이 양반 고기는 김 씨가 잘라서 그렇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처럼 말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천양지차를 보이기도 한다.

‘노인이 되지 말고 어른이 되자.’ 라는 말이 있다. 어른이란 나이만 가득한 사람이 아니다. 생각이 성숙되고 포용하고 배려할 줄 알아야 비로소 어른이라 할 것이다. 자기의 경험이 진리인 양 가르치려 하지 않은 사람. 젊은이들의 말에 조용히 귀 기울이고, 그들을 인격체로 존중하며 그들에게서도 배우고, 고맙다고 인사할 줄 아는 아량이 있는 노인. 그가 진정한 어른이 아닌가 한다.

기해(己亥)년 새날이 밝은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 새해를 맞이하며 몇 가지를 다짐한 바 있다. 지금까지 소홀했거나 이행하지 못한 것을 꼭 실천하려는 나만의 다짐이었다. 그러나 오늘 롯데타워에서 그 청년을 만나면서 또 한 가지를 거기에 더했다. 나이를 앞세워 억지 존경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자라고 일하던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전혀 다른 시대라는 자각을 새롭게 했다.

내가 살던 시대,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이 서로 ‘정’이라는 뜨거운 국물을 홀홀 불어 나누어 마시며 살던 시대는 갔다. ‘우리’ 보다는 ‘나’를 앞세우는 세상에서 나이 든 사람은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봉건시대의 장유유서는 이미 흘러간 노래다. 세상이 가르치는 대로 잊을 건 잊고 버릴 건 버리며 살자./백금종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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