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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금요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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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3  15: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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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고 운/수필가

70년하고도 몇 해를 더 살았는데 아직도 매사에 덤벙대다가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덤벙댈 뿐 아니라, 남의 처지를 헤아릴 줄도 모른다. 어쩌다가 내 잘못을 생각해내고 사과할 때도 있지만, 거의 내가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만다. 정말 헛나이만 먹고 여기까지 왔다.

기온이 곤두박질해서 영하를 가리키던 어제 아침에 수필문학회 회지 최종 교열을 끝내서 출판사에 교정지를 가지고 갔다. 담당자와 수정 부분을 다 찾아 확인하고 나서 밖에 나온 시간이 대충 10시 언저리. 집에 돌아갈까 하다가 엊그제 컴퓨터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케이스에 붙이는 ‘쿨링팬’을 고정할 핀이 없어서 떼어놓았던 생각이 났다. 금속 볼트를 구할 생각으로 ‘공구 거리’로 향했다.

공구 거리에서 두리번거리다가 눈에 익은 볼트가게에 찾아 들어갔다. 주인 내외와 낯선 젊은이가 반갑게 맞이한다. 젊은이에게 1인치 길이의 가는 볼트와 너트를 찾는다고 말하고 바로 진열한 곳에 가서 물건을 찾았다.

“몇 개나 쓰시게요?”

“팬을 고정하려는데 핀이 없어서 볼트로 해보려고 왔네요. 4개만 있으면 됩니다.” 젊은이는 씩 웃고 볼트 4개를 내 손에 올려놓는다.

“얼마죠?”

“아버지한테 물어보세요” 한다. 내가 손에 있는 볼트를 주인에게 보여주자,

“선물입니다.”

“예?”

“선물로 드린다고요.”

“아, 예, 고맙습니다.” 나는 그저 몇 푼 안 되는 금액이니 그냥 가져가라는 주인의 뜻만 생각하고 가게를 나왔다. 생각해보니 예전에도 그 가게에서 볼트 몇 개를 공짜로 얻어쓴 적이 있었다.

집에 돌아와 팬을 달았다. 아주 깔끔하고 좋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까 볼트 가게에서 일이 생각났다. ‘선물입니다.’라던 의미가 어딘지 개운하지 않게 여운으로 내게 남아있음을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내 내가 퍽 둔한 사람이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기온이 영하 3도 정도이던 아침,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그 옆 가게는 문도 열지 않았었다. 막 가게 문을 열고 식구들끼리 추위에 어설퍼진 분위기를 녹이고 있던 그 시간에 내가 가게에 들어간 것이다. 말하자면 첫 손님인데 손톱만 한 볼트 4개를 사겠다니 속으론 기가 막혔을 것이다. 어린아이라면 모를까 살 만큼 산 노인이 아침 첫 손님으로 들어와서 하찮은 볼트 4개라니….

어쩌면 내가 나오고 나서 주인은 문 앞에 소금이라도 뿌렸지 않나 싶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하루 첫 손님에 상당히 신경을 쓴다. 첫 손님이 물건을 잘 팔아주면 종일 장사가 잘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그런데 낫살이나 먹은 사람이 덜컥 들어와서 손바닥에 가는 볼트 네 개를 달랑 얹어 가격을 물어보니 ‘선물입니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속으로 갈무리했을 것이다. 설사 주인이 언짢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해도 내가 한 짓은 너무 경솔했다.

내가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면 갑자기 추워진 날 아침에 몇백 원어치도 되지 않는 물건을 사러 그 가게를 찾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에 어느 오후 시간에 찾아갔더라면 선물이라는 말 대신 그냥 가져가고 다음에 또 오시라는 말을 들었을 터이고 이런 미안한 생각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재승박덕(才勝薄德)이라는 말이 있다. 이런저런 재주는 좀 있지만, 덕이 없는 사람. 아니, 그 하찮은 재주를 믿고 덤벙대고 경망하게 나대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지나치게 자신을 과신하고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까불다가 실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바로 날 가리키는 말이다. 친절하지 못하고 두루뭉술하지 못해 다른 이가 편하고 쉽게 대하지 못하는 사람, 별 볼 일 없는 주제를 착각하며 살아온 나의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안중에 두지 않고 무시하거나 나하고 생각이 다르다 해서 아예 상대하지 않았던 일도 많았다. 성실하게 자기 나름의 삶을 살아온 이들을 내 잣대로 함부로 재고 평가하여 무시해버렸던 잘못도 수없이 저질렀다. 다양한 사람이 사는 세상,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것이 세상이다. 내 어설픈 잣대로 세상을 재단했던 죄를 이제야 깨닫고 자책하지만, 너무 늦었다.

생각은 그런데 내 행동은 아직도 별로 달라진 데가 없다.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버릇이나 태도가 다른 이에게 무례를 범하거나 불쾌감을 주었을 것이 틀림없다. 많을 것이다. 아니, 무수히 잘못을 저지르고 상처를 주거나 실례를 범했을 것이다. 한 번 눈 밖에 나면 마음을 아예 닫아버리는 야멸찬 성격을 두고 여러 차례 자책도 했다. 뾰족한 성미를 누그러뜨리느라 나름 애를 쓰기도 했지만, 타고난 못된 성미를 아직도 고치지 못해서 주변에 상처를 준 일도 여러 번이다. 살면서 내 말과 행동과 글로, 남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은 내 독선으로 얼마나 많은 아픔을 주었는지 모른다.

오늘 무심코 저지른 내 경솔한 행동으로 ‘선물’이라는 힐책을 받았다. 덕분에 나를 돌아볼 수 있었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이는 그저 세월의 더께를 말하는 숫자가 아니고 더욱 진중하게 살라는 ‘무거운 훈장’인 것을 다시 깨우친 하루였다.

나보다 조금 젊어 보이던 볼트 가게 주인에게서 ‘큰 선물’을 받은 셈이다. 그 선물은 언제나 ‘지금 하려는 내 말이나 행동을 타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며 살라는 따끔한 회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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