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監察)
감찰(監察)
  • 전주일보
  • 승인 2018.12.26 15: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감찰(監察)'의 사전적 의미는 공무상 비위(非違)나 비행(非行)을 조사 또는 감독하는 일이다. 통상 조직의 규율과 구성원의 행동을 감독해 살피는 것을 뜻한다. 역사적으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권력과 감찰은 동반관계였다.

신라시대에는 지방관 감찰을 위해 외사정(外司正)을 두었고, 고려시대에는 어사대(御史臺)가 감찰을 관장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사헌부(司憲府 )로 이어졌다. 모두 최고 통치자인 왕의 권한을 강화하거나 유지시키기 위한 제도로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감찰의 업무가 변질되기 시작한 것이 일제강점기 '사찰'(査察)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인물들을 '요시찰인'으로 분류해 리스트로 만든 '요시찰인명부'가 대표적이다. 이같은 방식은 광복 직후 경찰들이 사상범을 잡는 데 활용되기 시작하더니, 한국 정치사에 '불법 사찰의 역사'를 낳았다. 이승만 정권 당시 경찰 사찰과는 야당 정치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으며, 박정희 정권에서는 중앙정부보가 정치 사찰을 담당하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자리잡아 정치인, 언론인, 교수, 국민까지 사찰의 대상이었다.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자료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상이 불투명하며 권모술수와 기만으로 정치생활 30년을 일관한 신뢰성이 전혀 없는 위험인물'로 적혀 있다. 사찰이 대중속에 민낯을 드러낸 것은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사찰 폭로사건'(1990년 10월 4일). 이 사건으로 노태우 정부는 문책인사를 단행하고 보안사 서빙고분실을 폐쇄했다. 명칭도 국군기무사로 바뀌었다.

1999년 5월 '옷 로비사건'으로 문제가 됐다 이듬해 해체된 '사직동팀' 역시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라는 명칭으로 고위공직자와 대통령 친·인척 관리 및 첩보수집 기능을 담당한 청와대 직속 수사기관이었다. 지금의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부활한 것도 그 즈음이다. 당시 사직동팀을 해체한 후 2002년 민정수석실을 만들어 그 아래 청와대 내부 감찰을 위한 특별감찰반을 만들었고 이후 외부 첩보까지 수집하는 조직으로 바뀐 것이다.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이 전 감찰반원의 잇따른 폭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찰은 '주로 사상적인 동태를 조사하고 처리하던 경찰의 한 직분'으로 엄연히 따지면 불법은 아니다. 그 대상이 공직자인가 민간인인가, 방식이 적법한가 불법인가에 있다. 이번 사건은 감찰반원 한 사람의 일탈일수도, 특수권력의 오만함일수도 있다. 무엇보다 오랜 기득권인 '적폐청산'을 주도해 온 민정수석실의 무게만큼 집요한 공격이 이어질 것이다. 매일 날선 공방을 주고받기 보다 권력의 건강한 작동을 위해 이제는 잠시 호흡을 고르고 숙고해야 할 시점이다. 감찰의 의미처럼 살피고 또 살핀다면 진실은 반드시 가려지게 돼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