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을 권리
잘 죽을 권리
  • 전주일보
  • 승인 2018.12.0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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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편집고문

내년 3월28일부터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조건이 완화된다. 지금까지는 연명치료(심장마사지 · 인공호흡 · 점적수액요법 등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의료행위 전반) 중단 조건 가운데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19세 이상 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 전원의 서명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손자 · 손녀 동의는 없어도 중단할 수 있도록 바뀐다. 앞으로 가족의 동의가 부족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이어나가는 일이 크게 줄고 존엄사를 맞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다시 건강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이들이 마지막까지 생명을 연장하는 것만을 위하여 온갖 기기를 매단 채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보다,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게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하는 방법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처럼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명치료중단을 '존엄사'라고 한다.

이 존엄사는 이미 네덜란드, 스위스, 태국 등 나라와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40개 주에서 채택하여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동안 가족들의 동의를 조건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가 이번에 다시 조건을 완화하여 환자의 의사가 있으면 직계 존비속 전원의 동의 없이도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존엄사 문제는 연명치료에 국한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이유로 더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의사의 조력으로 편안하게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죽을 권리’ 문제로 등장했다. 이미 스위스 · 캐나다 · 네덜란드 · 벨기에와 미국의 오리건 · 워싱턴 · 뉴멕시코 · 캘리포니아 · 버몬트 · 몬테나주에서 의사의 조력 죽음이 합법적이거나, 처벌받지 않는 의사의 의료행위로 간주되고 있다.

지난봄에 호주의 104살 데이비드 구달 박사는 “나는 늙고 있습니다. 시력을 포함해 내 모든 능력은 퇴화했습니다. 이제 나는 집에 24시간 갇혀있거나, 양로원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아요. 죽고 싶어요. 슬프냐고요? 아뇨, 내가 슬픈 건, 죽어야 해서가 아니라 죽을 수 없어서입니다.”라며 죽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지난 5월 9일 스위스 바젤에서 ‘바르비투르산염넴부탈’을 투여받아 주사약의 스위치를 본인이 직접 눌러 저세상으로 갔다. 구달 박사는 나이가 많았지만 다른 지병이 없이 건강한 상태였음에도 그저 죽을 날을 기다리는 의미 없는 삶을 이어가기 싫다며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이 일을 두고 이러한 조력 죽음에 대한 반대의견을 주장하는 사람과 찬성하는 의견이 엇갈렸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국민의 기본권에 죽을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생존권만 있고 죽을 권리는 왜 빠져있느냐는 주장이다. 죽을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불치의 병으로 전혀 활동할 수 없고 약물로 통증을 완화하며 사느니 죽는 게 낫다는 주장이다.

지난 7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 아버지를 제발 죽여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내 아버지는 지난해 7월 췌장암 3기 판정 이후 5월까지 항암치료를 받으셨다. 이미 췌장암은 말기로 진행됐고 이제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있다”면서 “현재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시고 말도 못하신다. 통증이 너무 심해 수면제와 진통제에 의지해서 종일 주무신다. 1분 남짓 깨어 계실 때면, 아버지는 고통에 빠져계시다가 간신히 손을 움직여 ‘안락사’를 검색하신다”고 적었다. 그는 “제발 아버지가 죽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극심한 통증에 약물로 연명하며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사는 아버지를 보는 아들의 마음이 잘 드러난 청원이다. 그러나 현행법으로는 이런 환자를 도와줄 방법이 없다. 내년 3월 28일부터 시행하는 연명치료에 관한 법률의 개정 내용도 가족들의 동의 범위를 조금 줄인 내용이 전부다. 위 청원 게시자의 아버지처럼 통증으로 진통제를 쓰면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줄 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앞에서 말한 기계를 이용한 생명유지장치와 약물 주입 등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중단하는 ‘존엄사’만 우리 법은 허용하고 있다. 이 존엄사보다 조금 더 높은 단계인 소극적 안락사가 있다. 환자에게 공급되던 필수 영양소나 약물 공급을 중단하여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 방법은 우리 법에서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 윗 단계로 호주의 구달 박사가 스위스에 가서 선택한 의사 조력에 의한 안락사 방법이 있다. 의사가 수액을 혈관에 꽂아 주고 안락사를 원하는 당사자가 그 스위치를 눌러 스스로 죽음에 이르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의사가 직접 죽음에 이르도록 조치하는 적극적 안락사가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이 존엄사에 관심이 크게 늘었다. 많은 사람이 ‘연명치료 포기 의향서’를 작성하고 향후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사전에 준비해두고 있다. 이런 추세는 어느 날 찾아온 죽음에 당황하지 않고 의연한 자세로 존엄을 지키며 죽고 싶다는 뜻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웰다잉’, 잘 죽겠다는 생각은 잘 살겠다는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

건강하고 즐겁게 잘 살다가 죽음이 닥치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여 삶을 멋지게 끝내겠다는 소망은 아마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지 않아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도 의사에 의한 ‘조력 죽음’을 허용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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