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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섬, 소록도에서금요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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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9  15: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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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반도의 소삽한 구불길을 헤집고 오르니 연륙교가 무지개처럼 앞에 덩그렇다. 다리 건너에 소록도라는 이정표가 반갑다. 한참을 더 달려 소록도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하지 무렵의 부지런한 해가 정수리에 걸려있다. 안내인을 따라 조붓한 길로 들어섰다.

바닷가를 안고 말끔하게 펼쳐진 인조목 길을 따라 경내로 향했다. 풍상을 견디며 싱싱하게 자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바다로 가지를 내밀고 여유롭게 서 있다. 소록도라는 이름을 닮아 그런지 나무들도 사슴을 닮았다. 솔밭 너머 먼발치 바다에는 돛단배 하나가 아침 적막을 깨며 쏜살같이 난바다로 나아간다.

한줄기 하얀 곡선의 포말이 사라진 뒤로는 갈매기 한 쌍이 곡예를 하며 사랑놀이에 여념이 없다. 소나무와 배 그리고 갈매기가 어울려 녹동 앞바다에 생경한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낸다.

소록도는 애환의 고도요 절망의 섬이었다. 사람들이 구경거리로 관광하기에는 너무나 슬픈 섬, 한센인들의 눈물과 땀이 고인 처연한 역사가 흐르는 곳이다. 천형처럼 무서운 병에 쫓겨 낯선 이곳까지 온 그들, 병마와 싸우고 좌절과 절망에 몸부림쳐야 했던 고통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내가 소록도를 찾은 것은 이번으로 두 번째이다. 처음 방문했던 때는 과학 교사 시절 동료 교사들과 함께 환자 위문 차 찾았던 적이 있다. 녹동항에서 통통배를 타고 1.6 km 남해의 검푸른 물결을 헤치고 건너왔다. 처음 대하는 소록도에는 어떤 모습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증이 무척 컸다. 여느 섬이나 같은 땅이고 나무였지만 유달리 보이던 섬이었다.

아담하게 꾸며진 교회에 들어서니 한센인들이 삼삼오오 의자에 앉아 우리를 맞이했다. 손과 얼굴이 손상된 환자들의 모습에 가슴이 섬뜩했다. 전염되면 어떻게 하나 하고 조마조마했다. 준비해간 조그마한 정성을 그들에게 건네면서도 전해주는 내 손이 더 긴장되고 떨렸다.

감사하다며 인사하는 이도 있었고, 진실로 고마운지 눈물을 훔치는 이도 있었다. 사람이 그리웠기 때문일까? 작은 정성이 고마워서일까? 사람이 찾아온 것만으로도 기뻐하던 그들의 모습이 어제인 듯 생생하다.

내가 어릴 적에는 한센인들에 대한 두려운 정보가 숱하게 나돌아 공연히 겁을 냈었다. 언젠가 혼자 집을 보고 있을 때였다. 서너 명의 한센인이 동냥을 얻으러 집에 왔다. 송아지의 몸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진딧물을 잡아주던 나는 그들을 보자 기겁을 하며 송아지를 말뚝에 매고 광으로 들어가 쌀을 바가지로 가득 퍼다 주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간 후 나의 손등에 빨간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송아지 고삐를 매고 있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이 송아지의 고삐를 낚아채면서 “얼른 쌀 가져와” 했었다. 그 순간 그의 손이 나의 손에 스치는 감촉을 느꼈다. 혹시 그의 손에서 흐르던 피가 나의 손등에 묻은 것이 아닌가 하고 가슴이 철렁했다. 손 등을 몇 번이고 씻었고 며칠 동안 손을 들여다보며 근심 걱정했으나 아무 일 없이 없었다.

한동안 휴식을 취한 후 경내를 돌아보았다. 지금은 초록 내음이 물씬 풍기고 잘 다듬어져서 휴식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는 이 중앙공원도 알고 보면 1936년 일본인 자혜의원장이 천황에게 바치기 위해 환자들의 피눈물과 땀방울을 자양분 삼아 조성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공원의 앞자락에 붉은 건물들은 나환자들을 강제로 끌어다 감금하고 검시하던 건물들이라고 하니 이곳에 있는 건물은 말할 것 없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까지 그들의 눈물과 피와 땀이 얼룩져 이루어진 고난의 흔적이다.

이제 치유의 섬이 된 소록도. 수목원을 방불케 하는 곧게 솟은 아름드리나무들이 섬 전체를 감싸 안으며 거센 바닷바람으로부터 섬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다. 다도해의 절경을 이루는 길이 12㎞의 해안선은 아픔은 잊은 채 평화롭기만 하다.

문화재로 등록된 12곳의 옛 건물과 낡고 오래된 시설들은 500여 명 한센인의 생활공간으로 잘 이용되고 있다. 산책길이 오롯이 나 있고, 마당에 빨래가 펄럭이고, 운동장에서 체육 행사를 마친 흔적들이 켜켜이 남아 있는 것은 특별할 것 없고 우리의 생활 모습과 다르지 않다.

바닷바람도 쉬어가는 한 때, 커다란 너럭바위에 한하운 시인의 한 맺힌 대표작 <전라도 길>이 눈길을 끈다. ‘문둥이’라는 이유로 터벅터벅 걸어서 소록도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처참하고 힘이 들었을까?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가도 가도 천리 길, 전라도 길’ 은 중학교 시절 애송했던 시이다.

그의 고통이나 처절한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암기하는 데 그쳤는데 인생 노을 끝자락, 지금에야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같이 아파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겨 다행이다. 인간으로서 더는 떨어질 수 없는 나락에서 천형 아닌 천형의 길을 걷는 ‘문둥이’의 절망을 벗어나 구름이 되고, 바람이 되고, 파도가 되고파 했던 시인의 한 맺힌 절규가 오래도록 발길을 붙잡는다.

부디 소망했던 대로 한 마리 <파랑새>가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하늘 푸른 울음 울어 예으”시기를. 자유로운 영혼으로 이승에서 못다 한 삶의 노래를 저세상에서나마 목청껏 부르기를 절절한 마음으로 빌었다.

초여름 태양이 따갑게 내리쬐는 노래비 앞에서 오랫동안 고개를 숙였다. 녹동만 창공에는 이름 모를 새 한 쌍이 ‘키룩키룩’ 노래하며 정답게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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