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가 판치는 '가짜세상'
가짜가 판치는 '가짜세상'
  • 전주일보
  • 승인 2018.11.2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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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신 영 배/발행인

지난 1995년 무렵에 신신애라는 탤런트가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풍자노래를 불러 공전의 히트를 쳤던 일이 있다. 그 노래가 크게 유행한 까닭은 가사 내용이 코믹하고 박자가 간단해서 누구나 쉽게 기억하거나 배울 수 있어서지만, 그 보다는 당시의 시대상을 잘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노랫말을 기억해보면 “세상은 요지경/요지경 속이다/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 야야 야들아/내 말 좀 들어라/여기도 짜가/저기도 짜가/짜가가 판친다/ 후략….

‘세상은 요기경’ 유행가는 빠른 속도로 사회 계층이 나뉘어가던 그 시기에 신분 상승을 위해 별의별 일들이 일어나던 그 시대에 숱하게 나타나던 가짜 검사와 가짜 청와대 직원, 가짜 학벌 등을 잘 나타낸 노래다.

요즘은 세상의 모든 것이 까발려져서 명확하게 기억하는 사안이 아니면 아는 체하기도 겁나는 세상이다. 친구들끼리 이야기를 하다가 뭔가 미심쩍으면 곧바로 스마트폰으로 사실 확인에 들어간다. 가히 대명천지(大明天地)다. 옛날 같으면 외국여행 이야기를 거짓말을 좀 보태서 늘어놓아도 듣는 이가 확인할 길이 없으니 고개를 끄덕였을 터이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모두 들통 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인데,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가짜 독립운동가, 가짜 문화재, 가짜 여론조사, 가짜 명품, 가짜 뉴스 등이 판을 치고 있다. 특히 험난한 우리의 지난 역사에서 지배세력의 횡포에 맞섰던 독립운동가, 국가 유공자, 민주화 운동가 가운데에도 가짜가 있다. 또, 문화재적 가치를 평가해 문화재로 지정해야 하는 지정 문화재에도 가짜가 있다. 비전문가의 눈에도 아무런 가치가 없어 보이는 조악한 근대 건물이 문화재로 둔갑해 나랏돈으로 보수하고 관리되고 있는 현실이다.

얼마 전에 독립운동가와 이름이 같은 사람의 아들이 동명이인이라는 걸 이용,해당 독립운동가의 행적을 도용해 자기 아버지인 것처럼 독립운동가 후손 행세를 하면서 수십 년 동안 나랏돈을 받아온 사실이 들통 난 일이 있다. 다행이도 장본인의 후손이 중국에 살고 있었기에 발각이 됐다.

이일을 계기로 삼아 27일 보훈처에서는 독립운동가 후손 행세를 한 가짜를 완전히 밝혀내겠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CBS김현정 뉴스쇼’에 출연한 광복회 대전지부 윤석경 전 회장은 현재 독립운동가나 후손으로 등록돼 국가의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 가운데 가짜가 무려 100여 명에 이를 것이라고 증언했다.

친일하던 사람이 어느 날 독립운동가로 둔갑한 경우가 있으며 앞에 나온 사례처럼 동명이인의 후손이 슬그머니 조상을 바꾸어 나랏돈을 축내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울 일은 보훈처가 독립운동가 신고를 받을 때 브로커들이 독립운동 기록을 열람한 후 신고 되지 않은 운동가의 후손이 없을 경우 동명이인을 찾아 유공자로 등록을 시켜주고 사례를 받아 챙긴 일도 있다고 한다. 당시 브로커와 업무 담당자가 연결되어 어물쩍 이루어진 등록도 있다는 것이다.

독립운동가 등록 당시에 함께 운동에 참여했다는 증인 한 사람만 있어도 등록이 가능했다고 하니 브로커들이 설치던 당시에 적당한 사실 기록을 암기한 후 서로 어깨보증 하듯 증인이 되고 등록했다면 누가 진위를 가려낼 것인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과연 보훈청이 그러한 가짜를 색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혹시 지금 보훈처에 당시 부정 등록과 관련된 인물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면 윗선의 노력은 헛수고로 흘러 흐지부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우려를 제기하는 것은 본지가 올해 초부터 끊임없이 제기해 온 부안 줄포의 국가지정 민속문화재 제150호인 ‘김상만 생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본지는 김상만 생가가 가짜 문화재라는 명확한 근거를 수없이 제시하였음에도 문화재청은 끝내 문화재 지정취소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이나 보훈처 관계자들이 외부 작용이나 어떤 위세에 눌려 올바른 행정을 할 수 없는 환경이 되면 결국 그들 또한 스스로 조직을 보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의료사고 분쟁에서 조정위원으로 참여한 의사들이 웬만하면 의료사고로 판단하지 않듯이 특정 분야의 잘못을 가리는 문제는 항상 계통 내부의 이익을 지키는 쪽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업계, 연구기관, 정부조직, 대학까지 망라해서 동일 분야의 사람들은 그 소속이 다를 뿐, 동일집단으로 인식하는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판사들의 조직에서도 지난 정권에서 재판거래를 한 사실을 두고 전국 판사 회의가 그 들의 선배인 대법관의 탄핵문제를 토의하면서 격론 끝에 ‘탄핵’을 건의했으나 대법원은 일부 ‘판사들의 의견’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말았다. 어쩌면 탄핵을 주장하는 결론을 낸 판사들조차 내부에서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겉돌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은 사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나서서 바르고 깨끗하게 척결해야 함에도 국회 또한 정치적 이해가 물고물린 집단으로 속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모든 전문분야가 이렇듯 ‘내 식구 감싸기’와 ‘내 조직 지키기’에 올인하기 때문에 가짜는 오늘도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이다.

가짜를 가려내고 세상을 조금이나마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국민의 관심이다. 국민이 지켜보면서 지속적으로 지적하고, 문제를 제기하면 결코 특정단체와 특정인 등 기득권 세력들의 입맛대로 하지 못한다. 국민은 늘상 뜨거운 촛불을 들 각오로 세상의 가짜와 불의를 지적하고 감시해야 한다. 결국 믿을 건 우리 자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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