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갑질
상갑질
  • 전주일보
  • 승인 2018.11.2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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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드디어 문자로 모든 걸 정리하는구나 하고 알게 됐다. 놀라운 일이다." 지난 9일 전원책 변호사가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으로부터 조직강화특위 위원직에서 해고된 직후 한 심경 발언이다. 정말 놀란 듯해 보였다. 당혹감도 살짝 엿보였다. 사실 그럴만했다. 처음 조강특위 위원에 선정될 때만 해도 그의 권한은 막강해보였다. 그의 양 어깨에 무너져내린 자유한국당은 물론 보수의 재건이 걸려 있는 줄 알았다. 그런 그였기에, 감히 그가 이렇게 잘릴거라 예단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더구나 잘린 것도 그냥 잘린게 아니었다. 달랑 문자 몇줄로 잘렸으니 참 자존심 상했을 법 하다.

문자 해고는 정치판에서 종종 있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빼놓을 수 없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해고한 사례가 그렇다.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을 국무장관으로 지명하고, 틸러슨을 국무장관에서 해고하며, 지나 해스펠을 CIA 국장으로 지명한다." 지난 3월 회자됐던 트럼프 대통령의 인사발표문이었다. 다른 수단이 아닌 바로 SNS인 트위터 문자를 통해서였다. 당시 아프리카 임무 수행 중 일정을 하루 앞당겨 돌아온 틸러슨 국무장관은 "해고 사실을 대통령의 트위터를 보고 알았으며, 해고된 이유는 알지 못한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의 전원책 변호사에 대한 문자해고를 빗댄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의 논평이 흥미롭다. "전 변호사가 조강특위 위원 해임통보를 문자로 받았다니 한국에 트럼프가 탄생했다." 부인하기 힘든 비유다.

문자해고 하면 역시 압권은 황교안 전 총리 사례다. 지난 2016년 11월 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논의가 한창이던 때였다. "새로운 총리가 내정됐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박 전 대통령이 황 전 총리에게 보낸 해고 문자였다. 이같은 사실은 한 언론이 "황교안 총리가 새로운 총리가 내정됐다는 이야기를 '문자'로 통보받았다"고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당시 신임 총리로 지명받은 이는 공교롭게도 전원책 변호사를 문자해고한 김병준 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었다.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조차 "경악스럽다"고 논평했다. "일국의 국무총리 지명을 물러날 국무총리에게 문자로 통보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도 했다. 당시 총리실은 자료를 통해 "기사는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문자해고는 누구에게나 아프다. 해고 통보라서 아픈게 아니고, 비참해서 아프다.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정치인이라고 다를 게 없다. 정치적 문자해고도 이럴진대 하물며 직장내 문자해고야 두말할 필요 없지 않을까. 요즘 입만 열면 갑질 논란이다. 적폐청산 운운하지만 말짱 도루묵이다. 골프채 폭행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헌데 이보다 더한 갑질이 있다. 갑질 중에서도 상갑질이다. 바로 문자해고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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