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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최씨 종가가 깃든 옻골금요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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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2  15: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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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정 현/수필가

더위가 위세를 점점 떨쳐가는 6월, 날씨는 흐렸다. 간밤에 내린 비로 대구 거리는 상큼한 초록의 나무들과 어울려 신선한 영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뜨거운 햇살과 더운 열기에 짓눌린 풍광을 연상했는데 구름이 가려주고, 시원한 가랑비까지 시가지를 적셔주고 있어 마음이 상쾌하기 그지없다. 우리 문화유적답사에 참여한 일원으로 전주에서 버스가 출발한 지 두 시간 남짓하여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도착했다. 옻골 경주최씨 종가를 답사하기 위해서다. 대구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라고 알려진 옻골 경주최씨 종가는 고즈넉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산세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조선 인조 때 대암(臺巖) 최동집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지은 백불암 종가는 여느 한옥에서 느낄 수 없는 기품과 고색창연함이 풍겼다. 안채와 사랑채, 보본당, 대묘, 별묘, 행랑채, 고방채 등이 생활 편의와 삶의 질서를 조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방향과 거리에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이 드나들며 크고 작은 대화를 나누고 삶의 어려움과 즐거움의 이야기를 토로하는 건물 공간을 유심히 살폈다. 'ㄷ‘자 형의 안채와 사잇문의 담장 넘어 사랑채가 오밀조밀 배치되어 있었다. 살림채에서 사랑채로 통하는 열림의 세계는 가능한 가까운 거리가 중요하다.

이곳 건물의 구조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제사와 사랑채 손님 대접을 위한 음식을 나르고 챙기는 부녀자들의 신산한 발걸음을 배려한 것으로 보였다. 심지어 맑은 바람의 통로까지 깊이 헤아린 그 슬기로운 가옥 구조 배치가 놀라울 지경이었다. 사랑채 수구당(數咎堂)이 서쪽 편에, 보본당과 포사가 그 옆에 도열해 있고 대묘와 별묘가 가까이 자리 잡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조상을 받들고 가례와 바깥세상과의 교류에 어긋나지 않은 대쪽 같은 선비정신이 구현되도록 지어진 삶의 터전임이 분명했다.

나는 특히 보본당과 동계정을 주목했다. 보본당은 반계 류형원 선생의 수록을 영조 임금의 명으로 백불암 선생께서 초본을 교정했던 장소였기 때문이고, 동계정은 인재 배출을 위한 강학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반계수록>은 류형원이 20년간 전북 부안 우본동에서 심혈을 기울여 저술한 책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피폐한 나라를 바로 잡고자 쓴 반계수록은 실리적 개혁론이 담긴 국정개혁의 내용이다. 이 반계수록의 초본이 우여곡절을 거쳐 백불암 최흥원에 의해 보본당에서 교정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동계정은 인재배출의 산실일 뿐 아니라 오늘에 이르기까지 명맥을 유지할 만큼 나라의 동량지재를 배출했을 것이다.

선조들이 삶의 터를 정할 때 반드시 살펴보는 풍수지리는 이곳 옻골 마을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나는 시간이 없어 마을 뒷산에 오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산 정상에 기이한 바위가 솟아 있다는데, 거북같이 생겼다 하여 생구암(生龜岩)이라 부른다고 한다. 거북은 물속과 뭍을 넘나드는 신령스런 동물이며 장수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풍수지리상의 비보와 상응의 논리에 맞추어 거북에게 물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마을 입구 서쪽에 연못을 조성했다고 한다. 또한 동쪽은 양의 기운을 받기 위하여 숲을 만들지 않았고, 서쪽은 음의 기운을 막기 위하여 연못 주위에 느티나무와 소나무 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350년이 넘은 수십 그루의 느티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선조들의 삶에 서린 풍수상의 비보와 음양오행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뒷산 정상의 생구암, 그리고 느티나무를 줄거리로 이야기가 있는 등산로나 산책로를 조성하면 멋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옻골 마을에 옻나무가 없다는 것이 허전할 지경이었다. 옻나무가 우리 몸에 좋다는 풍문으로 남벌의 희생양이 되어 사라졌는지 알 수 없으나, 만일 원조 옻나무를 찾는다면 옻골 마을 번영의 단초를 잡을 분명한 명분이 선다. 아울러 이야기가 있는 옻골 마을의 풍수상 비보와 음양오행의 조응이 최씨 종가의 번영과 성공에 어떤 영향을 가져다주었는지 추적하여 살펴보는 것도 강렬한 흥미의 대상이다. 개발 여하에 따라 필수 관광 여행지로 등장할 수 있는 자원이 풍족한데 앞으로 어떤 방향의 청사진이 등장할지 관심을 두고 주목하고 싶다.

경주의 양동마을과 쌍벽을 이룬다고 여겨지는 옻골 마을을 볼 때 양동마을은 단순 소박한 풍치라면, 옻골 마을은 기품과 고색창연한 풍모가 엿보인다. 양동마을은 낮은 구릉의 여기저기에 초가와 기와집이 산재해 있어 전통적인 옛 촌락의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아늑한 고향 같은 양동마을의 여기저기에 저녁놀을 배경으로 초가집의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면 참으로 평화롭기 그지없는 옛 정서가 뭉클 살아나리라 상상을 해본다.

그렇다면 왜 옻골 마을이 되었는지, 음식의 전통적 맛의 계승은 어떤지, 옻나무와 관련된 농작물은 무엇이었는지, 이 모든 삶의 터전에서 등장했다가 사라진 최씨 문중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떤지, 궁금한 것들을 풀어내는 문화적 과업이 남는다. 특히 생구암이 동계정의 인재배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연구 조사해 보는 것도 옻골 마을의 풍수지리적 호기심과 더불어 깊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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