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져가는 나의 너
멀어져가는 나의 너
  • 전주일보
  • 승인 2018.11.1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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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장 지 나/수필가

"한 번 안아보자!"

친구는 나를 안고 한없이, 한없이 울며 내 가슴을 쳤다. 가만히 안아 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친구의 흐느낌은 한참 더 이어졌다. 떨리던 어깨가 멈추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고, 정말 몰랐었다고. 그런데 금세 울며 내 말을 듣던 친구가 갑자기, ’누구세요?‘ 하는 표정이었다. 금방 낯선 사람이 되어버린 친구를 붙들고 이번엔 내가 울었다. 햇볕이 창문으로 들어와 우리를 살며시 안아 주었다.

언제부터 병이 들어와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을까? 현대의학으로도 아직 답이 없다는 말인가? 잘살고 있겠지 생각했었다. 안정된 삶을 살고 있던 친구이기에 늘 그 자리에 있으려니 믿고 있었다. 그런데 모진 바람은 이곳에도 불고 있었나 보다.

며칠 전 후배에게서 친구가 치매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찾아온 것이다. 오는 동안 각오는 했지만, 품위를 잃지 않던 친구의 변한 모습에 억장이 무너졌다. 내가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있는 동안 친구의 정신이 돌아왔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매직을 찾아들고 와서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벽에다 내 이름하고 전화번호를 대문짝만하게 썼다. 다시 병마에 휩싸이면 내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 터인데 그래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행히 친구는 3시간 이상 정신 줄을 붙들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도 기억에 담으려는 듯, 민망할 정도로 눈을 떼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친구의 또 하나의 의식이 병마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 같아,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친구의 흔들리는 삶의 줄을 붙잡아주며 더는 무너지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친구가 정신을 붙들고 있는 동안 우리는 나가서 점심을 먹고 차도 마셨다. 친구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슬프지만 너를 만나 울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해서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그러나 친구의 입은 웃고 있는 것 같았지만 눈은 젖어 있었다. 창문 쪽을 바라보던 친구가 한숨을 쉬더니 “너를 만나야 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많이 찾았다.” 고 했다. 나는 친구의 손을 잡아주며, 이제는 ’내가 찾아오겠다.‘ 고 했다.

찻집에 앉아서 친구의 지난 이야기를 들으며 웃기도하고 울기도 했다. 단순해진 친구는 자기 이야기에 바빠서 나한테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대화 내용도 아주 젊었을 때를 추억하며 재미있어 했다. 치매의 특징인 듯싶었다.

자녀들이 찻집으로 찾아왔다. 나올 때 혹시 몰라 메모해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보자 긴장이 풀렸는지 금방, 친구인 나는 아줌마가 되고, 자기를 닮은 딸은 엄마가 되었다. 딸은 익숙해 졌는지 천연덕스럽게 적응을 잘했다. 딸이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엄마가 이모를 얼마나 많이 찾아다녔는지 아세요?” 하며 글썽였다. 왠지 죄인이라도 된 듯 아이들에게도 미안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현실의 길을 찾지 못하는지, 친구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자녀들에게 맡기고 가방을 챙기는데 “아줌마 잘 가!”라고 하며 미련도 없이 손을 흔들면서 환하게 웃었다. 나도 안아 주며 “아줌마도 잘 있어. 또 올게.” 차라리 평안해 보이는 친구를 뒤로 하고 나오는데 눈물 때문에 아이들 인사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에 오도카니 서서 눈만 껌벅거리는 어린 사슴처럼 애처로운 친구 모습이 머리를 흔들어도 지워지지 않았다.

길을 잃고 헤매는 길도 길이라고 했던가?

“네가 보는 그 길 끝에는 어떤 세상이 있는 거니? 그쪽이 동화 같은 동심의 세계라면 차라리 거기 살아라. 높은 산에 오르다가 잠깐 평지를 만난 것처럼 결국 또 올라가야 하는 길이니 말이다. 어제는 멀고 아득해지며, 오늘은 낯설고 슬픔뿐, 내일은 무섭고 두렵겠지.”

참으로 몹쓸 병이다. 무엇보다도 인격이 상실되기 때문에 치매에 걸리면 자녀들조차 병문안을 꺼린다고 하지 않던가?

알츠하이머, 누구나 이 병만은 걸리지 않기를 소망한다. 병의 원인으로는, 베타 아밀로이드(beta-amyloid)라는 이상 단백질아 뇌 속에 쌓이면서 서서히 신경세포가 죽어가는 퇴행성 신경질환이라고 한다. 치매환자의 대부분이 알츠하이머에서 병이 시작된다고 한다. 발병 뒤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6~8년 정도, 사람에 따라 20년을 넘기는 이도 있다. 돌아오며, 왠지 나에게도 연민이 생겨 가만히 나를 안아 주었다.

칠십 년을 훌쩍 넘긴 삶, 안전장치는 낡아 있을 터, 언제 허리끈이 풀어지듯 흘러내릴지…. 살기에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도 만나지 않았던 지난날의 나의 삶에 인색함이 묻어나는 것 같아 쓸쓸함이 스쳤다.

나를 잊어버리는 병과 나이 들면서 점차 기억이 희미해지는 차이는 무엇일까? 모든 걸 놔두고 떠나야 하는 길목에 선 너와 나, 차라리 한 번에 모든 걸 잊어버리고 착하디착한 망각의 세계로 들어선 친구가 부러울 만큼 어수선한 세상이 아닌가? 다만, 내게서 또 하나의 소중한 것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아픔이 무척이나 시리다. 그렇게 내게서, 또는 네게서 하나씩 또 하나씩 떨어지고 멀어지는 이 가을 같은 시간이 오늘도 흘러간다.

오늘도, 나의 너 하나가 등을 돌려 멀어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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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 전북 완주

제1회 꽃밭정이 수필문학상 수상

큰샘 수필문학연구회 회원

유연 문학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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