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방심이 부른 참극
순간의 방심이 부른 참극
  • 전주일보
  • 승인 2018.11.1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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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 원/부국장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 하지만,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그야말로 코앞의 일을 모른다. 다 이겼다 싶은 경기가 최후의 순간에 뒤집혀 패배로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난 11일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펩시센터에서 열린 UFC 파이트 나이트 139차 페더급 메인 경기에 출전한 정찬성 선수는 5회 경기의 마지막 1초를 남겨놓고 멕시코의 ‘야이르 로드리게스’에게 TKO패 했다.

‘코리안 좀비’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정찬성은 군대 복무를 마치고 지난 2월 경기에서 ‘데니스 버뮤데스’를 제압하고 본격적인 무대에 복귀하는 마당이었다. 정찬성은 패하기 직전까지 잘 싸워서 무난히 판정승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5분씩 4회를 마치고 마지막 5회 4분 59초의 순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그 마지막 1초를 남겨놓고 로드리게스의 팔꿈치 공격이 정찬성의 턱을 강타했다.

그 팔꿈치 공격에 떨어져 KO만 되지 않았어도 패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완전히 넉아웃 되는 바람에 정신 줄을 놓은 상태에서 게임이 종료되고 말았다. 유리한 경기였고 시간이 다 끝나는 때였으니 슬슬 피하기만 했어도 이길 경기인데, 시간이 다 되었는데 왜 로드리게스에게 돌진해갔는지 모른다. 어쩌면 승리했다는 믿음에서 멋진 인상을 남기려고 돌진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터무니없는 용기 때문에 엘보우 공격을 받아 24분 59초 동안 애쓴 보람이 허공에 흩어지고 말았다. 군대의 공백을 극복하고 어렵게 복귀하는 경기였는데 그 1초를 소홀히 한 탓에 도약의 기회를 잃다니….

스포츠에서 승자와 패자의 갈림은 천당과 지옥만큼이나 극명하지만, 승패가 갈리는 순간은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자칫 방심하면 상대로부터 일격을 맞아 나락으로 구르는 격투기가 아니어도 순간의 실수가 경기를 그르치는 일은 어디서나 벌어진다. 

12일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SK 와이번즈와 두산 베어스가 한국시리즈 6차전을 치렀다. 두산은 2위 SK와 16.5 게임의 승차로 여유 있게 1위를 차지하고 느긋하게 포스트 시즌에 아래 팀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한국시리즈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더구나 넥센과 SK가 5차전까지 치르며 완전히 전력을 소모하고 올라오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번 한국시리즈는 싱싱한 어깨와 막강한 팀 전력을 보유한 두산이 크게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두산은 너무 오래 쉰 탓인지 타격이 시원치 않았고, 반면 SK는 5차전을 치른 여독을 안고 시리즈를 시작했지만, 투지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예상 밖의 성적을 냈다. 특히 잠실 1차전에서 SK가 승리하면서 ‘두산 우세’라는 대세 예측이 급격하게 SK로 기울었다. 잠실에서 1승 1패를 거두고 인천 문학구장에서 2승 1패를 이룬 SK는 한 번 만 이기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유리한 조건을 달고 12일 잠실 게임에 임했다.

한 번의 승리로 SK가 우승을 차지하느냐, 두산이 반격하여 3승3패를 만들고 7차전으로 가느냐 하는 그날의 게임은 13회까지 연장전을 치를 만큼 치열했고, 몇 번이나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더구나 SK는 ‘힐만’ 감독이 이번 한국시리즈를 끝으로 감독직을 내려놓고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 부모를 모시고 살겠다고 결정한 상황이어서 선수들이 똘똘 뭉쳐 힐만 감독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한국시리즈 우승을 선물하겠다는 결의가 대단했다.

6차전이 시작되자 1회부터 두산 선발 이용찬이 흔들렸다. 첫 타자 김강민을 볼넷으로 내보내더니 한동민, 최정까지 연속 세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고 4번 로맥의 내야 땅볼 때 1점을 선취했다. 다시 2회 초에 정의윤에게 2루타를 맞은 이용찬이 강판되고 이영하가 마운드에 올라 후속 타자를 잘 막아 추가 실점을 하지 않았다.

4회 초 2아웃 상황, 정의윤이 안타로 출루하고 타율 1할2푼5리의 타자 강승호가 이영하의 초구를 통타하여 좌측 담장을 넘겨버린다. 스코어는 3 : 0으로 승부의 추가 SK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었다. SK 선발 캘리는 5회까지 퍼팩트 마운드를 구축하여 단 한 타자도 1루에 보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6회 말에 캘리가 갑자기 흔들렸다. 연속 안타를 맞아 스코어는 순식간에 3 : 3 동점이 되어 알 수 없는 승부가 되었다. 그리고 8회말, 두산이 1아웃 1, 3루 상황에서 양의지가 큰 외야 플라이를 쳐 두산이 3 : 4로 역전한 가운데 9회초 SK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됐다. 두산은 에이스 린드블럼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김강민과 한동민이 아웃 되어 한 타자만 잡으면 6차전 승리인 상황,

이날 무안타를 기록중인 3번 최정과 맞선 린드블럼이 타자 바깥쪽으로 흐르는 체인지업을 던지자 최정이 그대로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겼다. 다시 4 : 4, 로 팽팽히 맞선 채 13회초, 두산은 느린 커브 컨트롤로 타자를 요리하는 유희관이 마운드에 올랐다. 강승호와 김강민이 아웃되고 역시 이날 무안타를 기록 중인 한동민이 타석에 등장했다. 유희관의 느린 볼이 가운데로 몰리는 듯 하자, 한동민이 그대로 밀어쳐 오른쪽 펜스를 넘겨버렸다. 이 홈런도 2아웃 상태에서 나왔다.

그리고 SK는 에이스 김광현이 마운드에 올라와 3타자를 잡고 감격의 네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두산은 2 아웃 이후에 두 개의 홈런을 맞아 시리즈를 원점으로 돌릴 기회를 잃고 패배했다. 그날 행운의 여신은 SK의 손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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