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와 신조어
아재와 신조어
  • 전주일보
  • 승인 2018.11.0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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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진다의 줄임말), 존버(존나 버틴다),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순삭(순간 삭제), 잠금(잠자는 금요일)…

각종 신조어들이 인터넷을 넘어 우리의 일상 속에 자리잡고 있다. 신조어로 대화하는 젊은 세대의 유행어를 못 알아듣고 자칫 '무슨 뜻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을 경우 세대차이를 넘어 아재(아저씨)로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분위기다.

아재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면, 요즘 유행하는 신조어 대여섯 개 정도는 외워둬야 할 상황이다. 굳이 신조어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트렌드를, 젊은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아두면 쓸데 있을지도 모른다.

연령별로 자주 사용하는 신조어는 무엇일까. 최근 한 조사기관의 '신조어'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20대는 '정말 맛있다'라는 뜻의 존맛, JMT(존맛탱)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다음으로 개웃겨, 핵사이다 등 특정 어휘에 접두사로 붙어 '정말, 매우' 등 강조의 성격을 뜻하는 '개ㅇㅇ', '핵ㅇㅇ', '존ㅇㅇ'이 차지했다. 30~40대가 가장 많이 쓰는 신조어는 불금(불타는 금요일), 혼밥, 혼술이었다.

최근에는 현대인들의 삶의 태도와 관련된 신조어들이 많이 등장하는 추세다. 올 한해 통 털어 가장 핫한 신조어는 소확행 (小確幸)이다.'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의 신조어인데,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을 이르는 말이다. SNS나 메신저 대화, 뉴스, 각종 예능프로, 정부 관련 정책 설명에서도 일상적으로 쓰일 정도다.

소확행은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6년에 펴낸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처음 나온 말이다. 그는 수필집에서 소확행에 대해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솔솔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쓸 때의 기분' 등이라고 소개했다.

소확행은 덴마크의 '휘게(hygge)'나 스웨덴의 '라곰(lagom)', 프랑스의 '오캄(au calme)'과 비슷한 의미다. 덴마크인이 지향하는 삶인 '휘게'는 '좋아하는 사람과 거실에 앉아 장작불이 탁탁 타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는' 일상적인 분위기다. '오캄'은 고요하고 한적한 분위기를 뜻하는 것으로 심신이 평온한 상태에서 삶을 여유롭고 편안하게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 보다는 현재에서, 거창하고 특별함 보다는 작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쉽게 누릴 수 있는 '흔하디 흔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은 국경을 떠나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가을색이 더욱 짙어질 주말에 집 근처 예쁘게 물든 단풍나무가 드리워진 저수지를 산책하고,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 시켜 놓고 편한 사람과 살아가는 소소한 얘기를 나누는 소확행을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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