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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의 새로운 천년을 위하여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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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7  14: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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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갑 제/언론인

미국은 한반도 땅의 44배나 되고 중국은 43배가 넘는다. 하지만 다민족이 함께 살아가며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의 공간 개념으로 본다면 한반도는 일개 지방정부 수준이다.

그런데도 그 좁은 공간에서는 동·서간 대립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그 세월이 무려 천년이나 된다. 1018년 전라도란 명칭이 사용된 이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우선 경상도와 전라도는 면적과 인구 등 모든 면에서 차이가 있다. 경상도는 경상 북·남도와 부산 대구 울산 등 다섯 광역단체의 총면적이 3만 2278.9 ㎢이다. 전라도는 전북 전남 광주 등 개 광역자치단체 총면적이 2만877.2 ㎢로 경상도가 전라도보다 54.5퍼센트 가량 더 넓다.

두 지역의 인구도 옛날에는 전라도가 많았지만, 2017년 기준 경상도가 1,318만 3,126명으로 전라도의 521만 4,801명 보다 796만 8,325명이 더 많다. 배가 넘는 수치이다. 그러나 동서 갈등의 원인이 땅이 넓고 인구가 많은 탓에 생긴 당연한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지리적 여건과 정치적 이해관계 등 복합적인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호남은 그 지리적 환경이 흩어져있다. 영산강 섬진강 탐진강 등 6개의 큰 강의 영향이다. 결국 흩어진 지리처럼 인심도 나뉘어 통치의 중심이 되어보지 못하고 들판에 떠도는 야당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학고 김정호 선생은 최근 그의 저서 <영호남의 인문지리>에서 “후삼국 때 가장 강력했던 후백제가 망한 것도 바로 이 지역이 안고 있는 지리적 약점으로 말미암은 결과였다.”며 “이 땅의 토박이들은 바다를 통해 사방에서 들어온 후손들이라 경상도처럼 한통속이 될 수가 없었다.

내륙의 광주 전주 사람들은 후백제 편이었고, 나주 영암 순천 광양 사람들은 왕건 편을 들어서 망했다. 이 때문에 계속 압제 받고 착취당하며 살다가 참을 수 없으면, 사전에 충분하게 힘을 조직화하지도 않은 채 민란을 일으켜 차등의 착취를 더욱 심화시켰다.”고 진단했다.

백번 옳은 말씀이다. 문제는 이 같은 환경이 계속되면서 패배에 따른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이 생활화가 되었다는 점이다. 엄연한 역사상 왕국을 가졌던 땅이건만 전라도 사람들은 지금도 후백제 유적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 지금도 신라에 패망했다는 사실에만 매몰되어 이 땅에 건설하려 했던 나라가 어째서 망했는가에 대한 성찰의 기운이 전혀 없다. 전라도인의 뼈아픈 약점이다.

감정을 앞세워 현실적인 실리 챙기기를 못하는 전라도. 이익을 위해서라면 감정 따위는 꾹 눌러 죽이고 얼굴에 미소를 퍼 올리는 동쪽 사람들에게 우리는 늘상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지나온 역사의 진실을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내야 한다. 동서는 물론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남북화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한층 더 구현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렇다.

민주주의라는 게 무엇인가. 영어로 데모크라시(democracy)다. 인민(demos)와 통치(kratia)라는 그리스어가 합쳐서 만들어진 단어(demokratia)에서 비롯됐다. 민주주의라는 낱말은 이를 한문의 뜻글자에 맞춰 만든 말이다. 민중(인민·백성)이 주인인 주의로 풀이한다. 그러한 정치는 공화정(共和政)이라 일컫는다. 공화정은 모든 국민은 나라의 주인이고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뜻이다.

이는 하늘의 아들을 자칭한 군주(황제·천자)의 다스림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발전해 인간·자유·평등·정의의 개념으로 바뀌었다. 이 낱말은 우리 옛 개념 가운데 홍익인간(弘益人間·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과도 통하고 서학에 맞서 전개한 근세의 동학혁명인 인내천(人乃天·백성이 곧 하늘의 아들이다)운동의 뜻과도 통한다.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면서도 소수나 변방도 손해 보지 않도록 골고루 돌보는 정치체제를 이상으로 했다. 지금처럼 다수자가 지배하여 소수의 원망을 받는 정치가 아니라 소수도 같이 사는 상생(相生)주의였던 것이다. 중국의 공자도 이런 사회를 대동(大同)사회라 했다. 이제 우리는 천년의 대립을 끝내고 이 대동 사회 건설을 위해 신명을 바쳐야 한다.

만약 이후에도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다수결의 원칙’에 따른다면서 예나 지금처럼 인구 배분에 따라 연고지 우선 정책을 쓸 경우, 필경 파경으로 치달을 것이 분명하다. 해답은 서로의 차별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어루만지고 이익을 골고루 나누는 것뿐이다.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군다나 이 같은 노력 없이 통일된다면 역사적 사회적으로 쌓여온 지역 갈등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남북은 지리적 환경이 다를 뿐 아니라 역사 환경이 다르고 오늘날은 이념과 정치형태마저 다르기 때문이다. 심정적인 민족의식만으로 통일국가를 이룬다면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쟁이나 이해 다툼 이상의 지역 갈등이 시작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 피란민, 탈북자, 외국 이민 노동자, 북한 사람, 남한 사람은 같을 수가 없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는 노력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동서가 화합하여 상생하는 방법을 젊은이들이 앞장서서 찾아내고 습관화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외국 노동자, 북한과의 공생에 대비하는 노력 또한 절실하고도 시급하다.

전라도의 새로운 천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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